⟪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
김형표가 쓴 ⟪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를 읽었다. 꽤 두꺼워 보여 선뜻 첫 페이지를 펼치기가 망설여졌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어져 있고 활자가 다른 책들보다 큰 이유도 있었겠지만, 화려한 기교나 비유가 없어 읽기에 좋았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선 그의 십 년간의 제주도 농사 일기를 너무나 쉽게 넘겨 버린게 아닌가하는 미안함이 생겼다.
이 책에는 그동안 심심찮게 읽었던 제주 에세이들처럼 달곰함이라곤 없다. 정서적으로 다르고 하드보일드하다고나 할까. 우직스럽게 흙을 움켜잡은 모습만 가득하고 그가 책에서 썼듯이 농지를 사서 전원주택을 짓고 펜션이나 하며 농사는 뒷마당 텃밭에서 해도 그만일 텐데 말이다.
교육을 받고 농지를 사면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고 그만큼 농지는 줄어들겠지만, 몇 해 지나 부동산 차익을 챙겨 팔고 떠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김형표처럼 몇 해를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 비료만 쓰고 일일이 풀을 뽑아가며 땅을 일구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제주라면 어떤 이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은가.
적어도 그에게는 농사가 자본 시장의 한쪽에 있는 것이 아닌 생산이 주가 되는 농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채소를 키운 농부는 시들기 전에 팔아야 하는 조급함이 있고 유통업자들은 그 시기를 노린다. 생산 주체가 가공과 유통까지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된 농사일이 가로막는다.
납품했던 브로콜리가 연 노랗게 뜨면 반품되어 돌아와 폐기해야 하고 수분 유지 농약을 치지 않은 귤은 껍질이 마르는데 지인들은 껍질이 마르지 않은 무농약 귤을 찾는다. 제주는 한 번도 농업이 지역 경제의 1등을 놓친 적이 없는데도 어떤 이들은 제주는 관광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토박이인 나는 관광이 주도하는 고향이 두렵다. ⟪오래된 미래⟫를 읽지 않았더라도, 먼 멕시코 칸쿤의 예를 들지 않아도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가 땀 흘려 일군 친환경 토지는 2공항 활주로 예정지라고 한다.
꽃 이름에만 집착하면, 진정한 꽃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순수한 마음으로 꽃을 바라볼 때, 바라보는 대상 앞에 자신이 사라질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에 익숙해지면 노동이 사라진다고 이 책의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생산성으로만 발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도통 모를 이야기만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꽃 이름을 모르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꽃은 아름답다. 노동의 고됨이 의식 저편으로 사라지는 시간. 그에게 밭에서 함께 일하는 할망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저편에 ’그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와해시키고 목표를 이루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으로 문제는 ’그들’에 있지 않고 ’우리’에 있다는 말로 마지막 문장을 썼다.
책의 구성이나 기획이 좀 더 영리했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그의 우직한 만큼이나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먼 책이다. 그걸 고려하고 이 책을 마주한다면, 그의 제주도 친환경 농사 분투기는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