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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Nov 03. 2019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중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적어두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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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단 한번의 노력을 해야 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를 응시한다. 말 그대로 내가 어제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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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에 미소를 띠고 도라도레스 거리와 이 사무실, 이 사람들 사이에 한정된 인생을 고요히 받아들인다. 먹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고 잘 곳이 있고 꿈꾸고 글을 쓸 약간의 시간이 있는데 무엇을 더 '신'에게 요구하며 '운명'에게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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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야망이 있었고 거창한 꿈도 있었다. 배달부 소년도 여자 재봉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꿈은 누구에게나 있으므로 차이가 있다면 꿈을 이루는 능력이나 꿈을 성취하는 운명일 것이다.

 꿈 속에서 나는 배달부 소년과 여자 재봉사와 똑같다. 나와 그들의 차이는 내가 글을 쓸 줄 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글쓰기는 나를 그들과 구별짓는 하나의 행위, 하나의 현실이다. 그러나 내 영혼 안에서 나는 그들과 다를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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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언제까지나 회계사무원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시나 문학은 내 머리에 앉은 나비와 같아서,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나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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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케스 사무실의 회계관리장이 되는 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날일 테지. 나도 안다. 씁쓸하고 냉소적인 예감이지만 나의 지성을 걸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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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까지, 가짜로라도 스핑크스가 되어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사실 가짜 스핑크스에 불과하며 우리가 정말로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부조리야말로 신성한 것이다.


 이론과 반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이론을 세우고 거기에 대해 심사숙고하자. 우리의 행동에 모순되는 이론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자. 길을 만들고 그 길로 가는게 아니라 정반대로 행동하자. 우리와 상관없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여겨지기를 바라지도 않는 어떤 행동과 자세를 취하자.


 책을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사자. 음악을 듣거나 거기에 누가 오는지 보려는 생각 없이 음악회에 가자. 걷느라 지쳐 있을 때 긴 시간 산책하고, 시골이 따분하므로 시골에서 며칠을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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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가끔 나를 괴롭히는 오랜 걱정 때문에 몸까지 좋지 않았다. 나의 생존을 의지하다시피 하는 이층 식당에 식사하러 갔는데 평소만큼 먹거나 마실 수가 없었다. 식당을 나서려는데 내가 포도주를 반병 가량 남겼음을 알아차린 종업원이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소아르스 씨.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간단한 인사말에 깃든 음악 소리 같은 느낌이 마치 먹구름을 걷어가는 바람처럼 내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전에는 한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카페와 식당의 종업원들과 이발사, 또 길모퉁이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은 나와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런 공감대는 명목상 나와 훨씬 더 친밀한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지애란 미묘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고, 어떤 이들은 그 세상이다. 어느 미국인 백만장자, 카이사르 또는 나폴레옹이나 레닌, 작은 마을의 사회주의 지도자 사이에는 질적 차이는 없고 양적 차이만 있다. 그들 아래에는 우리같이 눈에 띄지 않는 이들, 즉 경솔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학교 선생 존 밀턴과 방랑자 단테 알리기에리, 어제 나에게 우편물을 가져다준 배달원이나 잡담을 들려준 이발사, 바로 오늘 포도주 반병을 남긴 나를 보고 쾌차를 빌어주는 동지애를 발휘한 식당 종업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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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란 예술과 사상의 결합이며 현실의 흠을 덜어낸 결과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하는 목표다. 그것이 동물적인 본성의 여분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에서 비롯된 노력인 한에서 그러하다.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 것은 추한 부분은 빼버리고 미덕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들판의 푸름에 대한 묘사에서 들판은 실제보다 더욱 푸르다. 상상 속에서 묘사한 꽃의 색깔은 세포의 실제 생명력 이상의 영속성을 갖게된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고, 말해지는 것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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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날을 미사여구로 꾸민 기억 안에 잘 보존하여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저 공허한 세상의 들판과 하늘에서 새로운 꽃과 별로 빛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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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근본적인 생각과 정말로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 할말이 너무 많은 지금, 갑자기 피곤이 밀려오니 더이상 쓰거나 생각하지 않으련다. 말하고 싶다는 열의에 잠이 쏟아지고, 눈을 감고 내가 말할 수도 있었던 모든 것을 고양이를 쓰다듬듯 부드럽게 어루어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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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이, 정체를 알기 힘들지만 어쩌면 고상한 욕망이 나를 압도했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마침내 높은 창문에서 몸을 내밀고 정말로 바라보지는 않으면서 거리로 시선을 보냈을 때, 문득 나 자신이, 말리려고 창가에 가져갔다가 잊힌 바람에 둘둘 엉킨 채 난간에 천천히 얼룩을 남기는 젖은 걸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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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지 않았지만 내가 타고난 감수성의 혼란스러운 밑바닥에 있는 것들의 총체가 바로 나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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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시간을 한껏 잡아늘이고 싶고,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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