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일기 세번째
"안녕하세요, 포세이돈 입니다"
지금은 어느정도 익숙해졌지만, 포세이돈은 현재 회사 내에서 나의 이름이다.
포돈, 포 등등 다양한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중인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은 사실 첫출근 직전에 지어졌다.
우리 회사는 P2P 렌딩 스타트업이다. 미국에서의 Lending Club같은 곳을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하여 투자자와 대출자를 서로에게 합리적인 금리로 연결해주며, 중간의 불필요한 마진을 모두 삭제하여 금융의 직거래를 꿈꾼다. 과거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하던 것들이 최근에 IT와 여러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하게 되면서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업체들이 경쟁을 시작하고 있는 산업이다. 핀테크의 가장 핫한 분야라고 생각하고, 나는 정말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합류하게 되었다.
대표의 이름은 루피. (우리 회사는 정상적인 회사 맞다)
루피를 첫 출근 3일전 일요일에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내가 왔음에도 쓰고있던 이메일에 푹 빠져있던 그. 얼마전에 본 영화 '인턴' 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나이와 직급을 따지게 되면 수평적인 문화에 방해가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모든 구성원을 직급 없이 영어 이름으로 하려고 했었다. 사실 많은 스타트업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기업에 다니던 나는 초반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지금은 택배 아저씨께서 누군가를 찾아왔다고 하면 그게 누구지 할 정도로 영어 이름에만 익숙해진것이 문제이지만.
우린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하다가, 자연스럽게 웃긴 이름은 어떨까라는 주제로 넘어갔다.
"이름이 웃기면, 화를 내려다가도 빵 터져서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이것이 우리 회사에 포세이돈이 있고, 그 옆자리에 제우스가 있으며, 터보라는 개발자와 루피 등등이 존재하는 이유 였다.
의도는 잘 맞아갔다. 사실 합류한지 두달이 되어가지만 팀원들의 나이를 잘 모른다. 어느정도 짐작은 하지만 정확하게 나이를 모른다. 신경을 안쓰다보니 느끼게 된 점인데, 나이는 크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모르고 있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동안 뭘 그렇게 나이를 따지며 살아왔을까, 나보다 높네 낮네, 빠른년생이니 아니니, 친구인가 형인가를 따지며 필요이상의 에너지, 관계 소모를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첫 출근의 날로 돌아오자.
출근시간은 10시까지였다. 10시부터 저녁 7까지가 근무시간이었는데 전직장에선 아침에 매일 5시30분씩 일어나던 버릇때문에 첫출근날 몇번을 깼다가 다시 잠들고 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긴장도 됐을테니까.
어느회사나 그렇지만 첫출근하자마자는 약간 뻘쭘하다. 그 회사의 내부적인 프로세스나 시스템에 대해 설명듣고 적응을 최대한 빠르게 하여 바로 아웃풋을 내야하는 것이 나같은 경력직의 역할이니까. 처음 며칠은 그렇게 설명을 들으며 회사에 적응했다. 아직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어색하고 모든 자리를 다소 불편하지만, 한가지 눈에 띄는건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길에서 만나면 보통 대학생처럼 보이는 이들이 그동안 팀을 이렇게 성장시켜왔다는 것인가.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고 있을까. 단순히 열정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경험이었다
회사에 신기한 것이 있다. 충전의자? 딱히 명명하진 않았지만 일하다가 졸리면 혹은 머리가 아프면 이곳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점심먹고 열심히 일하다가 이곳에서 10~20분정도 휴식을 취하면 저녁시간때까지 또 달릴수 있다. 내가 회사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문득 이곳에 앉아있으면, 화장실 갔다온다고 하며 변기뚜껑 덮어놓고 핸드폰 꼭 부여잡고 자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땐 또 그런 곳에서 그렇게 잘 잤다. 코도 골아봤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생각을 하면서.
나는 회사에서 대출심사와 프로세스 개선을 담당하고있다.
내가 은행에서 배운 지식과 약간의 실무경험을 이곳의 데이터, 기법을 결합시켜 우량채권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하는것이 나의 역할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핀테크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편리한 프로세스' 를 만들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내가 맡은 분야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전략, CS 등등 대부분의 분야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참여한다.
아직까진 인원이 적으니까 가능한 구조라 생각한다. 우리 팀도 내년에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아무래도 분업화가 지금보다 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때쯤이면 나도 점점 나의 분야와 관심분야 1~2개 정도를 깊게 들어가는 생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나는 기업에서 일하고싶은 대학생분들은 정말 스타트업을 한번쯤 경험했으면 한다. 대기업도 좋은 점이 많은 곳이지만, 회사가 운영되고 성장하는 것을 경험하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된다. 경험만 하고 다른 분야를 가도 되니깐, 한번 정도는 꼭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오라 하지 않아도 일요일에 각자 나와서 일을 하고,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고, 강제로 하는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모두가 일을 한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고민을 하고,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공유하려한다.
문득 드는 생각, 이러한 모습은 대기업의 CEO들도 만들고싶은 분위기가 아닐까? 대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의 리더가 꿈꾸는 기업의 모습일 듯 하다. 한 기업의 구성원들이 모두가 이러면, 몇 만명의 대기업 구성원들이 모두 이러면 그 기업의 미래는 장밋빛일텐데. 왜 현실은 다를까. 특히 우리나라는 왜 더 심할까. 이러한 모습이라면 우리 회사도 결국 커지면 다른 회사와 똑같아 지는 걸까. 한명 한명 뽑을때마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도 결국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지면 우리도 별 수 없어질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문화' 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러한 생각은 우리회사의 리더인 루피, 제우스와도 생각이 맞았다. 구성원들을 '규칙,규정'으로 통제하려하면 그 조직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라 생각된다. 시간의 차이지만 종착지는 쇠락일 것이다. 자유를 빼앗긴 조직에선 뛰어난 인재는 들어오지 않으며, 기존의 뛰어난 인재는 나가게 된다.
문화로 조직을 이끌어간다면, 규정이 아닌 문화가 회사 생활의 중심이 되게 한다면, 구성원들의 자유를 빼앗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 회사도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문화를 정의해보는 것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군가 알려주지도 않는 것이지만 우리는 몸소 느끼고 있으니까! 사실 쉬운 작업은 아니다, 13명의 인원을 대상으로 우리 회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을때 놀라울 정도로 서로가 다른 단어를 적어 냈었다 ^^.. 앞으로 많은 대화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내가 궁금해하는건 팀,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언제까지 문화가 규칙, 규정을 대체할 수 있을지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기업이 점점 성장하고 커지면 언젠가는 규정을 명문화하여 벌점 등등 도입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도입해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까, 오면 언제쯤 올 것인가, 영원히 이런 순간들이 오지 않게 할 순 없을까. 이런것을 바로 내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