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우리가 만들어낸 상품을 판매한다.'
내가 이 팀에 합류했을 때, 우리 팀은 전략의 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개별채권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던 우리는, 정책을 수정하여 개별 채권 수십개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어 하나의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의 개인대출채권에 대해서 투자를 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면 자동으로 해당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수십개의 개인대출채권에 1/n 씩 분산투자가 되게 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확률이 작지만) 발생할 수 있는 채권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투자자가 받는 위험을 최소화 하고자 하였다. 즉, 하나의 채권에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더라도 나머지 n-1개의 정상채권에서 발생하는 정상이자분이 채무불이행을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을 기대했다.
사실 내가 팀에서 맡은 역할은 웹 혹은 모바일을 통하여 신청하는 수많은 대출 신청자들 중 우량한 신청자를 선별하여 포트폴리오에 넣는 채권을 만드는 것이다. 스타트업 특성상 이 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업무는 심사 및 채권생성이라고 볼 수 있다.
긴장이 많이 됐다. 은행에 있을 때에는 은행 내부 규정대로 처리를 하면 어느정도 책임을 면할 수 있었는데, 이곳은 얘기가 다르다. 특히 우리같은 스타트업에서 불량 채권 1개는 곧 초기 명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은행에 있을 때보다 심사할때 10배의 공을 쏟은 것 같다.
수많은 개인대출채권을 생성하고, 그 채권들의 첫번째 변제기들이 무사히 한 사이클 지나갔을때의 안도감을 잊을 수 없다. 심사할때 우량하다고 믿고 실행했지만, 정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의 불안감은 자다가도 꿈에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회사내에서 개발하고 있는 여러 새로운 기법들에 내가 은행에서 배웠던, 경험했던 것들을 녹여내어 아직까지 단 1건의 부실도 없이 순항하고 있다. 앞으로도 투자자의 보호 장치를 고안해내는 것과 별개로 안전한 수익을 제공하는 개인대출채권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할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드디어 이 채권들을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판매하는 시점이 공개됐다.
바로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제테크박람회였다. 찾아보니 굉장히 큰 행사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기관(은행, 보험사 포함)들이 참여하는 대형 이벤트였다. 그곳에 내가 만든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포트폴리오를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설명하고 판매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상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준비과정은 즐거웠다.
우리 팀은 내가 오기 전에 개별채권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이번 행사에서 판매되는 채권포트폴리오의 판매액이 제테크 박람회 전 실행된 개별채권들의 합계액보다 컸으니 사실상 우리팀의 오프라인 데뷔전이었다.
설레는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을 장가,시집보내는 기분이랄까. 전날 꽤 잠을 설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불안한 감정보다는 설레는 감정이 훨씬 컸다. 자신이 있었으니까.
행사 당일, 정부 고위 관계자분들과 기존 금융기관의 고위 관계자분들이 커팅식을 하는것으로 이틀간의 행사는 시작되었다. 이때가 유일하게 다소 긴장했었던 것 같다. 근질근질하기도 했었고. 사실 나는 원래 은행원이어서 그런지 누구든 오면 우리 상품에 대하여 충분히 전달할 자신이 있기도 했다.
드디어 데뷔전 시작이다
이틀간은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밀려드는 방문객분들과 시끄러운 장내 분위기로 인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으로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우리 상품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이며 거액의 투자를 신청한 분들도 계시고,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분들중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다.
큰 경험이었다. 목표로 한 금액을 초과하여 채권포트폴리오 상품을 판매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현장에서 우리가 속한 산업에 관련된 수요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제테크 박람회 전에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고 다같이 모여 의견을 나누다보니, 최고의 경험은 바로 '현장의 목소리' 를 듣는 것이었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이 계시면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꼭 한번쯤은 오프라인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직원분들이 직접 들으셨으면 한다. 온라인에서 수집되는 정보들도 소중하지만, '생생하다' 라는 수식어에 어울릴만한 고객의 목소리였다. 정말 실수요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며, 어떤 곳이 해결하면 그들이 의사결정을 하는지에 대하여 제테크 박람회 현장에서의 수많은 작은 실패와 작은 성공들을 통하여 우리 구성원들이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핀테크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아마 제테크 박람회가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라인 행사가 될 수 도 있다. 내부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는게 온라인에 비하여 얼마나 내부 프로세스에서 과부하가 걸리는지도 모두가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온라인으로 효율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가야하는 당위성을 얻었다고나 할까.
제테크박람회를 기점으로 우리 팀은 더 빠르게 성장 중이다.
마치 드래곤볼에서 사이어인들이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나면 그 전보다 훨씬 강해지는 것처럼, 이렇게 팀 구성원 모두가 어렵지만 극복할만한 경험을 동시에 했고, 해냈다는게 중요하다.
그렇다, 역시 결론은 '도전' 이었다. 준비할때에는 '두번 다시 못하겠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기저기서 아픈 소리들이 나왔지만, 우리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면
도전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팀은 이런 '고생' 을 찾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도전하고 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