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 공너싫
인생은 무겁게 살아야 할까, 가볍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무겁게’와 ‘가볍게’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야 한다. 이 두 단어는 모호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을 조성한다.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빌려 두 단어를 정의하겠다. 니체의 말에 따르면 인생은 원의 형상을 띠면서 영원히 반복된다. 우리는 한 번 죽으면 끝인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나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그렇게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의 선택과 행동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무거움은 의무를 뜻한다. 우리의 행동은 영원히 반복된다. 정의로운 행동 하나는 영원히 누군가를 구하게 된다. 우리의 잘못 하나는 영원에 걸쳐 무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행동 하나하나에는 영원한 책임의 무게가 지어진다. 악순환을 피하고 세상에 영원히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선,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 의무와 책임을 다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즉, 무거움은 의미 있지만 책임이 많이 따르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가벼움은 자유를 뜻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끼칠 영향을 모두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행동의 영향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가벼워진다. 가벼움은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될 잘못된 행동은 없겠지만 누군가를 구하게 될 행동도 없을 것이다. 행동에 부여되는 책임도 없겠지만 그만큼 부여되는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 어떤 행동에도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 가벼움은 자유롭고 편하지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은 유한하며 니체의 말처럼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다. 두 단어를 다시 유한한 현실에 맞추어 생각한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p.483). 인간의 시간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원회귀의 시각에서 보면 한 번만 사는 유한한 인생은 너무 짧다. 따라서 짧은 삶의 양 극단인 탄생과 죽음은 가까워져 하나가 된다. 양 극단에 있는 두 단어가 만나 하나가 되면 그들을 나누는 기준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p.392). 탄생과 죽음이 하나가 된 삶은 북극과 남극이 하나가 된 지구처럼 그 의미를 잃는다. 즉, 삶이 유한하다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다.
삶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때까지 일어났던 일들도 다 의미 없는 것이 된다.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p.358). 사람들은 금방 끝나는 의미 없는 것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삶은 의미가 없고 가벼운 것이고, 따라서 자유로워진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된다.”(p.10-11).
영원히 반복되지 않고 단 한 번만 사는 세상에선 모든 일을 한 번씩만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선택을 할 수 없다. 여러 번 겪어본 뒤 다시 돌아와 옳은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 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p.357)
삶에 대한 진지하고 무거운 고민은 책임과 고통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미래로 도망친다. 그들은 시간의 축 위에 선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에는 현재의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p.271). 삶이 의미 없는 것이라면, 고통을 동반하면서까지 무게를 실을 필요가 있을까. 무게를 얼마큼 더해도 삶은 여전히 의미 없는 것이다.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훨씬 즐거운 선택이다. 책의 등장인물 토마시처럼 말이다.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p.353)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삶은 일직선이고 너무 짧기 때문에 어떻게 살든 의미가 없다. 우리는 작가의 말에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삶은 정말로 일직선 일까? 삶이 일직선인 이유는 시간이 계속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만 흐를까? 우리는 과거에 의해 현재가 생겨났기 때문에, 현재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래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현재에 계속하여 무게를 부여한다.
우리를 결정하는 것은 육체가 아닌 정신이다. “육체는 껍데기고, 그 안에서 뭔가가 보고, 듣고, 두려워하고, 생각하고, 놀라는 것이다. 이것이 영혼이다.” (p.71p).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 우리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래를 상상할 때 우리의 정신은 미래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육체는 언제나 현재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생각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오간다.
생각 속에서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 회상과 미래예측을 통해 과거와 미래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닌다. 시간은 주축에서 밀려나 보조축이 된다. 현실이 시간 중심의 4차원 세계라고 한다면, 생각 속은 5차원 세계이다. 생각 속에서 시간은 삶의 방향을 의미하는 독립적인 축이 아니다. 행동이라는 축과 합쳐져 평면을 이루는 종속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의 좌표계에서 삶을 시간 – 행동 평면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생각 속에서 삶은 평면이 된다. 삶은 일직선이 아니라 평면이기 때문에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삶은 더 이상 탄생과 죽음이 붙어있는 짧은 한 순간이 아니다.
물론 생각 속에 있다고 해서 현실에서 흐르는 시간에 영향을 절대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현실에 두고 왔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 속에 있어도 현실의 시간에 미비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영향은 너무 미비하여 생각 안에서의 시간여행 1시간이 현실에서는 1분일 수 있다. 우리는 생각 속에서 삶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생각 속에 많이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밀란 쿤데라는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삶은 일직선이고 너무 짧기에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삶은 평면이고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삶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삶에 무게를 부여해도 부질없는 일이 아니다. 얼마든지 삶에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삶에 더 많은 무게를 실을수록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본질로 돌아와서 인생은 무겁게 살아야 할까, 가볍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원한다면 무겁게 살 수도 있고 가볍게 살 수도 있다. 무거운 삶은 분명 많은 의미가 담겨서 가치 있을 것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영원히 무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충분히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올바른 행동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답을 확인할 수 없는 문제여도 말이다. 자신의 사명에 대해 고민하며, 옳고 그름을 생각하는 삶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벼운 삶은 자유롭고 편안할 것이다.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 아니니 사명이나 책임감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행동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지 않다면 모든 나날은 똑같을 것이다. 행동에 있어 고통도 없지만 의미 또한 없을 것이다.
인생은 무겁게 살아야 할까, 가볍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작가의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가진 것과 같이, 이번 질문에서도 다른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건 이분법적인 사고이며 흑백논리라는 관점이다. 우리는 현실과 생각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생각 속에서 무거움을 선택해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생각 속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충분히 고통을 극복해 낼 수 있다. 시간의 구애를 받는 현실에서는 맞이하는 일들에 대해 더 이상 무거운 고민 없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고통만 받으며 살다가 죽으면 억울하지 않은가. 홀가분한 자유와 즐거움도 느껴야 한다. 무겁기만 하면 지치고 가볍기만 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 둘을 적절히 오가는 것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그 둘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삶 자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미 있으면서 자유로운 삶이다.
인생은 무겁게 살아야 할까, 가볍게 살아야 할까, 삶을 통제하면서 살아야 할까?
19.09.27 공너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