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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Feb 18. 2016

제주 읽기

제주를 정복하지 마세요.

여행의 정석


집 앞에는 아주 유명한 제주 맛집이 있다. 주로 점심으로 먹는 국숫집으로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손님이 많다. 좁은 골목길에 기다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두었지만, 턱도 없이 모자라서 대기 손님들은 골목 여기저기서 서성이고 있다. 오래 기다린 끝에 “몇 번 손님 들어오세요’라는 호출에 자리에 앉고 드디어 국수를 맞이하면 일단 예를 갖춰 사진을 찍고 몇 마디 의견을 더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릴 것이다. 무엇에 승리했는지 모르는 V와 함께 국수가 있다. 짧은 동영상 기능은 갖 나온 국물이 보글거리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 블로그 포스트는 이 국수에 관한 완벽한 메뉴얼이다. 식당 전경과 내부 모습, 각 메뉴의 특징과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당의 위치 소개.


저녁이 되면 더 가까운 곳에 다른 맛집이 있다. 역시 가게 앞에 대기할 수 있는 의자가 있지만, 많은 사람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서 고깃집 안이 보인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안에서 먹고 있는 사람들이 열린 창을 사이에 두고 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눈웃음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그 밖에도 집 주위에는 소문난 집이 여럿 있다. 위에 적은 두 집도 자주 가던 곳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못 가게 되었다. 현지인은 가지 못하는 현지인 맛집. 다행인지 두 집 모두 맛이 좀 달라져서 아쉬운 마음은 없다. 밀어닥치는 고객들은 국물과 고기의 공장 제품화를 이뤄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음식이 나오듯 기계화되고 마찬가지로 고객들도 번호표에 따라 들어가고 나온다. 더는 ‘오늘 면이 잘 삶아졌네’나 ‘넙치 자연산 들어왔수다. 옵써’ 따위의 말은 없다. 주인장들하고 눈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지만, 어쩌다 동네에서 마주치더라도 서로 이해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제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여행 경로에서부터 숙소와 맛집. 추천과 비추천. 그래도 아름다웠다. 그런 말들이다.


싫어하는 말 중에 제주를 ‘정ㅋ벅ㅋ’ 한다는 표현이 있다. ‘정복’을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메뉴얼과 참고서로 완전 정복에 익숙한 사람들은 제주도 그렇게 단번에 ‘정복’하고자 한다. 그래서 맛집으로 소문 난 식당 앞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그 음식을 ‘정복’한다. 단번에, 효율적으로, 완벽하게!


‘먹방 여행’도 그렇지만, 다른 관광지를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 읽는 것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경험도 많이 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실제 경험할 수도 없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다. 그런데 사실은 ‘실적’이었다. 나는 그 책을 다 읽음으로써 하나의 ‘실적’을 추가한 것이다. 그것은 ‘다독’이나 ‘완독’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해보다는 읽은 책 목록에 포함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고 나면 ‘그랬었나?’ 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요즘은 사람들이 잘 안 읽는다는 소설을 많이 읽고 싶다. 그것에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많이 읽고 싶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변한 게 있다면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읽으려 한다. 무릎을 탁 치며 뭔가 굉장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책이나 감동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까운 책일지라도 대부분 한 번밖에 안 읽었다. 다시 읽더라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은 다시 오지 않았다.


공학자인 탓에 논문을 읽었고 그 글에는 화려한 수사 따위는 감점 요인이 된다. 그 글을 읽는 독자인 나도 되도록 빨리 내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초록부터 도입부와 결론까지 형식이 있고 변형이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책을 읽는 것도 같은 방식을 도입하니 내용 파악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페이지 넘기는 속도는 빨라졌다.


이제 ‘읽은 척’ 목록에 있는 것들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할 판이다.


다시 제주도 


올레길에서 제주가 좋아 매달 온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끝내 직업을 물어보지 못했지만, 한 달에 일주일이나 적어도 삼 일 정도를 제주에서 보내고 간다고 했다. 그녀의 제주는 다 읽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책인 것 같았다. 


언젠가 제주에서 살 거라고 다짐을 반복하는 친구도 있다. 지난밤에 술 마시다 제주 이야기가 나와 불현듯 왔다며 불한당처럼 내 집을 점령하는 놈이다. 김포공항에 내리면 다시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했다. 매번 읽어도 다시 읽고 싶은 시집을 한 권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제주에 사는 친구들도 나름의 제주를 읽고 있다. 그들의 제주 읽기는 서로 다른 독서법을 가지고 있어서 토박이인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기도 하고 신기한 양념을 더 한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제주의 정복자로 와서 제주에 정복당한 이도 있다.


새 전자제품을 사면 메뉴얼을 숙독하고 사용법을 꿰차야 하고 업무를 맡으면 정확하게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제주 여행은 전자제품도 업무의 연장도 아니며 정복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제주 여행을 추억할 때 달성한 목표가 아니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제주를 읽을 때 그걸 단편으로 읽든 장편으로 읽든 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제주도 정복당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모습으로 응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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