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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언덕으로 떠난 자전거여행

대관령-안반데기(피덕령)-정선군


토요일 아침 햇살과 함께 즐기는 '늦잠'보다 달콤한 것도 많지 않을게다.   지친 직딩의 소박한 특권이기도 하지만, 화장실을 참아가며 무언가에 몰입해 온 한 주를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부터 그 토요일 아침은 평일과 다름없거나  때론 더 분주해져 버렸다.   물론, 전혀 다른 방향에서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의 그 토요일 아침은 새벽 5시에 맞이한다.   그간 생각만 해 오던 백두대간 라이딩의 첫 번째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코스로, 평창 진부면에서 출발하여 대관령에 오른 후, 잠시 길을 되돌아 고랭지 채소 재배로 이름난 안반데기(안반덕이)를 넘어, 닭목령을 지나 정선의 계곡길을 달려 다시 진부면으로 돌아오는 120여 킬로미터의 라이딩이다. 


설레임으로 가득한 늦은 새벽녘.   쌀쌀한 듯 이슬기운 가득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짧지 않은 자전거여행의 여정이 늦어질새라 함께하는 벗들과 자동차를 몰아 진부면에 도착한다.   넉넉하게 마당을 내어주는 진부면사무소 어깨너머엔 아침 안개를 막 벗는 산머리가 보인다.


지방의 군면사무소는 좋은 출/도착기점이 되어준다.


강원도의 산채나물 그득한 비빔밥 한 대접씩을 인근 식당에서 나누고, 우리는 오늘의 첫 백두대간 고갯길인 대관령으로 향한다.   사실 풍성했던 한가위 음식 잔치에 놀랐던지, 이번 라이딩 여행 전 꼬박 3일동안을 배탈설사에 흰죽으로만 연명했던 터여서 체력은 많이 떨어진 상태이지만, 그 덕분에 체중은 줄어 몸은 가벼웠다.   게다가, 이미 해발고도 높은 진부면에서 대관령까지의 라이딩은 적당한 열기와 땀으로 몸을 달구어 놓고, 구름위 마을이라는 명성 그대로 청명한 가을하늘을 이렇게 가까이 안으며 페달을 저어간다.


쏟아질듯 빛나는 파란하늘, 살갗을 간지럽히듯 감싸는 가을 햇볕, 그리고 저 멀리 하늘과 끝내 맞닿아버린 구름위 마을의 지붕에 꽂힌 바람개비들(대관령 일대 풍력발전기들)이 열 지어 바람을 불고 있다.



대관령을 오르기 위해 잠시 지나쳤던 횡계를 다시들러 이번엔 남으로 향하는 안반데기로의 길은, 익숙한 용평리조트 근교의 잘 다듬어진 숲과 나무, 한겨울 녹은 눈을 일년내내 운반이라도 하듯 흘러내리는 하천과 그 사이를 굽이 흐르는 매끈하고 윤기 가득한 아스팔트 길로 뻗어있다.



너무도 시원한 라이딩이었던지, 주변 경관에 푹 빠져버린 탓이었던지 그만 안반데기로 오르는 언덕길을 지나쳐버린다.   다시돌아와 보니 지나쳐버릴 만큼이나 주도로 부터 동떨어진 경사를 가진 언덕 샛길이다.   물론, 안반데기 업힐은 익히 유명한 탓에 쉬이 오를 수 있을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늘 그렇듯 업힐 라이딩은 계획했음에도 막상 맞닥뜨리면  긴장감에 가슴이 싸늘해지게 마련이다.   


역시나 안반데기 초입의 그 샛길도 그러했다.   되돌아 온 그길로 쉬지도 않고 핸들바를 꺽어 그 안반데기 언덕길로 올라선다.   두바퀴가 서 버릴새라 경사가 좀 덜 할라치면 두 허벅지로 페달을 돌리고, 더 심한 경사를 만나면 온 몸의 체중을 실으며 한 바퀴 씩 내 딛는다.   


20분 즈음 흘렀을려나,   언덕능선에 주차중인 차량인줄로만 알았는데, 도착 후 그 옆을 지나칠 즈음, '엄지척'을 해보이는 운전자를 보고서야, 힘겹게 오르는 로드바이크라이더가 길을 다 오를때까지 기다려주었던 넉넉한 가슴의 운전자임을 그제서야 알아챈다.   1천5백만 자전거 시대가 되었다 한들, 아직까지도 차도에서 만난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험악한 몇몇 운전습관들을 대할 때마다 느꼈던 실망감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 미소다.


안반데기 마을의 옛모습들을 전시하고 있는 고개 정상의 카페


안반데기에 올라서서 그 이름이 참 특이하단 생각을 했다.   어떤이는 떡을 치는 떡메의 받침 모양처럼 생긴 고개의 형세에서 유래 했다고도 하는데, 글쎄다.   사실, 그 이름 보다는 "짝궁뎅이 소 안반덕이"라는 의인화된 소 이야기가 더 눈길을 끈다.   안반데기를 고향으로 둔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안반데기 비탈이 잉태한 소는 성장하면서 비탈이 아닌 여느 암소의 배로 태어난 자신을 깨닫고 낙심한 나머지 고향 비탈을 떠나 '큰 세상의 더 큰 비탈'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   물론,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는 않는다.   오래전 이 조그맣고 외진 곳에서의 삶도 지금 내가 다른 곳에서 느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고, 쉬이 그 '비탈'의 언어를 깨달을 수 있어 신통할 따름이다.



멍에 전망대까지 올라보는데, 자전거로 오르기엔 짧은 거리지만 경사도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곳은 안반데기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 방문의 하이라이트다.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이곳 하늘언덕의 밭들은 배추수확이 끝나 배추가 남긴 그 밑동들이 금조각처럼 가을 햇볕에 빛나고 있고, 다음 농사를 위해 벌써 갈아엎어진 곳에선 흙 속살의 내음이 공기에 실려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 하다.


멍에 전망대에서  내려오며


이토록 길잡이가 허술할까.   오늘 라이딩 여행의 길잡이(번짱) 노릇은 내 몫이었는데, 그만 안반데기(피덕령)의 다음 행선지인 닭목령을 지나쳐버렸다.   오늘의 백두대간 고갯길 라이딩의 마지막 목적지 이긴하지만, 이미 안반데기의 높은 고도 덕분에 어렵지 않게 들를 수 있는 고개이기도하다.   안반데기로 부터 4.5킬로미터 다운힐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려오다 이곳으로 접어드는 길을 그대로 지나쳐 노추산변의 송천 계곡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함께한 벗들이 닭목령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지 않았길.


강릉시에 속한 송천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평창군의 오대천과 함께 조양강을 이루고 조양강은 영월 동강으로 흐른다.   강원도의 송천계곡과 오대천계곡은 그 한국스러움으로 가득한 산천의 경치도 인상적이지만, 하늘과 맞닿은 바위산 봉우리로 물 한줄기씩을 내려보내는 듯한 폭포의 모습들에서 묘한 초현실적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오대천 백석폭포
송천 오장폭포


오대천을 끼고 달리는 오대천로는 잘 닦여진 노면과 갓길로 비교적 안전하고 경쾌한 로드바이크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로드바이크 코스이다.   업힐과 다운힐도 강을 따라 흐르는 자연스런 곡선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120여 킬로미터의 마무리 여정에서 체력도 떨어져가고 밤이 깊어가니 얼른 진부면사무소에 도착하고픈 마음이 크지만, 첫 백두대간 라이딩 여행은 이렇게 하늘언덕을 넘어 강원도의 깊숙한 계곡을 따라 별무리와 함께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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