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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Apr 26. 2018

《할망은 희망》

제주 할망에게서 배우는 인생[book]

몇 해 전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1]》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은 미국 코넬 대학의 프로젝트에 의해 수년간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보고서 형식으로 담담하게 쓰여 있다. 작가의 의견은 자제하고 자신이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와 그들 스스로 어떻게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비슷한 연배와 직업, 연애와 결혼 시기까지도 비슷한 두 노인의 서로 다른 인생을 보는 시선은 흥미로웠다.   


이런 부류의 책을 참 좋아하게 되었는데 작가의 의견을 독자에게 밀어 넣지 않고 경험한 객관적 사실의 나열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작은 깨달음이나 동감을 얻게 하는 책이다. 그야말로 말하지 않고 가르친다는 장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지 작가의 《할망은 희망⁠[2]》은 내게 그런 책이다. 할망은 알다시피 할머니의 제주 사투리다. 그렇다고 지나가는 할망에게 ‘할망’하고 불렀다가는 민망한 야단을 맞을 게 뻔하다. 어디까지나 삼인칭으로 불어야 할 단어이니까. 그런데 할망은 ‘노인’이고 그것은 ‘문제’와 붙어 다닌다. 그런데 이 작가는 ‘희망’이라고 한다. 내게도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답’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는 현재와는 아주 다르다. 식민지 시대의 끝을 살았고 전쟁과 학살을 겪었다. 4·3을 이야기하는 할머니는 ‘일본군도 하지 않은 일을 그들이 했다 [p135]’라고 한다. 그 후의 세상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이 살아냄으로써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의외로 강렬하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고 어떤 다짐을 할 것 같다. 


우리는 영웅사관으로 역사를 학습했고 민중사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안다. 정신지의 이 책은 ‘할망 사관’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이름 짓건 개인의 질곡 있는 소소한 삶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며 그들의 생이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시선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배울 게 많다. 


우리는 모든 노인이 현자가 아님을 안다. ‘늙음’은 자동으로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살암시민 살아진다’라는 말에는 ‘살다 보니’라는 시작과 ‘살아진다’라는 결말이 있다. 이 책에서는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을 듣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섬사람들의 투박함까지 더해지면 더 힘들다. 악착같이 붙들고 내쫓음을 당하고 무거운 아코디언을 지고 할머니들이 좋아할 만한 코드를 모두 외우고 노래하고 때론 춤췄을 것이다. 자그마치 오 년 동안 말이다. 책의 목차를 보고 꼭지가 적지 않나, 하고 생각했지만,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백은 넘었을 텐데 그 중 추리고 추렸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작가 자신의 실패 경험과 어쩌면 암담했을 수도 있는 앞길에 빛이 되는 교훈을 작가는 얻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에게 할망은 희망이고 이 책을 통해 그 희망을 공유하고 싶었을 것 같다.  

스티브 잡스가 좋아서 아이폰을 산 게 아니듯 작가가 좋아서 이 책을 추천할 수는 없다. 아이폰은 아주 좋은 제품이었고, 이 책 또한 아주 좋은 책이다. 


할망은 희망 - 


정신지 지음/가르스연구소



[1] 칼 필스너 지음, 박여진 옮김, 토네이도 출판, 2012, ISBN 9788994013503 

[2] 정신지 지음, 안솔 그림, 가르스연구소 출판, 2018, ISBN 979119578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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