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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시 Jan 19. 2020

인생은 실전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인생은 실전이다

굉장히 오랜만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읽다가 잠시 덮어야 하는 순간이 올 때가 아쉬울 정도로 잘 읽혔다.

수록된 8편이 모두 인상 깊거나 공감되진 않았지만 어쩌면 나 또는 주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몰입감이 훌륭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작년에 제21회 창비 신인소설상 수상작으로 소개되어 소셜미디어상에서 크게 바이럴 되었었다.

나도 그 때 페이스북을 통해 무심결에 읽고서 '좋아요'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전문이 공개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일부만 보이는 링크 밖에 못찾겠다. )


공개된 글의 내용은 IT업계 유명한 중고거래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로 일하는 '안나'와

회사의 단골고객이지만 어뷰저로 낙인찍힌 '거북이알'의 오프라인 만남에서 나눈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낸다.


하루에 백 개도 넘는 게시글을 올리는 덕에, 게다가 대표가 싫어하는 거북이 사진을 프사로 해둔 탓에 

남의 것을 횡령하는 도둑놈(?)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게 되고, 제발 그를 좀 말려보라는 미션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한다.


물론 '거북이알'은 도둑놈도, 횡령범도 아니었다.

수개월 째 월급을 현금이 아닌 포인트로 지급받고 있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정에 '중고거래'라는 살길을 찾은 것뿐이었다.


평소 즐겨 쓰던 한 서비스에 대입되어 더 잘 읽혔고, 현재 유사한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성격, 상황 그로 인한 대처 방법이 매우 익숙해서 더 흡인력이 있었다.

자꾸 읽다가 '그때'가 떠오르고, '그 양반'이 떠오르고 막 그랬더랬다. 

어디를가나 인간 군상은 비슷하다고 하면서.



⌜템페레 공항에서⌟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이 글이 제일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온도 차가 크다고 생각했다.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해 급히 떠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경유지인 판란드 공항에서 만난 초록 눈의 노인.

함께 거닐은 짧은 산책에서 서로의 모습을 각자의 사진기에 담고, 이를 보내준다며 주소를 적어주고.


분명 낭만적인 일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며 신기해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정말로 그 노인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하루빨리 답장을 보내고 싶어 우표도 사뒀지만, 현실은 노인에게 답장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일투성이였다.

어느새 답장을 하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책상 앞에 붙여둔 오로라 엽서도 서랍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 사실 내가 답장을 해주겠다고 한 적은 없잖아."


결국, 이런저런 현실에 치여 4대 보험, 상여금, 특근수당, 실비 보험과 같은 말이 푹신하게 다가오는 팍팍하고 평범한 삶을 산다.

애써 모른 척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보내지 못한 답장이 계속 짐처럼 남아있다.


나는 유럽 어느 공항에서의 이런 낭만적인 경험은 없지만 어쩌면 주인공이 보내지 못한 답장 같은 인연이 있다.

살다 보니 다른 목표와 배경으로 점점 연락이 뜸해진, 그런 사이.

아주 가끔 잘 지내나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연락하기엔 아무래도 동기가 부족하단 핑계로 말이다. 올해 생일에는 먼저 축하 연락을 해봐야겠다.




편마다 결말이 극적이거나 여운을 주진 않는다. 약간 허무하다고 느낄 정도로 삼삼하게 마무리되기도 한다.

스토리 내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곡선을 그리다가도 어떻게든 상황은 마무리되니까 그저, 무사하구나 할 뿐이다.


작가가 십 년간의 직장 생활 틈틈이 써온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나의 지나온 삶, 혹은 지나갈 삶의 미래를 읽는 기분이었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고 내일은 조금 더 낫길 바라며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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