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きがい [이키가이:사는 보람]를 가진 사람이 부리는 마법
최근 한 책을 읽었다. 뇌와 마음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본의 뇌 과학자 켄 모기가 저술한 책 '이키가이 - 일본인들의 이기는 삶의 철학'이 그것이다. 그는 책에서 일본인의 행복과 장수의 비결로 '이키가이'를 꼽으며, 그것이 일본인들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수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소개한다.
이키가이가 무엇인고 하니 이키(삶)+가이(보람)가 합쳐진 말로 직역하자면 말 그대로 '사는 보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품은 그 의미의 깊이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언어라는 건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긴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법이다. 이키가이라는 단어 역시 일본인들의 오랜 생활양식과 철학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기에 단지 한 단어만으로 대체할 수 없다. 한국인들의 고난했던 역사를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 한(恨)을 단순히 agony나 sadness로 치환해버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키가이의 요지는 삶의 보람이 반드시 크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책에선 일본인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을 때나 손자를 안을 때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순간순간에도 이키가이를 느낀다고 말한다. 겉보기에 특별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만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기쁨을 발견하고 마음 깊이 간직하는 것, 그것이 이키가이다. 그리고 이키가이를 가진 사람이 실제 장수한다는 연구결과까지 있으니 일본이 괜히 장수 국가인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한국 라이프 스타일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소확행' 역시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처음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이 역시 하루키가 가진 이키가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유독 소소하고도 잔잔한 행복을 담은 콘텐츠(리틀 포레스트, 심야식당, 카모메 식당, 바다 마을 다이어리 등)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일본인들이 가진 삶의 철학에 이키가이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소확행과 이키가이의 차이점이라면 이키가이는 일상뿐만 아니라 노동의 영역까지도 멀리 뻗쳐 나간다는 데에 있다. 일(노동)에 있어 이키가이를 갖게 되면 금전적 보상이나 명예는 그냥 덤일 뿐이라고 믿게 된다. 일을 하며 진정으로 좇아야 할 것은 물질적이거나 표면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 느끼는 보람, 행복, 만족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얘기 같지만 원래 진짜로 중요한 것들은 결국 다 뻔한 사실들이지 않은가?
아주 작은 보람에서 시작하여 진정으로 애정을 가진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경제적인 풍요, 남들의 인정 같은 것은 결국 덤일 뿐이라 여기게 된다. 덤이라는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의미이다. 일본에 여전히 장인들이 만드는 전통 상품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화려하게 빛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장인이 존경받는 풍토가 지금까지도 잘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장인이 존경받는 이유는 장인이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투입하는 시간과 노동의 가치를 일본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장인의 노력에는 하나라도 더 많이 팔겠다는 마음이나, 한 명에게라도 더 이름을 알리겠다는 거창한 목표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그저 본인의 노력과 시간을 쏟고 싶은 일에 몰두한 것일 뿐. 충만한 이키가이를 느끼며.
이키가이를 이해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있다. '코다와리'이다. 코다와리란 어느 한 개인이 꾸준하게 지켜나가는 삶의 기준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나타낸다. 이키가이의 마음으로 일을 하여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서 나타나곤 한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디테일에 있어 결단코 흔들리지 않는 긍정적 의미의 고집이랄까.
예를 들어, "이 라멘집의 라멘에는 코다와리가 있어."라는 말은 라멘집주인이 오랜 시간 자신만의 이키가이를 가지고 만들어온 라멘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신념이 녹아있다는 뜻이다. 그 신념이라는 건 그가 고집하는 육수 우리는 방법일 수도, 면을 반죽하는 시간 혹은 절대 바꿀 수 없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 경력자의 음식, 장인의 물건에서 느끼는 코다와리 외에도 이키가이를 가지고 일을 대하는 태도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서 우리는 코다와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이키가이와 코다와리의 정수인 두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만한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글로만 읽었던 이키가이를 직접 느끼게 해 주고 나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 노부부의 커피 하우스와 필립을 소개한다.
노부부의 커피 하우스 맥스 (Coffee House Max)
작년 봄 도쿄에 갔을 때 신주쿠 역 근처의 호텔에서 지내며 아침과 저녁마다 근방을 걸어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신주쿠 역 근방의 조용한 거리, 그 거리 위엔 몇십 년이나 이어져왔을지 가늠도 안 가는 작고 오래된 커피 하우스가 있다. 커피 하우스 맥스(Coffee House Max)이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굳건히 흐르는 시간을 붙들고 있는 듯한 곳.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욱한 담배연기가 1960년대 레트로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오전 시간이면 한 손엔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는 노신사들이 한 테이블 씩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어린 소녀와 패셔너블한 젊은 아빠가 함께 들어와 오렌지 주스와 크로크 무슈를 시키기도 한다. 물론 생뚱맞게 우리 같은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오기도 하고.
이 커피 하우스의 하루는 척 봐도 80대는 되어 보이는 노부부의 손 끝에서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주로 커피 및 음료 담당, 할머니는 음식 담당이다. 그리고 서빙 스태프까지.(딸일까? 며느리일까?) 이 곳의 시스템은 늘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랏샤이 마세-" 라며 맞아주신다. 자리에 앉으면 서빙하시는 분이 물과 메뉴를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는다. 요즘의 카페에서는 주문을 하면 주문 내용이 바로 포스기에 찍혀 디지털 방식으로 전달되지만 여기에선 손으로 눌러 적은 주문 내용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꽤 '큰소리'로 전달해야 한다. "브렌도 코히 후타츠, 타마고 산도 히토츠 구다사이! (블렌드 커피 두 잔, 계란 샌드위치 하나요!)" 한 번에 전달이 안되어서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할 때도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21세기 최첨단 도시 도쿄에 있는 것이 맞나 싶어서 재미있다.
주문이 들어가면 할아버지는 사이폰 방식의 추출기를 이용하여 커피를 끓이기 시작하신다. 느릿느릿하지만 정확하게 휘휘 저어가며 만드는 커피. 우리는 속닥댄다. '할아버지는 저 기구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손을 데셨을까?' 할머니는 옆에서 샌드위치 담당. 할머니는 등이 많이 굽으셨다. 그럼에도 어찌나 부지런히 움직이시는지, 음식을 만드는 와중에도 다른 손님이 가게를 떠날 때 꼭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가신다. 굽은 등 때문에 손님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할머니는 기어코 곁눈질로나마 손님의 눈을 올려다보시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인사를 건네신다. 주문한 커피와 샌드위치가 모두 준비되면 우리의 테이블엔 빨아 쓰는 물수건과 함께 단정히 플레이팅 된 샌드위치 접시와 오래된 커피잔이 올려진다.
나에게는 여행 중의 영수증을 모아 스크랩하는 취미가 있어서 하루는 계산을 하며 영수증을 부탁드렸더니 어떤 영수증용 종이에 펜으로 가격을 적어서 주셨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현금결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아마 영수증을 달라는 손님은 거의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비즈니스 관점으로 보자면, 이 커피하우스는 매력은 있지만 영 수지타산에는 맞지 않는 곳이다. 아무리 메인도로가 아니더라도 도쿄 신주쿠라는 곳에서 자리를 유지하려면 최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사이폰으로 추출하는 커피는 나름의 시그니처이자 콘셉트로는 좋지만 시간이 꽤 걸리는 방법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몇 대 들여다 놓으면 훨씬 많은 커피를 빠르게 팔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가게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젊은 파트타이머를 고용하고, 번화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이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커피'라는 콘셉트로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어 꾸준한 홍보를 하고 주기적으로 구글 리뷰를 모니터 하면 신주쿠의 명물 카페로 미디어에 소개되어 관광객들로 늘 북적북적한 곳이 될지도 모른다. 테이블마다 사람 수대로 내놓는 물수건도 영 빨고, 삶고, 개기까지의 수고를 생각하면 일회용을 쓰거나 아예 없애는 것이 수지에 맞는 결정일지도 모른다. 일, 월, 연별 수익과 성장률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결제방식을 디지털화시키는 게 낫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이키가이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자. 커피하우스 맥스는 비즈니스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진득한 코다와리가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커피를 팔아 가게를 최대한 번성시키려는 생각으로 이 곳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묵묵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욕심 없이 해나갈 뿐이다. 완성된 커피와 샌드위치를 입에 넣은 손님들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그 손님이 다음날에도 다시 찾아와 같은 메뉴를 시킨다면 본인이 할 일은 그저 그 손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그 전날과 같은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커피 하우스의 문을 연다. 그러니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사이폰 기구를 휘휘 젓고 메뉴도 항상 그대로인 채로 십 년 이십 년... 이 흐른 것이리라. 보는 시각에 따라 비효율적이고, 낡고, 불편한 것들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이 곳은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기쁨이 느껴지는 공간이자 인생이다. 그래서 커피하우스 맥스는 특별하다. 이 커피하우스를 발견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성공적인 여행을 했다고 느껴지는 이유 - 그것은 모두 그들이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키가이 덕분이다.
충만한 이키가이를 가진 사람들은 작은 것들의 힘을 간과하지 않는다. 작은 보람과 작은 기쁨, 그리고 그것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를 무의식적으로 알고 실천한다. 작은 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지속 가능성에 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복, 단지 어제와 같은 오늘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상태, 현재에 충실하는 마음가짐이 주는 큰 울림을 커피 하우스 맥스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필립(Philip)
필립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런던에서였다. 당시의 나는 조금 멍한 상태였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갈피를 영 잡지 못하여 누군가를 마주하는 작은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던 때였다. 그럴 때 차 한잔 하겠냐고 먼저 말을 걸어준 것이 옆집에 살던 필립이었던 것이다.
얼굴은 몇 번 마주쳐서 눈인사 정도는 하던 사이였는데 그는 워낙 집을 자주 비우던 사람이기도 했어서 막상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눈빛과 몸짓에 타고난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나에겐 없던 그 여유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부러웠고 내심 닮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을 사운드 엔지니어라고 소개했다. 집을 자주 비우는 이유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어느 밴드와 함께 투어라도 한 번 떠나게 되면 그 일정이 한 달은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투어뿐만 아니라 런던을 베이스로 뮤직 페스티벌, 아트 센터, 공연 베뉴 등 음악이 있고 소리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일을 한다고 했다. "이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페이를 꽤 잘 쳐주는 것도 좋긴 하지만 말이야." 그가 말했다.
필립은 잉글랜드 북부 도시 맨체스터 출신이다. 그가 말하길 맨체스터는 워낙 날씨가 궂은 곳이라 애들이 밖에 나가 뛰어놀 만한 곳이 아니라고 했다. 햇살이 밝게 비추는 날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은 얄궂은 운명을 타고난 도시라나. 그러다 보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맨체스터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창 혈기왕성한 때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실내에 박혀있으려니 답답했던 아이들은 그 에너지를 음악에 분출하기 시작한다. 띵가띵가 기타를 치고, 음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마음 맞고 취향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밴드를 결성하다가 마침내는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도시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빈 창고를 그들의 연습실, 혹은 공연장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고.
그러고 보니 맨체스터가 한 때 매드체스터(Madchester)라고 불렸다는 사실과 지금까지도 난다 긴다 하는 락 밴드들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락앤롤 신의 많은 전설적 밴드들이 맨체스터 출신이었던 걸 보면 필립의 말에는 분명한 일리가 있었다.
필립 역시 낮에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과 **더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을 들으며 몽상에 젖고, 밤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하시엔다(The Haçienda)를 기웃거리는 맨체스터 키즈 중 한 명이었다. 순전히 음악이 듣고 싶어서 클럽을 전전하고 긱(gig)이란 긱은 모두 쫓아다녔던 그는 어느 날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필립은 한 밴드의 긱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난히 그날따라 음악 소리가 가깝게 잘 들려서 공연의 질 자체가 다르다고 느끼던 찰나, 사람들의 시선과는 정 반대편 뒤에서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그 공연의 사운드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였고, 사운드 데스크 뒤에서 음향을 조절하며 사람들에게 가장 생생한 라이브 사운드를 선사함으로써 공연을 '한 수위'의 경지에 올려놓고 있었다. 필립은 그 날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처음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그 일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나 저거 하고 싶다. 배우고 싶다.'라는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수한 날 것의 열정이 싹튼 것이다. 특별한 목표 없이 살던 어린 필립은 처음으로 꿈이라는 걸 갖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진짜 날 감동시킨 부분인데, 필립이는 글쎄 그날부로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사람을 찾아갔단다. 절대로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게 해달라고 설득하기를(혹은 조르기를) 며칠, 필립은 정식으로 그에게 사운드 엔지니어링의 기초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남들 다 ****A레벨이다 뭐다 대학 간다고 공부할 때 사운드 엔지니어링 스쿨에 입학하여 정식 교육을 받았고, 작은 클럽과 페스티벌 등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여 런던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의 그는 사운드 엔지니어라면 무릇 한 번쯤은 꿈꿀만한 베뉴에서, 명성이 자자한 아티스트들과 일을 한다.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의 로열 페스티벌 홀을 제 집 마냥 드나들고, 트라팔가 스퀘어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야외 공연의 총사운드를 이 년 연속 담당했다. 그런데 이 사람한테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제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BBC 프롬 사운드 믹싱을 맡았던 사람이 오늘은 오랜 친구의 공연을 위해 뒷골목 허름한 클럽에서 사운드 데스크를 열심히 만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 클럽에서 돌아온 뒤 "오늘 공연 정말 최고였어!"라고 소년처럼 웃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광채 같은걸 봤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햇수로 따지자면 그의 경력은 15년이 훌쩍 넘어간다. 어떤 일을 하던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일이 몸에 익어 2-3년 차에 느끼던 파릇파릇한 열정 같은 건 사라지고 권태감에 사로잡히기 마련 아닌가?(15년이면 10번 이상의 이직도 가능한 시간이라고!) 그럼에도 나는 이 사람이 내일 있을 일에 대한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진정으로 애정을 가진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렇게나 아름답다.
필립을 보고 있자면 경제적인 보상이라던가 남들의 인정 같은 것들은 절대 개인이 지닌 일에 대한 애정을 이길 수 없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니, 애정이 몰두가 되고 꾸준함으로 이어지면 돈은 따라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번지르르한 직장에서 쿨한 동료들 사이에 있는 것, 그럴듯한 직함과 꽤 괜찮은 보수를 받는 것이 우선인 사람과 그런 것들은 그저 덤일 뿐이라 여기며 그저 오늘 하게 될 일에 대한 설렘으로 지난밤 잠을 설친 사람 중 충만한 이키가이를 가진 사람,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 훨씬 수월한 사람은 누구일까.
필립과 처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그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던 테이블에서 그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이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페이를 꽤 잘 쳐주는 것도 좋긴 하지만 말이야."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1970년대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락밴드로, 당시 영국 펑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영감이 되고 있다. 메인 보컬이었던 이안 커티스(Ian Curtis)의 죽음 이후 남겨진 멤버들은 뉴 오더(New Order)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더 스미스(The Smiths): 80년대 영국 인디락 씬의 절대적 존재였던 밴드, 그 막대한 영향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시엔다(The Haçienda): 70년대 뉴욕에 스튜디오 54가 있었다면 80-90년대 맨체스터에는 하시엔다가 있었다. 조이 디비전이 소속되어 있었던 팩토리 레코드(Factory Record)의 토니 윌슨(Tony Wilson)에 의해 설립된 맨체스터의 전설적인 나이트클럽으로, 맨체스터가 매드체스터 되어가는 데 기름을 끼얹은 곳이다. 1997년 문을 닫을 때까지 맨체스터 레이브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A레벨(A-level): 영국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치르는 시험.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불행할 때도 있다. 아이러닉 하게도 나의 불행은 나의 에고에서 연유한다. 강한 에고는 종종 개인을 갉아먹는다. 물질적이고 표면적인 것에 대한 집착과 욕망, 잘 보이고 싶고 잘 해내고 싶고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바라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는 에고는 그 끝이 반드시 불행이라는 함정을 가지고 있다. 번듯한 직장과 타이틀을 갖게 되어도 에고의 욕망은 끊임없이 인정을 갈구하고,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상태로는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나의 즐거움에 몰두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이키가이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이키가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이키가이에 대해서>라는 책을 쓴 카미야 미에코는 책에서 근심 걱정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는 추구해야 할 이키가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가 정의 내린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어린이는 특정 직업이나 사회적 역할에 얽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키가이를 가지기 위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외부적인 수단 - 마약, 섹스, 권력, 아드레날린, 명품 수집 - 을 총동원해 행복이 넘치는 완벽한 상태에 머무르려 애썼다. 행복을 찾아 사방을 뒤지고 다니지만 사실은 톨스토이가 쓴 우화에서처럼 금이 담긴 항아리 위에 앉아 있는 거지와 같다. 자기 엉덩이 밑에 금덩어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푼돈이나 구걸하는 거지. 당신의 보물, 당신의 완벽함은 이미 당신 내면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의 분주한 소란에서 벗어나 에고의 욕망을 버리고 가슴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쿤달리니 샥티, 신성한 에너지가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일본의 철학 이키가이를 이야기하다가 산스크리트어로 '우주를 관통하는 에너지'를 의미하는 '샥티(शक्ति )'의 개념까지 중구난방으로 나열되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에고의 욕망에서 비롯된 거창한 목표나 대단한 업적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지 말 것.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경제적 보상이나 남들의 인정보다는 이 즐거움을 추구하고 몰두하다 보면 원하는 곳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책의 말머리에서 말하듯 인식의 변화는 어느 한순간 불쑥 이루어지기보다는 서서히 변화한다. 우리의 인생에는 혁명이 필요한게 아니라 발전이 필요하다. 이키가이를 갖게 될 경우 일어나는 변화는 우리네 인생이 늘 그러하듯 그리 대단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다가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