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ranky witch Jan 13. 2018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감정을 차단했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이 결정이 옳은지 틀렸는지 모른다.

그냥 이 짜증 나고 한없이 우울해지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왜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는가?

이유: 서운하다는 감정 자체의 괴로움 + 서운함을 표출했을 때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


■서운하다는 감정 자체의 괴로움

: 말 안 해도 누구나 알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상대를 생각했던 만큼 상대는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구나.. 에서 자주 오게 된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고

계속되면 내가 사랑,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다.

진짜 많이 괴롭다.


■서운함을 표출했을 때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

: 한 두어 번 정도는 상대도 미안하다고 하거나 이해해주려 한다. 

그러나 반복되면? 상대가 지친다. 상대의 또 서운하냐는, 또 불평하냐는 반응을 마주하게 되면

서운했던 나는 목이 턱 막히면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서운하게 만든 게 누군데? 

상대가 지쳐할까 봐, 이렇게 징징대는 나를 지겨워할까 봐 

다음번엔 서운해도 말할 수 없다. 

쌓아둔다고 없어지는 감정도 아닐 텐데.. 나중에 독이 될 텐데..

그렇다고 말하자니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말해봤자 또 저런 소리한다고 그 지겨워하는 표정만 보게 되겠지..


이 상황에서 내가 찾은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1. 서운한 감정을 느껴도 말하지 말고 참자.
2. 서운한 감정 자체를 느끼지 말자.


1번 방법은 나의 내적 고통이 너무 심해 차마 선택할 수 없었고,

2번을 선택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에게 서운할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라고 나왔기 때문이다. 

서운함(상대는 나를 덜 생각하는구나)을 느낄 때, '상대는 나를..'이라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나는..'을 생각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꽤 괜찮아 보이고 그럴듯해 보였던 2번 방법을 실행해보니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었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 나는 차가움이 뚝뚝 떨어지는 여자 친구였다. 

물론 만나면 좋은데, 딱히 만남을 갈구하진 않는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넌 날 좋아하긴 하니?"였다. 

나에겐 남자 친구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조금 달랐다.

사랑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고, 더 많이 보고 싶고, 더 많이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서운해졌다.

그래서 서운해지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내 감정은 전처럼 돌아갔다.


이젠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고, 

남자 친구가 "보고 싶어~"라고 해도 "나도"라고 예의상 대답할 뿐 딱히 아쉽지 않았다. 

주말에 만나는 것도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굳이 만나야 하나.. 그냥 집에서 쉬고 싶은데.. 


어떤 사람은 감정을 흘러가는 대로 두라고 한다. 

이렇게 점점 싱거워지고 무뎌지는 감정이 흘러가면 결과가 뻔하게 보인다. 끝이겠지 뭐. 이 사람 전까지는 그래 왔으니까.


그런데 나는 지금 무섭다. 

많이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겨우 찾은 것 같은데, 이렇게 또 끝인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