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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웅 Apr 13. 2022

경제위기론 제대로 읽기

위기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한다. ‘경제위기’라는 제목이 들어간 기사만 지난 5월달부터 이달까지 1천여 건이 넘는다. 한편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를,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 규제 완화를, 또 한편에서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건설경기 부양을 이야기한다. “경제가 위기인데 과거 청산이 왠말이냐?”라는 뜬금없는 소리도 들린다.
그중에서 늘 이물감을 느끼는 것은 전경련이 마치 전체 경제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인용이 될 때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과 기업인들이 실은 전경련과는 관계가 없다. 그런 많은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기업을 하다 보면, 회사도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이에 맞춰 성장통을 앓고, 사춘기를 넘어서 성장하기도 하고 중도에 사라지기도 한다. 대개 신생 회사가 점점 커져 1백명단위로 들어서면 성장통을 앓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도입돼야 하는 것은 이때부터다. 개인의 자발성과 헌신, 동료들간의 친숙함이 제대로 된 시스템과 제도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1만달러 덫에 걸린 한국경제


갖추어야 할 핵심제도는 어느 회사든 비슷하다. 엄정하고 과학적인 평가와 보상체계, 체계적인 인재육성제도, 권한과 책임이 적절히 조화된 직무와 역할의 배분, 전사적 전략기획기능의 구축, 신속하고 정확한 회계 제도의 수립 등이 그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보상이 형평을 잃기 시작하면 그 회사의 수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는데 게을러, 늘 하던 사람으로 꾸려간다면 그 회사는 새롭게 찾아오는 기회를 잡지 못한다.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할 전략기획 기능을 제때 갖추지 못하면 덩치가 커진 부서들이 각기 따로 노는 회사가 된다.


'기업문화’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이때다. 이 회사가 최고로 치는 가치는 무엇인가? 장려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등이 명시적으로 규정되고, 거기에 따라 공통의 행동양식과 가치 규범이 작동하여야 한다. “삼성의 오늘을 만든 것은 ‘인재제일주의’라는 기업문화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거론할 때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회사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듯, 한 나라의 경제도 그렇다는 사실이다. 1만달러까지는 1만달러의 제도와 시스템이 있고, 2만달러에는 2만달러의 시스템과 문화가 있다.


한국경제는 흔히 1만달러의 덫에 잡혀 있다고 한다. 한국경제의 평가와 보상, 신상필벌의 제도는 우리가 왜 1만달러의 덫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곳곳에 땅을 사둔 사람이 큰 보상을 받고, 제조업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박봉에 시달리는 ‘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이 덫을 벗어날 수는 없다. 제조업을 하는 사람을 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부동산 투기가 가장 지혜로운 재산증식수단으로 소개되고, 부동산 구매법을 가르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재벌의 아들이 대를 이어 재산을 물려받는 ‘보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덫을 벗어날 수 없다. 탈세를 권장하기 때문이다. 천억 원이 넘는 돈을 해외로 빼돌려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필벌’제도를 갖추고 있다면 역시 벗어날 수 없다. 룰을 어길 것을 권장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청산과 새 시스템 도입 필요


‘경제위기’와 함께 흔히 거론되는 ‘적자 재정 편성’, ‘건설경기 부양’ 등의 논리가 허술하고 궤변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용카드 정책의 실패로 몇 년간 쓸 돈을 당겨 쓴 탓에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IMF 위기’이후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져 내수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면 잡아야 할 것은 신용 불량의 해소와 빈부격차의 축소다. ‘대기업 감세’는 부자를 위한 제도일 뿐 아니라, 정부 재정을 엄청난 적자로 만들어 놓는다. 일본의 10년 불황이 보여주듯, 개혁이 따르지 않는 ‘경기 부양책’은 감기에 물파스다.


그러나 이런 ‘경제위기론’과 ‘재벌 규제 완화’론들이 가장 치명적으로 위험한 것은, 선악을 떠나 이들이 논의 테이블을 모두 차지해 아예 다른 주제가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 어느때보다 ‘과거의 청산’과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공정한 보상과 평가, 체계적인 인재육성, 투명하고 상식적인 게임의 룰, 전략적인 자원의 배분이 새로운 한국경제의 강력한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한창 좋은 시점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하고, 경기가 나쁘면 “하필 이럴 때”라고 한다. 변화에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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