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슬픔을 지우는 일에 관하여
이상한 일이 있다. 어떤 일로 한번 울면 슬픔이 안쪽에 그대로 고여 있는데, 그 일 때문에 다시 한번 울게 되면 그 슬픔이 온전히 씻겨 내려가곤 한다. 슬픔으로 슬픔을 희석하는 일이다. 처음 한번 울어서 슬퍼하고, 다시 울어서 그 슬픔을 지우는 일. 이쯤이면 되었겠지 하는 마음의 안도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울음엔 그런 힘이 있다. 울음이 다시 울음을 만나 과거의 눈물을 평범한 물이 되게 하는 연금술. 슬픈 일이 있으면 나는 언제나 두 번 운다.
루싸 렌즈가 눈을 닮았고, 두 번 우는 나의 처방전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동안의 모든 광학적 이론을 깨뜨리고 나온 저 눈동자. 복잡하지도 않다. 그저 첫 번째 유리를 가장 둥글고 깊게 깎아서 오히려 왜곡을 최대화하고, 마지막 유리를 반대로 움푹 파내서 그 왜곡을 상쇄시키는 것. 마이너스 1에 플러스 1을 더하면 0이 되는 구조. 낮은 도와 높은 도를 함께 눌러 화음을 만들어 내는 일.
그것을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의 어느 날, 러시아의 과학자 '루시노프'에게 그 비법이 번개처럼 내려친 이후, 세상은 '루싸'라는 놀라운 광각렌즈를 선물 받게 된다. 루싸는 최초로 가장 넓고 밝게 세상을 촬영할 수 있던 렌즈였다. 물론 단순히 넓게 찍힌다는 것만이 루싸의 힘은 아니다. 손톱보다 작은 렌즈. 저울에 달면 고작 95그람. 가장 밝고 넓게 촬영되면서, 작고 가벼운 것. 아무것도 덧대거나 과장하지 않는 힘. 씨앗처럼 작고 단순한 그것. 그것이 루싸다.
루싸 이후, 루싸의 혁명적 구조를 그대로 닮은 렌즈들이 세상에 나왔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모두 아류일 뿐이다. 더 크게 만들면서 더 좋게는 누가 못하나. 더 무겁게 만들면서 더 화질이 좋게는 누가 못 만드나. 비오곤과 수퍼앙글론. 이름도 좋은 후발 렌즈들은 그저 무거운 루싸. 뚱뚱한 루싸일 뿐이다. 루싸라는 씨앗에서 나온 물렁한 열매들이다.
루싸의 가장 밝은 조리개는 5.6. 최단 거리는 50cm. 조리개를 11에 놓으면 50cm에서 무한대까지 모두 초점이 맞게 된다. 50cm는 어느 정도일까. 보통 편안한 자세로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니까 직접 만질 수 있는 것들로부터, 아득히 보이는 먼 풍경까지 모두 선명하게 담을 수 있다는 의미. 루싸를 물리고, 조리개를 11에 두고 길을 나서면 이 세상은 모두 내게 선명해진다. 아, 만질 수 있는 거리부터 저 멀리까지. 그것이 루싸가 내게 주는 세상과의 거리다. 촉감이면서 먼 풍경이다.
2002년 12월의 서울은 뜨거웠다. 훗날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사람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도 뜨거웠다. 서른을 향해 가던 나이. 온 힘을 다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때였다.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고, 차라리 비웃으며 당당하던 시절이었다. 자주 광화문에 나갔고 자주 길을 걸었다. 어떤 열기가 나를 자꾸만 불러냈다. 끓어오르는 물처럼, 나의 세상도 부글거렸다. 그때 나는 아직 우는 방법을 몰랐고, 두 번 우는 해결책 또한 알지 못하는 나이였다.
디카도 아직 세상에 없었다. 있었지만, 주류가 아니었다. 핸드폰으론 인터넷 연결이 안 되었고, 사진을 찍는다면 모두가 필름을 쓰던 시절이었다. 미세먼지라는 말이 아직 없었고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쓰지 않던 때였다. 월드컵으로 세상이 온통 붉었고, 함성이었으며, 놀라움이 있었다.
그해 태풍 루사가 나라를 덮쳤다. 말레이시아어로 사슴이라는 뜻의 루사는, 8월 23일 북태평양에서 생겨나 우리나라 충주를 지나 속초 인근에서 소멸되며 하루 천 밀리미터의 폭우를 쏟아냈다. 그는 18시간 동안 내륙에 머물며 사망 213명, 실종 33명으로 큰 피해를 남겼다. 너무 큰 피해를 줬던 터라, 결국 나중에 그 이름도 바뀌게 된다. 조금이라도 슬픔을 잊어보려는 눈물겨운 선택. 아니면 어떤 저주였던가. 억지로라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을까. 루사는 '누리'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어 불리게 되었다. 청색 벼슬을 가진 잉꼬새의 이름 누리. 그해 겨울 루싸, 아니 누리로 담은 하늘이 시리도록 푸른 것은, 서로 연관 없이 이어진 우연의 슬픈 연결로 내게 남아 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나는 두 번 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패배가 쉽고, 쉬운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무리 좋다 해도, 신제품만 못한 것, 그렇게 생각하며 루싸 정도는 다 잊고 한 10년 살았다. 누가 불편하게 필름을 쓰겠는가. 손톱을 세워 넣어 조리개를 조절해줘야 하는 루싸는 말할 것도 없는 것. 그 사이 오천만 화소 디지털이 세상의 평균이 되었고, 타조 알보다 커진 광각렌즈는 화각의 넓이가 20밀리를 한참 지나 14밀리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화질 저하가 없는 기술의 최절정 시절이 되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 옛날이 그리워졌는가. 다시 그 불편한 루싸가 문득 생각나, 요 며칠 카메라 매장 앞을 서성이곤 한다. 지나가버려서 그리운 것들이 어디 한둘이랴. 다만 조리개를 조여 하늘을 찍으면 거짓말처럼 푸르게 표현되고, 중심에서 밖으로 나아가며 터널처럼 어두워지고, 확대해보면 긁은 듯 흐릿해지는 이 렌즈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오래 전의 필름을 꺼내 들여다보면, 적어놓지 않았어도 그것이 루싸 임을 알게 된다. 루싸는 주변이 어둡고, 루싸는 직선이 휘어지며, 루싸는 누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지 꼭 알려준다. 너무 넓어서 언제나 내 그림자가 내 사진에 담기고,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그를 사진에 남기는 것. 아무리 밝은 낮의 사진이어도 어딘가에 분명 그늘이 있음을 알게 하고, 시간이 지나서 들여다보면 그 그늘이 오히려 주요 피사체였다고 속삭여 준다. 루싸는 가끔 연약하게 휘어지며, 루싸는 너무 넓어서 그늘의 영토 또한 넓은데, 이제는 그것이 일상처럼 받아들여지고, 휘어지고 어두운 것, 그런 것들이 어쩌면 나를 닮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어딘가 내가 적어놓지 않은 추억까지 기록해뒀다가, 뒤늦게 배달되는 어떤 채무 반환서 같은 것이다.
두 번 울어서 슬픔을 치유하는 일. 촬영할 때 한번 만나고, 며칠 후 필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옛날의 방식. 없애려고 하지 않고, 참아내지 않고, 오히려 둥근 왜곡을 두 번 겹쳐내는 것으로 놀라움을 만들어냈던 전설의 렌즈. 편지처럼, 어느 먼 서랍의 추억을 꺼내 라이트박스 위에서 들여다보면, 거기에 그 흔적들이 온전히 남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나를 만난 사람들. 두 번 우는 방법을 아직 몰라서 무작정 걷기만 하던 시간들. 빛이 닿으면, 스러지는 것들조차 모두 아름다워 보였던 나의 시절. 눈물보다 감탄이 평균이었던 때. 그래서 그립고, 또 그립지 않은 날들.
생각해본다. 돌아가서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서, 세월은 이렇게 앞으로만 흐르는 것인가. 그리움이 두 번 겹쳐서 오히려 일상처럼 남은 그 시절들. 내가 잠시 루싸와 함께한 시간이다.
사진 오동익
라이카 IIID, Russar, e100vs. 경복궁, 200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