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대산 업힐 라이딩, 조침령, 구룡령, 운두령

극한의 업힐 라이딩 (GPX 파일 첨부)

여섯 번째 백두대간 라이딩은 양양(고속버스) 진부(KTX)를 잇는 오대산이다. 고갯길이 너무 험해 나는 새도 자고 다시 오른다는 조침령, 아홉 마리의 용이 아흔아홉 구비의 고개를 넘다 지쳐 산골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었다는 구룡령, 항상 운무가 넘다 든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포장도로가 난 백두대간 고갯길 중에 만항재(해발1,330m 함백산)에 이어 두 번째 높다는 운두령(1,080m), 이렇게 백두대간 3 개령을 하루에 넘는다.

획득 고도 2,400m, 라이딩 거리 106km다.  


마지막 운두령. 백두대간 라이딩은 함께할 친구를 찾고 시간을 맞추기 까다로운 탓에 외롭기 십상인데, 이번엔 든든한 친구들과 즐길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사진도 찍어주고 말이다


조침령


눈부신 가을볕을 한껏 받은 회색빛 도로가 벽처럼 우뚝 앞을 가로막고 선 듯
라이더를 압도한다.

양양에서 44번 설악로, 56번 구룡령로를 차례로 18km 정도 달리면 서림삼거리에 다다른다. 시작부터 여기까지도 대체로 오르막이지만, 조침령의 악명 높은 업힐을 위해 웜업 하는 셈 치자.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곧바로 경사로가 시작되어 4.1km가량의 업힐이 고개 정상인 조침령 터널까지 이어진다.


전반부 2km는 평균 경사 11.6%의 숫자만 봐도 양쪽 다리가 굳어질듯한 업힐인 데다, 거의 직선에 가까우리만치 뻗어있어 업힐 라이딩을 하면서 고개라도 들어 위를 쳐다볼라치면 눈부신 가을볕을 한 것 받은 회색빛 도로가 벽처럼 우뚝 앞을 가로막고 선 듯 라이더를 압도한다. 길게 뻗은 도로엔 10~20m 정도 잠시 숨 돌릴만 한 틈 조차 보이지 않으니 다시 얼굴을 땅에 박은채, '페달을 누르다 보면 언젠간 오르겠지.'를 주문처럼 외게 된다.

조침령 후반부 시작

반복되는 주문에 멍해질 때 즈음이면 후반부 2.1km에 접어드는데, 지그재그 헤어핀 도로가 시작된다. 경사는 전반부보다는 덜 사나운 편(8.7%)이지만 숫자가 그렇다는 것일 뿐 두 다리에는 큰 의미는 없는 듯하다. 매번 코너를 돌 때마다 저 코너만 돌면 금방이라도 조침령 터널이 보일 것 같지만, 다시 주문을 외운다.

조침령터널 (고개 정상)


구룡령


구룡령을 가기 위해서는 조침령 터널에서 서림 삼거리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이러다 브레이크가 터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근거 없는 걱정과 함께, 마찰열이라도 최대한 낮춰보려고 브레이크를 쥐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깃털처럼 가벼워지다 못해 앞으로 쏠려 먼저 나가려는 엉덩이까지 챙기느라 잔뜩 긴장한 손과 어깨가 돌처럼 무거워질 때 즈음 앞을 가로지르는 구룡령로(56)가 시야에 들어온다.


서림 삼거리에서 구룡령 정상까지는 약 20km인데, 꾸준히 오르는 오르막이다. 미끈하게 뻗은 도로가 가끔은 평지와 같은 착시를 일으키긴 하지만, 엄연한 오르막길에 자전거가 바퀴가 무겁기만 하다. 남에서 밀려오는 바람까지 도와주질 않는다.

양양(좌측)에서 진부까지 고도변화. 3 개령 중 두번째 구룡령. 10km가량 이어지는 업힐


미천골을 지나며 경사는 힘겨워지는데 정상까지 16km. 갈천 산촌에서 첫 급커브였던 것 같은데 본격적인 업힐이 고개 정상을 10km나 남겨놓고 시작된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실감 나는 지점이다. 평소 서울 남산이나 분당의 하오고개, 길다고 해 봐야 북악산 정도오르내리다 이런 백두대간의 업힐을 만나게 되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운두령


그걸로 오늘 힘겨운 하루의 보상은 충분했다.
사진도 좋지만 마음에 꼭 담아두고 싶은 장관이다.

구룡령 남측 내리막은 원당삼거리까지 약 18km가 이어진다. 원당삼거리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여줄 아메리카노 한 잔과 마지막 운두령을 오를 에너지를 쥐어짜 내기 위해 편의점에서 당분과 탄수화물을 밀어 넣듯 섭취한다. 어느덧 해도 넘어가며 시골마을의 스산함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내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는지, 처린(팀 동료)은 내 어깨와 후두근쪽을 마사지해주었다. 덕분에 잠시 동안은 온몸에 피가 다시 통하기라도 하듯 잔뜩 기장했던 근육이 이완되는 듯했지만, 운두령의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되는 고개 정상까지 4.5km 지점에서 자전거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려 했지만, 함께 쉬자며 길 한쪽 넉넉한 공간에 다 같이 자리를 잡는다. 의리 있는 녀석들 ^^

최근 라이딩 횟수가 줄어 근손실이 꽤 있었는지, 도무지 양쪽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지막 운두령 업힐은 뒤처지는 나를 챙겨주느라 친구들 모두가 업힐 중간중간 사진도 찍으며 뜻하지 않은 여유로운 라이딩이 되어버렸다. 나는 간격을 보충하느라 쉴 새 없이 페달을 저어 올랐지만, 붉게 달구어진 쇳물처럼 기울이면  쏟아질 듯 서편의 산맥을 따라 흐르는 노을이 함께한 그런 라이딩이다.

운두령의 석양과 운무. 어깨를 풀어준 처린과 함께

 

코너를 돌 때마다 펼쳐지는 빛의 향연. 친구들도 앞뒤에서 거친 호흡에 섞인 탄성들을 터뜨린다. "운두령" 그 이름 그대로 고개 아래 산들 사이로 하얀 밤 운무가 깔리고 그 너머엔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오히려 어느 때보다 짙은 푸른색의 밤하늘 빛과 대조되며 두 다리의 고통조차 잊게 만든다.

걸로 오늘 힘겨운 하루의 보상은 충분했다. 사진도 좋지만 마음에 꼭 담아두고 싶은 장관이다.




푸른 하늘에 걸쳐진 회색 도로의 끝을 끝내 보고야 말 때면 또 한 번 살 속 깊숙이 찌든 지방까지 땀으로 짜내 듯한 짜릿함에, '어쨌든 해내는구나'라는 통쾌하기까지 한 쾌감에 중독된다.  힘겨움에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퍼붇곤 하지만 도시 속 삶으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진 이 한 순간을 만끽하고자 또 저지르고야 만다. ㅠㅠ

게다가, 친구들과 함께한 운두령의 붉은 노을과  진부역의 늦은 KTX를 기다리며 나눈 평창의 한우 구이의 달콤함은 힘겨움만 골라서 까맣게 잊게 하고 대단했던 기억만 남기는 마술을 부린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 아래 첫 고갯길을 지나 부석사로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