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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포 golfo Oct 01. 2019

[내생각 #2] 우리는 모두 망각의 동물이다.

우리는 모두 망각의 동물이다. - 공너싫 지음

우리는 모두 망각의 동물이다. - 공너싫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 짐들을 살피던 중 책장을 발견했다. 읽었던 책들을 꽂아 논 책장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던 중 생소한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을 내가 읽었던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책을 꺼내 표지를 보았다. 떠오르지 않는다. 안을 살피니 밑줄과 내 필기가 적혀있다. 분명히 내가 읽었던 책이 맞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책의 정보를 머릿속에 담기 위해 밑줄까지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을 텐데. 이제는 이 책을 읽었던 것 마저 잊어버렸다. 책을 펼쳐 밑줄을 중심으로 조금 읽어보니 감이 잡힌다. 맞다. 내가 읽었던 책이다. 그 자리에 서서 빠르게 밑줄을 훑은 나는 그 책에서 얻어갈 수 있던 정보들을 1시간 만에 상기해냈다. 책 한권에 1시간.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간 또 이 책의 내용을 까먹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책을 읽었는가. 결국 다음 번에 이 책의 정보를 사용하려면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겠지만, 다음 번엔 30분 안에 다 상기시킬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때 번뜩이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정리되었다. 그래, 축적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망각을 경험한다.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이때까지 보고 자란 것을 전부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랬다간 머리에 과부하가 올 지 모른다. 결국 다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가. 우리가 하는 수많은 행동은 축적을 위함이다. 지금 당장 쓰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시험을 보기 전에 전체 내용을 여러번 반복해서 공부한다. 마무리로 시험 전 날 정리해 놓은 자료를 다시 한 번 본다. 이때 주목할 점은 마지막엔 결국 시험 전날 하루 안에 그 많은 내용을 다시 상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 앞에 한 공부들의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함 바로 그 자체가 아니다. 시험 전 날 이때까지 공부한 정보를 빠르게 상기시킬 수 있기 위함이다. 그럼 ‘한 번씩만 공부하면 나중에 상기시킬 수 있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부는 여러 번 반복할수록 다음번에 상기시키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래서 축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공부한 수많은 정보들은 오래, 많이 기억되기 위해 머릿속 깊은 곳에 데이터파일로 저장된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찾는 파일은 최근파일 목록으로 옮겨져 다음에 필요할 때 더 빠르게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학습이다. 여러번 꺼내 쓸수록 내 뇌는 그 정보들을 자주 찾는다는 것을 안다. 다음번에 그 파일을 불러오는 시간은 더 짧아진다.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는 몇 분 만에 상기시켜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더 여러 번 반복할수록 시간은 더 단축된다. 많은 분야를 많은 횟수 공부하면 나는 더 많은 정보들을 축적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내가 축적한 정보들을 빠르게 상기시킬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은 전부 공부로 이루어져있다. 글쓰기도, 자격증도, 심지어 인간관계에서 육아까지 전부 공부다. 그 수많은 정보들은 공부를 계속 지속하지 않는 한 까먹는다. 당연한 현상이다. 나는 더이상 책을 읽을 때 나중에 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읽었던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 정보들은 이미 내 안에 축적되어 필요할 때 빠르게 나타나 줄 테니.

 우리는 모두 망각의 동물이지만, 축적의 동물이기도 하다.


19.01.17 공너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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