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했고 미워했고 다시 사랑하며 산다.
한 지인은 20여 년 동안 ‘사부’로 칭하며 매년 찾아뵙는 분이 있다. 지인의 가능성을 보고 혹독한 훈련으로 키워 주신 분이다. 그는 사부의 인정을 질투로 바라본 직장 동료의 왕따를 경험했다. 한창 일하다 고개를 들면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점심시간이었다. 업무 미팅을 가기로 해서 5명이 택시를 나눠 타야 하는데 눈치를 보며 그와 택시를 타지 않으려 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 말한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것은 '너'에 달렸어”
사부는 했다.
“너 왕따냐?”
“야! 왕따! 점심 먹으러 가자.”
“너 성격 엄청 안 좋은가 보다. 왕따 인걸 보면”
한동안 그런 말이 왕따보다 상처가 됐지만 실은 사부의 배려였다. ‘왕따’라는 단어가 대수롭지 않도록 도운 것이다. 그는 그런 사부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고백한다. 도망치면 배움을 포기해야 했고 왕따 시킨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일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받았다고 밀어낸다면 유지할 수 있는 관계는 점점 줄어든다. 새로 사귀는 사람에게도 상처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니 밀어내기만 하면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선이 점점 줄어들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줄만 남는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든 있고, 좀 있으면 어떠냐 생각하면 그만이다. 주변에 싫어하는 사람 한 두 명은 꼭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자기가 무슨 능력으로 할 수 있겠어.”하는 왕따시키며 들었던 비난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그는 지금 그 자리에 없다. 그가 믿은 것은 사부가 가능성을 인정해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함께 했기 때문에 그의 사무실에는 웃으며 20여 년 전 이야기를 나누는 ‘왕따 시킨 놈들’과 ‘왕따 당한 놈’이 있다.
김밥은 여러 개의 재료가 들어가야 맛이 난다.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보면 김밥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인지, 빼도 상관없는 재료인지 아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인다. 하지만 김밥 재료는 워낙 다양하게 쌀 수 있으니 알고 보면 뺄 것이 많지 않다. 맛있는 김밥, 조금 맛없는 김밥이 있을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면 답이 나온다. 최근 전화 통화 목록을 한번 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통화한 목록이 몇 개나 되는지 보면 된다. 이사 날짜를 다섯 번 바꾸며 나를 힘들게 한 분과 이삿짐 업체 전화가 가장 많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자신을 인정해준 사부와 인연을 놓지 않고 함께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아무리 힘들게 하며 왕따를 시켰던 사람들도 사업 파트너가 되고, 직원이 되어 살아간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살고 있다. 질투했고, 오해했지만 실력을 인정하고 함께 지낸다.
우리도 사랑했고 미워했고 다시 사랑하며 산다.
함께 해야 힘이 나기 때문이다. 사랑이 샘솟기 때문이다. 다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름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만 함께 하면 다른 면을 볼 수 없다. 축구 경기처럼 우리 팀도, 상대팀도 어울려서 함께 해야 재미있는 경기가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야 인생의 여러 맛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