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일기 두번째
사실 인터뷰는 나의 힘으로 만들어낸거다.
그 이유는 처음에 resume를 보내고 연락이 오질 않았다. 초조해졌다. 하던 공부를 멈추고 무언가에 홀린듯 끌려 지원했던, 평소에 관심있었던 업계에서 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인가. 결국 난 기다리지 못하고 붙었음 붙었다고 말이라도 해주고, 떨어졌음 왜 떨어졌는지 결과라도 알려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답장이 왔다.
!!!!!!!!!!!!!!!!!!!!!!!!!!!!!!
스팸에 들어간 내 resume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가엾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화도 못내고, 다시 한번 검토해달란 말을 남기며 답장을 보냈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 혼자 씩씩댔지만 1차 인터뷰를 보자는 답장을 받고, 나는 단순한 동물인지라,
금방 헤헤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내가 먼저 이메일을 안보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들뜬 마음으로 1차 인터뷰의 날을 맞이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정장에 넥타이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 때 드는 생각.
'스타트업인데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면 너무 융통성없고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정장을 벗고 티셔츠를 보고 있었다. 그때 드는 생각.
'그래도 면접인데 티셔츠에 청바지는 너무 놀러온 것 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마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은 인터뷰 보러 갈 때 부터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결국 정장에 노타이로 인터뷰를 보기 위해 충무로로 향했다.
사실 노타이 인터뷰는 나름대로 내 생애 최초로 시도해보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목이 너무 조여서 넥타이좀 풀었다가 정신의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비난까지 들었던 회사에 있었으니까...
오전 열시, 먼저 도착해서 어떻게 내 생각을 표현해볼까 정리하고 있던 찰나에 창업자를 만났다.
'기사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잖아!'
"우리 날씨도 좋은데,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이렇게 첫만남이 시작됐다. 날씨도 정말 좋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즐거워보였다. 그 가운데 나는 살짝 기분좋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처음엔 가벼운 얘기였다. 골목골목을 거닐며 이 가게가 맛있다느니, 이 카페는 맛없다느니 와 같은 어색한 얘기들을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로 들어왔고, 회의실로 들어오자 비로소 내가 인터뷰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하자, 과대/과소 없이, 평소에 내 생각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딱 보여주고 오자'
투수가 공을 던지길 기다리는 타자처럼, 나는 내가 멋지게 대답할 수 있도록 그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
그의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갖게된 아이처럼, 본인이 창업한 이유와 이 회사의 장점, 갖고 있는 문제점, 팀원들에 대한 자랑을 해맑게 이어갔다. 그리고 관련 산업에 관한 본인의 견해를 정말 심도있게 풀어나갔다. 인터뷰를 보러 왔다가 강의를 듣는 기분이랄까? 쉴새없이 쏟아내는 그의 말 속에서 어느순간, 내가 interviewee 라는 것도 망각하고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가다가 본인이 답답했는지 칠판을 사용하여 나에게 조금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업계에 속해있는 스타트업의 리더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하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재밌었다. 리더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스타트업에서 사실 창업자의 영향력는 절대적이다. 지위의 높낮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워낙 인원이 소수이고 초창기의 기업형태이기 때문에 창업자의 가치관이 기업 자체의 가치관으로 고착되고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이라는 것 자체가 창업자의 생각을,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만든 팀이고 그와 생각이 맞고 능력과 열정있는 사람들이 '함께' 그 꿈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 모인 집단이므로 나는 처음부터 리더의 언행과 생각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싶었다.
이윽고 질문이 왔다. 아마 인터뷰를 시작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저와 팀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은 없으신가요?"
질문은 질문있으면 질문하라는 질문이었다.
살짝 당황했다. 금방 생각을 가다듬다보니 내가 물어봐야할 것이 머릿속에서 명확해졌다.
"상훈님은 궁극적으로 이 회사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
사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것보다 궁금한건 별로 없었다.
매출액 1조, 상장해서 주식대박, 사용자수 몇천만, 이런 것들 따위를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정말 그가 꿈꾸는, 혹은 그의 팀이 꿈꾸는 회사의 '모습' 을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싶냐고 할 때, '일년에 일억 이상 버는 부모가 되고싶어',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보낼 수 있는 부모가 되고싶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저 질문에 대한 답이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 다르면, 이 팀에서 나에게 오퍼를 주더라도 나는 합류할 수 없었다. 억지로 끼워맞춘 조립은 언젠가 산산조각 나기 마련이니까.
"진심으로 저는 팀원들이 회사에 소비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길 원해요"
여기까지의 대답은 대기업 인사팀직원이라면 매일 버릇처럼 쓰던 문구였을 것이다.
"다음에 합류할 것으로 예정된, 하버드 졸업후 맥킨지에서 일하셨던 분께는 제가 부탁을 드려서 여러가지 경쟁력 있는 사고방식이나 분석방식 등을 세션 형식으로 공유할 것을 부탁드렸고, 팀원들이 각자 갖고 있는 재능을 극대화시켜 1~2년 후에는 각자가 각자분야에서 강연할 정도로 성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과 성장에 관련되어서는 어떤 가치보다 위에 둘 것입니다. 만약에, 그럴일은 없겠지만, 이 회사가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이 회사 출신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시장에서 신뢰의 시그널을 줄 수 있을만큼 우리 모두가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언급된 맥킨지식 트레이닝 세션? 은 지난주에 첫번째 세션이 시행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그 밖에 마케팅에서의 데이터 분석 기법 등, 각자가 갖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팀원들과 공유하는 세션들이 계속 기획되고 있다)
신뢰가 더해졌다. 사실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대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은 특정 부문의 일만 계속 해왔기 때문에 이곳 저곳 회사 전반에 관하여 모두 개입해야 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맡은 분야에 대해서는 경력의 힘으로 value add 를 확실하게 할 수 있지만, 이 살아있는 생명체같은 회사의 성장속도를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근원적인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을 해결해준 대답이었다.
1차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인터뷰는 12시에 점심까지 둘이 먹게 되었고, 2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금방 끝날 줄 알고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했었는데 삼만원 가까운 주차요금이 나왔다.
면접자 입장에서 뒤늦게 주차비 달라는 말도 못하고, 여러모로 이색적인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동창업자와의 2차 인터뷰였다.
지난번 2차 인터뷰에서 주차비 폭탄을 맞은 나는 파크히어라는 어플로 이만원을 지불하고 돈을 조금이라도 아꼈다라는 기쁜 마음으로 1차인터뷰와 같은 장소로 향했다.
공동창업자 역시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화만 해봐도 똑똑함이 뚝뚝 흘러넘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1차 인터뷰때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되었다.
1차인터뷰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창업자들끼리 더블체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2차 인터뷰라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가식없이, 과장없이 나의 생각과 뜻을 일관되게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공동창업자는 매우 바쁜 사람인지라 인터뷰는 1시간정도만에 끝이 났다.
...........결국 나는 1시간 주차하는데 이만원의 돈을 냈다....
3차 인터뷰까지 무사히 마친 나는 지원했던 스타트업에 합류하였다.
새로운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4일.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사서 읽으며 준비를 하며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첫출근의 날이 밝았다.
선릉역 10번 출구로 10시까지 발랄한 걸음으로 첫출근을 했다.
재미나고 어려운 일들이 나를 잔뜩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