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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 Jan 04. 2021

당신의 2020년은 누구였나요?

저에겐 이 사람...이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에게 꽤나 묵직한 무게로 다가왔을 한 해의 끝과 시작 위에서 2020년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싶어요. 저는 원래 천성이 미래지향적이거나 계획적이라기보다는 뒤돌아보며 후회도 잘하고, 추억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2021을 어떻게 보낼지보다도 2020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저에게는 조금 더 중요한 이유랍니다.


얼마 전 정말 정말 오랜만에 대학 선배와 연락이 닿았어요. 제가 스무 살이던 때 처음 만났던 선배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지윤아, 네가 벌써 서른이라니!!!" 맞아요. 저는 2020년과 함께 황금 같던 20대 시절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직 만으로는 20대라고요! 외치고 싶어 지는 걸 보니 진짜 30대가 되긴 되었나 봐요.) 선배가 기억하는 저는 아마 멋모르던 대학교 신입생의 모습일 거예요. 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며 과제는 어떻게 하는 건지, 논문은 어디에서 찾는 건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그녀를 귀찮게 했던 기억이 나요.


또 며칠 전에는 새해를 핑계 삼아 이제는 더 이상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 않아 통 얼굴 보기가 힘든 대학 동기와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대학 때 저희는 매일매일 붙어있다시피 했었어요. 그녀는 저의 찍튀 메이트였거든요... 당시 강의실 앞에는 학생증 리더기가 있었는데, 학생증을 그곳에 찍어서 출석체크를 대신하곤 했었어요. 그러니까 학생증을 찍어서 출석한 척하고, 정작 강의는 듣지 않고 튀어버리는게 바로 '찍튀'인거죠. 같이 수업을 튀고나서 하는 것이라곤 고작 학교 앞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서인지 그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먹었던 그 카페의 당근케이크 맛만큼은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아요.


그러고 보니 대학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건 전공과 관련된 지식이나 학위 같은 것이 아니라 멘토가 되어준 선배, 찍튀를 하며 함께 해방감을 만끽했던 친구, 술을 진탕 마시다가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갔던(ㅋㅋ) 친구와 그때 함께 있던 동기들, 나를 호되게 혼내셨던 교수님, 강사 알바를 할 적 가르치던 학생들, 어떻게든 밖에서 더 놀려고 하는 저를 보며 골치깨나 아프셨던 부모님 등등 이더라고요. 딴건 몰라도 그 시절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에 대한 기억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너무나 생생해요. 어쩌면 '시절'이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숨어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으로 기억되는 시간'이라는 의미요.


지나간 시간을 사람으로 기억하는 건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가슴 아픈 일일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제 21살의 기억 속엔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가 있거든요. 저의 지나온 20대 시절은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시간을 함께해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저라는 사람을 만든 건 결국 또 다른 사람들이었어요. 좋았던 사람도, 나빴던 사람도 모두 다요.


서론이 길어졌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2021년 초입에서 2020년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2020년은 제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했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저의 2020년을 가득 채워준 사람은 바로 저의 사랑, 조카예요.


2020년은 정말 이상한 해였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죠. 아니 실제로 멈춘 게 맞아요.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던 시점에서 결심했던 여러 다짐들을 2020년에 제대로 실행하지를 못해서 2021년으로 그대로 토스해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이 정도면 시간이 멈춘 게 맞죠. 그런 시간을 거쳐오며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집에 있는 시간이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몸도 많이 물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요. 이런 와중에 저의 주위를 딴 데로 돌려준 것이 바로 예쁜 저의 조카였던 거죠. 조금 울적해지려고 하기가 무섭게 주위를 휘저어 놓고, 침대로 파고들어 누워만 있고 싶을 때면 또 잽싸게 저를 마구 굴려먹는(?) 조카 덕분에 어쩌면 그러지 못했을지도 모를 시기에 많이 웃을 수 있었어요. 조카는 2019년 여름에 태어났는데요, 우리 가족에게 처음 찾아온 생명의 탄생에 대한 생생한 감정은 당시 일기에 잘 나와있네요.


아침 9시 50분, 엄마에게 '순산했어' 네 글자 카톡을 받았다. 그 순간 뜨거운 게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와 금세 눈 코까지 벌게졌다. 그냥 말로 형용이 안 되는 안도와 감동. 새 날, 모든 게 바뀔 앞날에 대한 압도감.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 라는 안심. 얼마나 고생했을까 우리 언니, 짠한 마음. 옆에서 지켜보고 가슴 쓸었을 엄마의 강한 애정. 그 모든 게 단 네 글자에 전부 담겨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아빠도 그 카톡을 보는 순간 당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그 강한 아빠가. 용용이(조카 태명)는 그렇게 온 가족의 벅찬 감동의 눈물 속에서 축복과도 같이 태어났다. 언니가 진통으로 고생할 때까지만 해도 '절대로 겪고 싶지 않고, 난 아직 이걸 현실로 받아들일 정신적 미성숙의 상태'라고 규정해버렸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갓 태어난 용용이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위대한 생명의 신비에 압도되어 해볼만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얼굴을 보는 순간은 그 이전의 모든 시간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과도 같다는 걸 알았다. 언니와 용용이는 나에게 그런 용기 같은걸 준 것 같다.


2020년이 되었을 때 조카는 신생아티를 벗고 조금씩 배밀이를 하고 소리도 낼 줄 알 정도로 성장했어요. 설날에는 온 가족 앞에서 목도리 도마뱀처럼 사사사삭 빠르게 기어다닐 정도가 되었구요. 그리고 언니가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귀하던 2020년 5월부터 저와 조카는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언니가 출근을 하게 되면서 평일 낮시간 동안 부모님이 조카를 봐주시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 일수가 많아지고 여행도 못가게 되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또 이 무렵 아기들의 성장속도는 무서울 정도거든요. 이유식도 게눈감추듯 먹구요, 돌 즈음 부터는 어른들이 먹는 일반식도 조금씩 먹기 시작하는데 이 때 아기한테는 얼마나 매일이 새롭고 신기하겠어요. 텐션이 미친듯이 올라가는 것도 이해가 가요.


그런데 사실 제가 가진 <이모>라는 타이틀은 아주 유리한 포지션이거든요. 우선 아기의 엄마 아빠가 겪는 고충을 저는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요. 일례로 아기가 밤에 잠을 잘 안잔대요. 겨우 재워놔도 자꾸 새벽에 깬대요.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거의 한 숨도 못자는 날들이 매일매일 반복되다보니, 마냥 아기가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하지는 않을 거에요. 제발 잠 좀 자라~~~ 울고싶을 지경인 적도 많았대요. 또한 그들의 어깨 위에는 저는 절대 알지 못할, 한 인간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있을거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낮에 거의 아기를 전담하죠. 저는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일을 해야하니 저만의 공간에서 아기와 분리되어 있다가 쉬는 시간과 퇴근 이후에만 아기랑 놀아주면 되거든요. 아기의 기저귀 처리, 끼니 챙기기, 목욕 시키기는 돕기는 하지만 필수는 아닌거에요. 저는 육아의 여러 단면 중 아기의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 최대치로 만끽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에요. 게다가 미혼의 20대 이모였으니... 아기 때문에 포기해야하는게 있었을리가 없죠. 사실 이런 이모 하나쯤 있는게 아기 입장에서도 나쁠건 없을 것 같아요. 그야말로 사랑을 퍼부어주고 앙증맞은 예쁜 옷과 신발을 사다 나르거든요 ㅎㅎ 지난해 일기장을 뒤적여보면 유독 조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소중하고 신비로운지, 저는 지금도 조카를 볼 때마다 매일이 새로워요.


갈수록 이뻐죽겠는 우리 조카. 200일도 안되어서 소파잡고 일어서더니 이제는 더더욱 자기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한다. 분유가 먹기 싫으면 손으로 밀쳐내고 안아달라고 소리도 잘친다. 장난꾸러기라서 여기저기 옮겨 안기는 놀이도 터득했다. 지금보다도 더 아기일 때부터 눈을 뚫어져라 잘 쳐다본다. 까끌거리는 찍찍이나 초록 식물 잎 만지는걸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근데 또 궁금은해서 슬금슬금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랜다. 그게 너무 웃기고 귀엽다. -2020년 3월 4일 일기 중
조카가 너무 예뻐서, 하루하루 더 사랑스러워져서 감당이 안된다. 계속계속 보고싶고 얘는 진짜 행복하기만 했으면. 상처받는 일, 고생하는 일, 우울한 일 없이 건강하게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2020년 4월 7일 일기 중
어느덧 첫 돌을 맞이한 조카. 지난 일년 조카가 가족의 일원이 되고 우리집에 온 변화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큰 기쁨이자 기적이었다. 그야 말로 모두의 삶을, 그리고 모두의 우선순위를 바꿔버린 엄청난 놈! 그저 건강하고 밝게 커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내 눈엔 예뻐 죽겠기만한 소중한 조카이다. 앞으로 상처받는 일 없이 살고싶은대로 살고 하고싶은거 하고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2020년 8월 9일 일기 중
조카는 요새 부쩍 떼가 늘었다. 마음대로 안되면 쫓아가는게 아니라 벌러덩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저런건 어디서 보고 익힌거지. 본능인가? 신기하기만 하다. 오늘도 조카는 궁금하고 만지고 싶은게 많았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눈에 보이면 우선 달라고하고 본다. 그러면 함미나 합삐는 보통 안된다고 한다. 그걸 줬다간 어지럽힐게 뻔하고 괜히 들고다니다가 다칠까봐. 그에 비해 나는 웬만하면 다 들어준다.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는 어른도 한 명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 나중에 커서도 거리낌없이 달려와도 된다고 생각할 안전빵 어른이 하나쯤은 필요할 것 같아서. -2020년 12월 21일 일기 중


묘한 사실은 조카에게 바라는 이모의 마음이 마치 스스로에게 고하는 다짐과도 같다는 거예요. 원하는대로 살고, 그럼으로써 행복하기를 바라는 조카를 향한 저의 마음은 꼭 제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는걸 깨달았어요.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삶을 되돌아봤을 때 아쉬운 부분 하나는 누구나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 마음 속 아쉬움을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자그마한 생명에게는 쉬이 고백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기 앞에서는 결국 누구나 솔직해질 수 밖에 없나봐요. 저는 원하는대로 살지 못했다기 보다는, 원하는걸 잘 몰랐던게 아쉬웠어요. 2020년 일기장 맨 앞에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한해가 되면 좋겠다고 썼거든요. 고백하자면 2020년에는 결국 그 답을 찾지 못하여서 자연스레 2021의 결심으로 다시 연장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조카에게 바라듯 저 스스로에게도 한 번 더 바라보려구요. 원하는대로 살고, 행복하고 온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 다음에 조카가 저만큼 컸을 때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주저 않고 저에게 달려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답을 몰라도, 언제든 달려갈 수 있고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이모가 되고 싶어요. 위에서 말했듯 저는 엄마가 아니라 이모니까요! 엄마한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말도 거리낌없이 다 할 수 있는, 그런 방패막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에게 이런 울림을 준 사람이니까, 저에게 만큼은 조카가 2020년의 사람으로 기억될만하지 않나요? 아기란 꼭 부처같다니까요. 가만히 웃고만 있을 뿐인데 막 사람을 울리고, 다짐을 하게 만들고, 깨달음을 줘요. 뒤돌아보니 2020년이 반드시 나쁜 한 해는 아니었구나- 새근새근 잠이 든 조카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결국 조카바보 인증으로 끝나는 이 중구난방의 글의 결론은 사실 간단해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그 시간을 채운 사건이 아닌 사람을 한 번 살펴보세요. 혹시 올 해 결혼을 했다면 결혼식을 올렸던 한 해로 기억하기보다는 나와 평생을 약속한 그 사람으로 올 해를 기억하는거에요. 이직을 했다면 이직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이직을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준 사람이라던가, 응원해준 사람, 혹은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도와준 사람으로 기억해보는거죠. 어쩌면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냈던 한 해 였을 수도 있어요. 누구보다 스스로를 더 많이 느낀 한 해였다면 '내'가 바로 올 해의 사람일 수도 있을 거에요.


당신의 2020년은 누구였나요?

당신의 2021년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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