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어주고 싶다. 늑대인간 리무스 교수님, 최후의 수호자 메디브 가디언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루하게 반복될 것만 같던 포맷에서 예상과 다르게 벗어났을 때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2001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2002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연달아 보고
'오, 이 새로운 세계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기는 개뿔,
여느 초등학생답게 '우와!!!!!!!!!!!!!!!!!!!짱재밌다!!!!!!!!!!!!!!!!!!!'라는 마음으로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1편인 마법사의 돌과 2편 비밀의 방을 보며
다음 편의 줄거리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둠의 마법 방어술로 오는 교수는 뭔가 문제가 있다"였다.
<마법사의 돌>편에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던 퀴렐 교수는,
아직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볼드모트를 자신의 뒤통수에 기생하게 해놓고
해리의 뒤통수를 때리는 역할을 하는 충격적인 교수였다.
(뒤통수 라임 노림수...)
<비밀의 방>의 미남(?) 교수로 부임했던 질데로이 록허트 교수는,
퀴렐 교수처럼 볼드모트와 '악의 추종자'들 무리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은 아니지만,
막상 론의 여동생 지니가 비밀의 방에 끌려가자 "내가 해결하겠다!"라며 허풍을 떨어 놓고 몰래 짐 싸서 도망가려 한다. 실력 있는 미남 교수로 소문났던 그는 사실 '실력 있는 척' 하는 것을 잘했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지운 후, 자신이 해결했다고 소문내는 방식으로. 딱히 심각하게 악의 역할은 아니지만 비밀의 방에 해리, 론과 함께 들어가게 된다.
(덤블도어가 이런 사람을 솎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놀랍다. 인재 등용이란 이리 어려운 길인가?ㅋㅋㅋㅋ)
초등학생 당시 위처럼 자세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대충 느낌상으로 1,2편에서 이랬으니
'아, 해리포터 시리즈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가 이상한 사람으로 나오는 포맷이겠구나. 근데 계속 이렇게 되면 예상 가능한 얘기니까 약간 지루하지 않나? 어쨌든 볼 거긴 하지만...'라는 마음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년 뒤에 나온 <아즈카반의 죄수>.
역시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가 새로 부임했는데
Remus. J. Rupin(리무스 루핀)
이 사람은 뭔가 달랐다.
보통 학생들만이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교수가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 심지어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옷을 덮고 자고 있다? 책에서는 몇 번 꿰맨 듯한 남루한 옷과 매우 지쳐 보이고 아파 보인다는 말로 그의 첫 등장을 묘사했다. 실제로 호그와트에 교수로 부임하기 전 까지는 궁핍한 생활을 지내다가 호그와트에 오게 되면서 안정적으로 지내자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러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서 전 편의 교수들과 그다지 다른 요소는 아니다)
일단 호그와트행 급행열차 안에서 디멘터들을 물리친 패트로누스 마법으로 우리에게 깊은 첫인상을 남겼는데, 그의 수업은 더 강렬하다. 학생들에게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마법 주문을 알려주는데, 해리포터 전 시리즈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두려움에 부딪혔을 때 써먹을 수 있는 행동을 가르쳐 준 교수다.
"Riddikulus!(리-디↗큘러스)"를 외치면 내가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변신했던 보거트가 우스꽝스럽게 바뀐다.
(어떤 자세로 두려움을 마주해야 하는지, 난 이 수업에서 배웠다.)
어쩜 이리 자상하고 인자할까.
리무스 교수가 나오는 모든 장면들은 대사가 하나같이 명언들이다. 인생 선배란 이런 사람일까.. 자서전 내시면 내가 제일 먼저 사고 싶을 정도다.
이렇게 완벽해 보였던 그였는데... 한 없이 자상하고 인정 넘치고 사려 깊고 부드러운 그가 늑대인간이라니...
처음엔 너무 충격이었다. 이 교수님이 늑대인간이라니!! 감히 시리우스와 해리를 공격하다니!!
그런데 욱했던 배신감이 진정되자,
안쓰럽기 시작했다.
어딘가 모르게 챙겨주고 싶게 만드는,
고독을 품고 살아가는 그의 분위기는
이 때문이었구나.
외로움을 타개하러 소개팅에 나가는 게 아니라,
외로움을 벗 삼아 평생을 살아가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비밀을 품느라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내 안에 악이 있고
그것이 내 안에 존재함을 나도 알고 있는데
그것을 이겨낼 수 없음에도
(혹은 이겨내기 힘듦에도)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한다는 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 길일까
솔로 기간이 길어질 때면,
사람들이 종종 외롭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내가 맘껏 느끼는 외로움은
사람들이 묻는 외로움과 다른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밖에 나가서 이성친구를 만나고 함께 보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더라.
외로움의 대상이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가지를 외로움을 완벽히 분리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내면에 자신만의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캐릭터들은
겉으로는 한 없이 따듯하고 부드러워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춰보니 시리디 시린 캐릭터들을 보면
그 눈빛이 너무 마음 아파서
그래서 더 '내가' 감싸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Medivh도...
워크래프트의 현란한 마법 장면들 사이에서도,
그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그 외로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