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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전거 라이딩

나흘간의 환상 일지



자전거를 타고 땅 끝까지 가보는 '상상'을 자주 하곤 는데, 제주 라이딩 일정을 앞둔 두 달 여 동안 아이처럼 들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막힌 해방이 또 있을까 싶었죠.


모처럼의 기회이기에 며칠 동안의

여유로움 정도는 욕심내어봅니다.


두 번째 "자덕의 사진첩"은

자장구 벗들과의 오랜 약속이 현실이 된

'제주 라이딩'에 대한 이야기이며,

나흘간의 '해방 일지'이기도 합니다.

  



제주 환상 자전거길(해안 일주 도로), 516도로(북 - 남), 마지막으로 1100 도로(남 - 북)를 로드바이크로 그야말로 원 없이 달리고 올랐습니다. 총 330여 킬로미터의 거리와 3300여 미터의 획득 고도를 라이딩하는 3박 4일간의 코스입니다.










설레임





제주 라이딩에는

정열적인 에너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 구석구석에서 뿜어내는

'해방'의 열기가 강열하기 그지없지만,

여행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긴 '설레임' 또한 있습니다.

그 설레임 속 많은 상상의 이미지들이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그렇게 자덕의 마음은 두 달 전 이미
제주에 가 있습니다.












사진 김승훈 / 표선 판타스틱 버거








제주 공항의 슬라이딩 도어를 나서며

바라보는 눈부신 제주의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그림자가 일렁이는

현무암 돌담의 모습만큼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모두가 분주해집니다.

자전거 조립과 장비점검에서부터

피부를 보호할 선블록까지

하나하나 따져

해방 라이딩을 시작할 준비로 말입니다.








그렇게 그 설레임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바다사랑 그리고 추억" 흑돼지 장작구이. 라이딩에 고열량 식사가 빠질 순 없죠.








한껏 펼쳐진 바다를 향해 페달링을 시작합니다.

몇 번이고 떠올렸던 그 이미지 그대로입니다.

이대로라면 저 바다 위까지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해거름전망대










처음으로 자전거에 푹 빠져버리게 했던 것은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눈앞으로 펼쳐진 한 장의 이미지 때문이었죠.


그 이미지는 줌아웃(Zoom Out) 되듯이

점점 커져갑니다.

백두대간 정상에서 하늘과 맞닿은 고갯길로,

이젠 이곳 제주 해안선과 맞닿아 출렁이는

옥색 바다로.











사진 박주훈(rider_june) / 송악산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중문









빛깔







검은 현무암 바위들조차도 그런 옥색 빛의 바다를 추앙하듯 감싸고 있습니다.










제주엔 참 자주 왔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운이 훨씬 좋았나 봅니다.

제주가 이렇게 다채로운 색으로 입혀진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제주가 고향인 친구가 일러주길 제주에서도

이렇게 옥색을 띠는 바다는 제주에서도 흔치 않다고 합니다.

제 자전거가 그 빛을 닮은 것도

행운처럼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협재해변

 








자구내 포구로 향하는 길은 노을 해안로입니다.

오늘은 노을 대신 노랗게 물든

보리밭 옆을 달립니다.  

세계적 자전거 대회인 "뚜르 드 프랑스"는

유럽의 상징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코스로도 유명한데,

5월 제주의 노을 해안로는 그런 부러움을

부끄럽게 할 정도입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차귀도 근처 노을 해안로 옆 보리밭.









원래 저녁노을은 놀랍도록 화려합니다.

어둠 속에서 홀로 피어나는 새벽노을이 붉은 태양 빛의 그것이라면,

저녁노을은 미처 자리를 뜨지 못한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부여잡은 석양빛이 어우러지며

핑크빛, 주홍빛, 보랏빛을 차례로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그 빛에 취한 듯,
제주 해방 라이딩 첫날에 취한 듯,
우리는 모슬포항의 노을빛에
은근슬쩍 끼어들어봅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모슬포항의 노을









모슬포항의 아침으로 둘째 날을 맞이합니다.

저 멀리 아침 안개 위로

제주 한라산의 토르소가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오른쪽의 산방산을 끼고돌아

서귀포를 지나 성산으로 향할 계획입니다.











사진 김승훈 / 모슬포항의 아침










땅 끝









모슬포항에서 서귀포를 향하는

제주의 가장 남단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 같은 곳을 만납니다.

법환포구입니다.


그곳에 있는 해녀 마켓은

바다 위 원형 무대처럼 멋진 모습입니다.

법환포구를 물질 터전으로 하는 해녀들은

이곳에서 그날의 수확물들을 상인들에게

넘기는 모양입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법환포구 해녀 마켓









5월 23일 5시 19분에 성산의 해가 뜬다고 합니다.

이틀 동안의 라이딩으로 아침잠이 더더욱 달콤해졌지만,

그 달콤함을 뿌리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다행히 훈훈한 아침 바다 공기가

체온에 제 온도를 맞춘 듯 자연스럽습니다.


일출이던 일몰이던 보통은 셔터 열 번 정도 누르면 빛의 향연은 끝나버립니다.

그중에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대박이죠.






엷은 구름이 성산의
하늘 위로 깔린 덕분에,
강렬하진 않지만 은근한 주홍빛의 태양이
이마 앞까지 펼쳐져 물듭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in) / 광치기 해변
사진(좌) 김승훈, 사진(우) 배준원(jj-insta) / 부지런함의 보상이랄까요. 일출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일출봉에서의 노을도 보는 행운을 잡습니다.










성산에서 제주공항까지의 코스는 제주의 무르익은 보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행의 후반부이기도 하고, 체력도 떨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죠.








속도를 줄입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시간이
늘어날 것만 같았고,
더 많이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월정리 카페 바미 Balmy












아로마









3일 차, 오늘 먼저 떠나는 친구들의

넉넉한 비행기 일정을 핑계로

한라산 숲길을 함께 라이딩해보기로 합니다.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함덕해변에서 516도로까지는

계속되는 업힐 라이딩 코스인 데다,

체력도 거의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오기엔 수년이 더 걸리거나 그렇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도전해보기로 합니다.








차도 많고 길도 좁습니다.

대부분 관광객의 렌터카일 텐데, 제주를 라이딩하는 무리들에 친절하지만은 않군요.

뒤처지는 친구 없이 끝끝내 사려니 숲길에 도착합니다.










사진 배준원(jj_insta) / 사려니 숲길











516 도로엔 차들이 많습니다.

성판악으로 향하는 등산객뿐만 아니라,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최단거리 도로인 데다 아름다운 숲길을 보는 매력이 넘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해안도로와는 확연히 다른 장면으로의 전환과 오감으로 전해오는 또 하나의 제주를 만나게 됩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사려니 숲길








마지막 4일 차 아침,

눈을 니다. 천근만근입니다.


'할 수 있겠지?'


'나도 웬만큼 미쳤구나.'


이번 해방 라이딩의 클라이막스는 1100 도로 라이딩입니다.

푸른 숲 사이로 굽이치며 뻗은 날씬한 아스팔트에

라이딩 본능은 되살아나고야 맙니다.








거친 숨소리에 힘겨운 페달링 소리조차 가리어지지만, 이름 모를 새소리에 실려오는 한라산의 흙과 나뭇잎, 그 가지 끝에 영글은 꽃잎의 향기가
온 몸의 감각을 깨웁니다.







1100도로는 뜨문뜨문 지나는

차들의 소리 외엔 고요합니다.

그래서인지 한라산의 숲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 수 있나 봅니다.

경사도 높은 1100 고지까지의 기나긴 길 동안

'해방의 행복감'이 그렇게 나를 채워놓습니다.












사진 김승훈 / 1100 고지 앞 영실 입구 삼거리.









아쉬움








나흘간의 해방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사진 박주훈(rider_june) / 하모해변










역시나 행복한 순간은 더더욱 붙들어 둘 수 없습니다.











사진 김승훈 / 하원북로









여행 끝에 찾아오는 아쉬움은 여행의 기쁨과 행복의 크기와 비례하나 봅니다.










사진 김승훈 / 성산 경미네 집










그래도 또다시 여행을 꿈꾸고 떠나는 이유는

그 아쉬움은 곧 잊히고,

그보다 훨씬 큰 행복은 기억되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 바이크미슐랭(bikemichellin) / 우서라 라이딩 클럽 @협재









- 또 다른 해방 라이딩을 꿈 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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