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예찬

로드바이크 사랑, 자전거를 타면 알게 되는 것들

<20년 만의 인도 델리, 2017년 11월>


20년만에 인도를 다시 찾았다. 대부분 업무출장으로 해외를 방문하게 되지만, 유럽이나 미국이 대부분이었던데다 근래에는 실리콘밸리를 서너달이 멀다하고 출장길에 오르고 내리지만, 못 본 사이 인도의 강산은 두번이나 바뀐 것이라 여기니 감회가 새롭다. 한 장소에 대한 두 기억은 20년전의 것이던 2년전의 것이던 어제일만 같은 착각이 인다. 내 입국자격을 가늠하던 인드라간디 공항의 공무원이나 미팅에서 만난 인도인 변호사는, "20년만에 다시 찾았다." 고 하는 말이 너무도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 순간 그 얼굴 덩그런 한국인이 겪었을 법 한 자신들의 어릴 적 혹은 젊었을 적 인도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렴풋하지만 그 때는 길바닥에 널린 것들이 많았다.그 중에 한 무리는 자전거였는데, 무질서속에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거대 무리의 고기떼를 연상시키는 자전거 무리는 지금은 하얀색 자동차 행렬과 모터바이크로 바뀌어 있다. 이젠 세가 많이 약해진 자전거들을 볼라치면, 영락없이 낡고 어색하리만치 큰 바퀴의 얼기설기한 자전거들이 불안하게 도로 위를 헤쳐나가고 있다.


델리에 가까운 구르가온에서 이틀 째 일정을 마치고 뱅갈루루로 이어지는 국내선에 몸을 싣고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일을 더 잘 해보려는 마음에 OpenRTB 스펙 문서를 꺼내 읽었다. 조금씩 지쳐갈 즈음, 문득 떠오른 20년이 지난 인도의 자전거 영상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꼬부랑 글씨의 문서를 덮고 자전거를 그리는 글을 쓰게 만든다. 이 글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순 없지만, 자전거에 대한 예찬 가득한 마음이어서 글 제목도 미리 정해서 써둔다. 세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비행시간 동안 글쓰기가 끝날 것 같지도 않지만, 꼭 한번 글로 남겨 놓고 싶었던 그런 주제이다.


나름의 의도적 진화(?)를 거듭해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필자는 "디자이너"라는 직함으로 프로페셔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가까운 모든 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한 워커홀릭이었는데, 피가 펄펄 끓었던 시절 한켠의 기억 중에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내고자 꼬박 2개월여의 시간동안, 혼자 자취를 했던 집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간간히 들릴 정도로, 새벽녘의 별빛을 등진 채 매일같이 드넓고 어두운 사무실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시절의 그것도 있다. 그때 사귀었던 지금의 내 아내는 지금도 기억하길 정말 나와 인연을 끊고 싶었단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이가 내 곁을 끝까지 지켜주고 아내가 되어 준 덕에 사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으니, 나 같이 아내 복 넘치는 이도 드물다. 이러다 아내 예찬 글이 될 것 같아서 이 얘기는 여기서 줄여야겠다. 다시 워커홀릭의 그때로 돌아와,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고통스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자뭇 남달라 보였던 성과들은,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이 택해야할 방정식이 무엇인지 말해주었고, 무언가 숙제가 생길 때면, 마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수반해야만 젊은 '열정'의 근거라도 되듯 편향적인 성실함을 추구했다.


그랬던 인생이 이제 자전거를 탄다. 기백을 들여 처음으로 '내' 자전거를 장만했을 때는, 부들부들 떨리는 핸들바를 쉴 새 없이 좌우로 흔들며 겨우 넘어지지 않고 페달링을 했던 울트라 초보였지만, '미치면 얻는다'고 하듯이 이제는 자전거로 달릴 땅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면 달라지는 것이 많다. 이미 항간에 잘 알려진, "인류(지구)를 구할 몇가지 발명" 중 당당히 1위의 자리를 차지한 자전거의 그 떳떳한 위상은 자전거가 발명되고 200여년의 세월 동안 공고히 다져져 왔다. 그런 자전거의 육체 구석구석을 어루만질 때 마다 느껴지는 오랜 세월을 거친 특별한 마감과 디자인, 그리고 섬세한 장치들은 경외심 마저 들게 한다. 8kg이 채 되지 않는 가볍고 날렵한 몸매는, 사람의 골격과 기능성 큰 마디들에 해당하는 카본 프레임, 구동계, 휠, 그리고 핸들바로 이루어져있고, 그 구동계와 휠을 두 손 끝의 짧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육 그리고 신경계와도 같은 와이어들과 작지만 앙칼진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전거는 오브제이다.

<서울한강 난지공원에서 쉬고 있는 '내' 자전거>


그러나, 그토록 아름답고 우아하기까지 한 오브제는 제 힘으로 서지 못한다. 로드바이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자 불필요한 무게를 버려야 했던 탓에, 달리지 못할 때는 누군가에 기대어 의지하거나 땅바닥에 비스듬한 각도로 누워 지낼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최고의 작품이다. 그 불완전성은 역설적이게도, 이 오브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라이딩의 미학을 추구하는 또 다른 불완전성과 하나가 될 때 완전체를 이룬다. 유연한 몸놀림과 부풀어진 근육의 에너지는 심장을 쉴새 없이 펌프질하고, 뿜어져 나오는 혈액을 두 발바닥의 좁은 접점을 통해 자전거의 모세혈관에 까지 밀어낸다. 비로소 하나가 된 완전체의 혈액은 한순간의 머무름도 허용하지 않는 땅과 맞닿은 단 두개의 점을 통해 땅을, 그리고 그 땅과 감싸는 바람과 하늘을 그 혈액 속으로 받아들인다.


자전거는 놀이다.

<지난 여름 두번째 동해라이딩, 월천리>


흙을 밥으로, 조그만 돌맹이에 사정없이 짖니겨진 풀떼기을 반찬 삼으며 세상을 담았던 그때의 소꿉놀이 밥상 처럼, 세상을 또 다른 그릇에 담아낼 줄 아는 상상력은 빛 바랜지 오래지만, 자전거를 달림으로써 다시금 땅과 하나되고 쇠백로와 함께 날며 고라니를 놀래킨다.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지식을 더해주는 것도 아니고, 수입이 부풀려지는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자전거는 그 인생의 결계들을 풀어 자연으로 나를 내어놓을 수 있게 해 주는 즐거운 놀이다.


지난 여름 휴가 중에 "인생아, 웃어라"라 이름 지워진 수필집을 읽었는데, 글쓴이는 원영스님이라는 분이다. 그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저서 중에 이런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즐거움을 주는 한가지에 제대로 미쳐보라. 돈이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을 일깨우는 '즐거움'을 기준으로 찾으라. 그리고 미쳐보라

<원영스님, "인생아 웃어라" 에서>


기억에 의존한 터라, 제대로 원영스님의 글귀를 원형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놀이나 취미에 대하여 지금까지 이것저것 냄새만 킁킁거려보는 모양새이거나 스스로 '나는 멋진 취미가 있'노라 세뇌를 하며 흉내만 내었었지 제대로 된 그것을 가져보지 못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필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 방정식 속에서 이미 정해진 그럴싸한 역할과 위상에 걸맞는 악세사리 정도로만 '취미'와 '놀이'를 이해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진정한 놀이는 가슴이 먼저 알아차리고, 오롯이 내 있는 모습 그대로 흠뻑 빠져들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놀이는 나로 하여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관계 속에 정의된 사회적 의무로 부터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일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것이라는 단순한 이치를 배우는데 꾀 긴 세월을 들여야만 했다.


자전거는 최고의 PT(Personal Training) 코치다.


미국 시카고를 처음 찾았을 때 필자는 나이가 어느 정도 찬 대학원생의 신분이었다. 다른 언어와 공부 때문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주식(Main diet)이 바뀐 탓인지 더해가는 나이 탓인지 그때 부터 내 배가죽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해보지 않은 운동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가벼운 몸을 그리워 했지만, 한번 편안해진 복부는 야속하게도 깨어날 줄 몰랐다. 그렇게 푸근한 중년남의 모습으로 굳어지는가 싶더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지난 초여름, 한달여 동안 체중이 6킬로그램이나 줄었다. 그간 10여개월 동안은 몸에서의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던 터였는데, 철인경기를 하는 후배 디자이너와 230km의 거리를 하루 꼬박 달렸던 서울~춘천 왕복 라이딩이 트리거가 되었던 것인지, 그 후로 몇 주에 걸쳐 체중이 몰라보게 줄었다. 그냥 체중이 준 것 뿐만 아니라, 오랜시간 책상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직업 탓인지 고질화 되어가던 허리통증마저도 지방 가득했던 뱃살에 숨어 지냈던 것 마냥 뱃살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여전히 가늘어 안타까운 두 다리지만 섬세한 근육질로 바뀌어가는 변화가 확연했다. 최소한의 체중 관리를 위해 겨우 시간을 내어 하던 '운동'이 이제는 자전거를 더 잘 타기 위한, 전혀 다른 목적으로, 그러나 훨씬 빈번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칼로리를 태우고 근육을 단련시키는 제대로 된 '과정'이 되어간다. 좋으면 느낄 사이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의도할 필요도 없이 마음이 이미 가 있게 되는 이치를 몸으로 배운다.


자전거는 만남이다.

<첫째와의 제주도 자전거일주를 시작하며>


우리집 첫째가 사춘기를 겪던 시절 그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동안, 집안에 평화는 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던 때 필자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꾀를 내어 첫째를 설득해서 단둘이 제주도로 자전거 일주여행을 떠나는데 성공했다. 한 겨울 거센 바람과 찬 바닷 공기에 자전거를 한창 즐기던 필자도 쉽지 않았던 라이딩이었는데, 평소에 자전거를 타지 않던 첫째에겐 더더욱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자전거 라이딩의 경험이 깊지 않았던 필자의 여행계획은 모자라기 짝이 없었다. 한 겨울의 제주도를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은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 240km의 거리를 달리는 계획. 하지만, 자전거를 통해 첫째와 오롯이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던 아이디어 만큼은 칭찬받을 만 했다. 거칠고 차가웠지만 제주도의 풍광은 해변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작은 점 같았던 우리 둘을 끌어 안아 주었고, 아빠는 예전에는 한 없이 안아서 키웠던 그 아들을 수년 만에 다시한번 안을 수 있었다. 한겨울 페달질에 차가워져만 가는 아들의 발을 조금이라도 덥혀볼까 연신 두 손으로 부벼보지만, 이미 아빠의 두 손 보다 훨씬 크게 자라버린 아들의 발들은 작은 아빠의 손이 안쓰러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와 자전거를 함께 타는 것은 조각난 공간속에서 한명의 운전자와 나머지 승객의 관계를 형성하게하는 자동차의 그것과는 다르다. 두 사람을 혹은 그 이상의 무리를 한껏 묶어 놓는 걸음의 그것과도 사뭇 다르다. 잠시 동안만의 페달링으로도 뮤지컬의 무대가 전환하듯 바뀌는 시공간의 변화는,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자연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함께하는 이와 공존할 수 있게 한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또한, 자전거 라이딩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뛰어넘게 해준다. 앞장 선 이가 만드는 후류를 타고 그의 페달질에 맞추어 몸짓을 맞추다 보면 한결 부드러워진 라이딩으로 익숙하지 않은 자연과 공간에 있는 자신과 함께하는 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 앞장선 이는 온 바람을 가슴으로 안아 뒤에 이어 붙은 이를 이끈다. 이 모든 것은 너무도 가볍고 번거로움 없이 일어나기에 꿈만 같기도 하다.


자전거를 같이 타는 친구 병문은 이런 글을 지었다.


친구의 손, 서늘함 가득한 가을 바람도 따사로움으로 느껴지며 한결 가벼워진 페달. 언제나 등뒤에는 '친구의 손'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한장의 사진입니다

<유병문의 시, "친구의 손" 중에서>


자전거는 꿈꾸게 한다.

<서울부산 국토종주, 무심사에서>


작은 꿈일 수 있겠지만 그 명료함이 좋고 한번도 꿈꿔본 적이 없는 꿈이어서 반갑다. 곧게 뻗은 동해변 등허리를 따라 끝까지 달려보기도 하고, 남한강을 거쳐 새재길의 운치를 맛보며, 고향 물길인 낙동강을 저어가듯 타고 흘러 부모님이 계신 오랜 집으로 자전거를기도 한다. 오는 겨울에는 서해변을 찾고 싶고, 언젠가는 꼭 유럽 땅을 자전거로 돌아보고 싶다. 길 하나하나가 어디론가 향하고 그러다 어디선가 다시 만나듯 모두가 닮디닮은 길이지만, 어떤 때는 내 체력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하고, 어떤 때는 내 담력을 가늠해 보려는 듯 하다. 그리고 한없는 외로움 속에 나를 던져 놓기도 하고 단순하지만 분명한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와 하나가 되는 매순간이 소박하지만 새로운 기대로 가득하다.


어느덧 인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안이다. 늦은 밤 뱅갈루루를 출발해 새벽을 지나는 시간에 뭄바이를 거쳐 인천으로 향하는 KAL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긴 비행이 아직 남았지만, 리듬이 깨져버린 몸은 새벽녘에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 글도 이렇게 하염없이 써내려 가다간 끝 맺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자전거와 라이딩에 대한 찬사로는 겨우 끄적거림 정도에 불과하지만, 자전거를 통해서 몸이 맞이하는 영상, 소리, 감촉에 대한 기억과 머리속으로 이어지는 관념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게 된 것 또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로 다시한번 그 이름을 알린 작가 김훈은 상당한 자전거 예찬가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작가에 대한 알려진 바가 아니더라도 그의 자전거에 대한 글을 읽고 있노라면, 자전거를 타는 모든 감각의 향연이 그의 글 속에서 되살아나는 듯 하다. 그의 글 "자전거 여행"을 여는 글 중의 한 귀절로 이 '자전거 예찬'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서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 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김훈, "자전거여행"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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