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하늘 아래 첫 고갯길을 지나 부석사로 간다.   

만항재-도래기재-주실령-마구령-베틀재


한겨울 칼바람에도 이마와 등은 뚝뚝 흘러 떨어지는 땀에 흥건하고, 낮게 걸린 겨울해는 금방이라도 산머리 너머로 사라져버릴것만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부석사 앞의 숙소에 도착하려 주실령의 까다로운 경사를 서둘러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사를 이겨보고자 온몸의 체중을 실어 자전거 페달을 눌러보지만, 그럴 때마다 고갯길 곳곳에 남겨진 제설용 모래로 바퀴가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 한다.   


숨죽인 한겨울의 소백산 자락, 나는 또 이렇게 낯선 곳에 와있다.




하늘 아래 첫 고갯길, 만항재


오전 10시 15분.   영상4도.   태백시외버스터미날.   걱정했던 미세먼지는 없고,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은 태백의 겨울을 무색하게 한다.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에서 만난 도시들과는 달리,  주변 지형 때문인지 태백은 도로 높낮이의 기복이 심하다.   라이딩을 시작하자마자 다운힐과 업힐에 힘겨움을 느낀다.


만항재는 "하늘 아래 첫 고갯길"로 불리워 질 만큼 높고 (한국의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곳이다) 고개 정상 주변의 탁 트인 시야를 통해 하늘과 맞닿아 흘러가는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의 멋진 풍광을 한몸에 느낄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산의 섬세한 근육과 그 사이사이를 두바퀴로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너무도 특별한 일이다.


오투전망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팔각정의 전통적 모습이다.   만항재를 오르다보면 만나게되는데, 태백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투전망대에서 저 멀리 태백시
만항재를 만나기 전 태백선수촌 근방의 곧게 뻗은 능선도로

10킬로미터에 가까운 만항재로의 긴 업힐은 태백선수촌이 바라보이는 능선도로까지가 어렵다.   선수촌을 지나치면 그 후로는 만항재까지 능선을 잇는 편안한 도로를 따라 숨을 고르며 페달을 저어갈 수 있다.   좌우로 탁트인 시야와 길게 뻗은 넉넉한 도로가 얼마전 산호세에서 능선을 따라 라이딩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함백산의 높이가 훨씬 높지만 말이다.


만항재 정상에 위치한 쉼터.   맞은편엔 자그마한 인공 식물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만항재를 거쳐 남북으로 함백산을 끼고 흐르는 414번 도로.   특히 화방재(여평재) 방향의 다운힐은 태백산의 어깨를 바라보며 시원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비록 한겨울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조용한 내리막 길이지만, 함백산 414번 국도는  며칠전 내린 눈과 함께  꾀 이국적인 풍광을 안기며 화방재로 이어져있다.


빠른 속도로 지도 속의 이미지를 꼭 닮은 곳에 도착하니, 춥고 허기지다.   문을 연지 4개월째라는 그곳 휴게소 식당에서  따뜻한 갈비탕으로 몸은 데운 후, 도래기재로 향한다.   만항재의 높은 고도가 말해주듯, 두번째 고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리막 길이 약 40여킬로미터 이어진다.   여름이었다면, 정말이지 시원하기 그지 없는 경험이었겠지만, 한겨울의 긴 다운힐 라이딩은 손과 얼굴을 얼려버린다.   


겨울 백두대간 라이딩은 업힐과 다운힐의 경험이 극과극이다.   두터운 방한용 라이딩 져지는 업힐내내 땀을 뿜어내게 만들지만, 정상에 오르자 마자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하는데 내리막에서의 겨울 칼바람은 조금전의 땀으로 젖은 져지와 어울려 한껏 몸을 얼려놓는다.   얼마나 추운지, 다음 고개가 어서 나타나 근육이 다시 데워지길 바랠 정도인데, 그나마 목과 머리를 감싸는 장비를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하며 체온을 최대한 유지해보지만 한 겨울 백두대간에서의 솔로라이딩이 주는 혹독한 경험은 머리속을 말끔히 비워낸다.   


중동면을 향하는 길에 햇볕을 쬐며 차가워진 몸을 잠시 쉬어간다.


첫째내리고개, 둘째내리고개 그리고 도래기재


한참 뒤에나 만날것 같았던 도래기재로 향하는 평지 라이딩 중에 예상치 못한 힘겨운 고갯길을 만난다.   지도상의  도래기재는 아직 멀지만, 꾀 날카로운 업힐이 시작되는데 기대하지 못한 탓인지 체감하는 힘겨움이 만만치 않다.   말티재(속리산)나 지안재(지리산)를 떠올리게 하는 연이어진 헤어핀의 오르막과 씨름하다보니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흐른다.   이제막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을 뿐이지만 골짜기의 해는 빨리 지게 마련이듯, 스산한 늦은 오후의 깊은 겨울 산공기에 마음은 더욱 급해지기만 한다.   


나중에야 그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사이좋은 형제자매나 되듯이 "첫째내리고개", "둘째내리고개"로 불리웠다.   첫째와 둘째내리고개에서 뜻밖의 고생을 한 탓인지, 정작 도래기재는 그리 힘 든 줄을 모른채 도착한다.   코너를 돌아 오르자 생태터널이 눈에 먼저 들어와 고개 정상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옆으로 조그만 고갯길 안내판이 서 있다.   경상북도 봉화와 강원도 영월을 잇는 고갯길로 "역"이 있어 "도역마을"로 불리우다 지금의 "도래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도래기재


부석사로 향하는 오늘의 마지막 고개, 주실령


사실, 오늘의 라이딩은 부석사를 좌우로 잇는 백두대간 라이딩 코스의 유혹에 빠져 예정에 없던 한겨울 백두대간 솔로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오래전 한국 건축디자인(굿디자인) 사례로 이곳 부석사를 답습하러 왔다가 그만 그 묘한 매력에 빠져 그 후론 여러차례 발길을 낸 영주 부석사.   지난 여름엔 가족들과도 이곳을 들렀다.   


지난 여름의 부석사

부석사를 중간에 두고 첫째날은 만항재에서 주실령까지, 내일 아침나절엔 마구령에서 베틀재를 거쳐 단양까지 갈 생각이다.   오늘 여정의 마지막 주실령만 넘으면 그 부석사로 향한다 생각하니 피로감 마저 씻은 듯하다.   클릿슈즈를 신고 자전거까지 끌고서 사찰에 올라갈 수는 없겠지만, 자전거로 이곳까지 여행하며 하루밤 부석사 근처에서 묵어갈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주실령은 "백두대간 수목원" 근처에서 그 오르막이 시작된다.   전체구간 평균 6.7%(약 5킬로미터 거리)의 경사도.   처음에는 완만한 경사도로 큰 어려움은 없이 시작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심통을 부리듯 꾀 가파르다.  지난 지리산 오도재와 정령치의 매서운 맛을 본 터라 웬만해선 잘 견뎌내겠거니하며 오르지만, 제설용으로 뿌려진 모래 때문에 경사와 페달힘을 버티지 못해 바퀴가 미끄러지며  몇번을 저절로 "우~씨"를 뱉어낼 정도로 기겁을 하면서 정상에 도착한다.  


주실령 정상. 이제 부석사 근처 민박집까지 평지를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주실령 맞은편(서편)의 내리막도 경사가 꾀 가파르다.   함백산과 태백산을 끼고 도는 고갯길 중에서는 그 경사가 단연 으뜸인 듯.   문수로로 이어지는 주실령 건너의 산기슭 마을은 막 저무는 석양빛을 한껏 안아 발갛다.   


석양빛에 물든 문수로변 마을
물야저수지 위 석양.   저 너머로 부석사다.


마구령!  대단하다.


둘째날 아침이다.   어제 저녁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을 즈음,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각에 이곳 부석사 앞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식당을 겸하고 있어 저녁식사도 함께 해결할 수 있었는데, 운이 좋았던지 서울에서 오랫동안 도가니탕을 전문으로 요리 해오시던 주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따뜻하고 맛있는 도가니탕으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조용한 식당 가운데 자리잡은 목난로의 열기와 식도로 넘기는 깊고 따뜻한 맛의 탕재료가 언 몸을 금방 데워주었다.   더 바랄게 없는 그런 저녁이었다.    


부석의 아침
어제 저녁 만났던 목난로

어제 저녁 그 맛있는 도가니탕을 끓여주신 주인 아주머니는 아침 부터 무슨 일인지 4~5년 아래벌로 보이는 사촌 여동생과 주방이 떠나가라 말다툼 중이시다.   그러고는 한분 한분 식당 홀로 나설 때마다 내게 다가와서는 시끄럽게 했다며 사과의 말씀을 건네신다.   물론 언니는 동생에게, 동생은 언니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득 실은채 말이다.   그 덕에 무슨일로 그렇게 다투셨는지 그 속사정을 알게 된다.   시골 이른 아침 홀로 앉은 식당 손님이다보니, 이 상황에 대한 관찰자로서가 아닌 참여자로서 역할매김을 하는 순간이다.   부디 두분이 빨리 화해하시길.


하지만, 청국장만큼은 맛있게 끓여 주셔서인지, 출발하는 아침이 든든하다.   마구령은 부석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지도상으론 고갯길 입구까지 6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다.   몸도 풀지 못하고 올라야하는 고갯길이지만, 그 유명세는 이미 익히 들어왔다.   내가 아는 모든 경력이 출중한 로드바이크 라이더들은 이곳에서, 소위 말하는 "끌바"(자전거를 끌고 간다고해서 끌바다)를 했다고 한다.   


길이 좁은 탓에 대부분의 구간에서 마주오는 두대의 차량이 동시에 진행하기 어렵다.   게다가 임도치고는 오고가는 차량이 많다.
높은 경사각 뿐만아니라 거친 콘크리트 노면의 마구령 남쪽편 길.  

2차선 도로가 좁은 1차선으로 바뀌며, 버스를 제한하는 푯말이 위치한 곳 부터가 마구령 고갯길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3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이지만, 워낙 울퉁불퉁한 노면과 좁은 폭 때문에 차량이라도 마주치게되면 도저히 페달링을 이어갈 수가 없고 자칫 가파른 경사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이 우선이다.


끝내 서너번을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하고서야 정상에 도착한다.   낙동강 자전거길에서 만난, 로드바이크용 도로가 아니라고 알려진, 무심사 임도나 영아지마을 임도도 거뜬히 넘었지만, 이곳 마구령 만큼은 정말이지 로드가 온전히 오를 곳이 못되는 곳이라 여겨진다.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만, 사진 속에 남겨질 미소 만큼은 평지처럼~

마지막 베틀재는, 아침 댓바람부터 마구령에 혼쭐이 나서인지, 넓고 여유롭게 뻗은 매끈한 도로가 곱게 느껴질 지경이다.  어렵지 않게 한결같은 가파르기로 정상까지 도착해보니 베틀 모양에서 따왔다고 하는 그 이름 답게, 넉넉한 고개 정상의 모습이 삼도(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를 잇는 고갯길의 품세를 지녔다.


소금처럼, 혹은 싸락눈처럼 베틀재 내리막길에 뿌려져 있는 제설용 모래.   지난 강설의 위세가 어땠는지 가늠이 되는 부분이다.
밭에서는 겨울 채소를 거두느라 주말 오전이 분주하다.
단양 근교의 남한강

올해는 이것으로 백두대간 라이딩을 마무리 하려한다.   아무리 좋은들, 한겨울의 추위와 서둘러 서쪽편으로 건너가 버리는 짧은 해는 먼 자전거 여행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름 즉흥적으로 떠나온 올해 마지막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맑고 청명한 하늘과 날씨 덕에 또 한번 멋진 기억으로 마무리 짓는다.


끝.



단양에선 이것 했음. ^^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언덕으로 떠난 자전거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