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관계라면 너무 애쓰지 말자.

#의미 없는 사람#무신경#

by 지금이대로 쩡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는 2010년 초반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시작됐다. 대량생산과 소비를 하는 시대에 살면서 많은 것을 누리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런 이유로 적게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찾아낸 대안이다.


주변에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지인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 관련 도서를 구매하는 ‘도서 맥시멈 라이프’부터 시작했다. 자신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웃더니 읽은 책을 나눠 주기 시작하며 실천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관계의 양, SNS 팔로워 수가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예능프로 <라디오 스타>에 나온 래퍼 슬리피는 “SNS 팔로워 수가 많으면 자신감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팔로워 수에 많으면 선배, 적으면 후배라는 논리를 펼쳤다. 서열정리가 까다롭다는 가요계에서 SNS 수로 선후배를 만든다는 것은 그에게 SNS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발언이다. 물론 예능프로에 나와 한 말이니 백 프로 진심은 아니겠지만 웃기자고만 한 이야기만은 아닌 듯 보였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족도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절친했던 친구도 어떤 날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죽을 때 한 명의 친구라도 찾아와 준다면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많은 사람과 관계를 가져도 죽을 때 한 명도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적은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마음은 하나이니 나눌 친구를 적게 두면 그만큼 마음을 많이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까운 분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2천 개를 넘는다. 휴대폰을 바꾸면 전화번호 옮겨주는 작업을 해주는데, 할 때마다 많아진다. 언젠가 한 번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정리하는 듯했지만 여전하다. 몇 명의 친구와 깊이 사귀는 그분의 성향으로 볼 때 의아한 일이지만 업무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그에 반해 나는 전화번호를 정기적으로 정리한다. 그러다 몽땅 날려 낭패를 본 적은 있지만, 지나고 보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회사를 다녔던 동료도 몇 년 연락하지 않으면 남이다. 지운다. 동창이어도 연락 안 한 지 몇 년이 지나면 남이다. 지운다.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전화번호에 있는 ‘아는 사람’과 ‘없는 남’으로 나눠진다. 남인 사람과는 관계를 갖지 않는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굳이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애초에 저장조차 하지 않는다.


단체 메신저 알람은 무조건 꺼 둔다. 일단 단체 메신저를 좋아하지 않는다. 중요한 일이면 전화할 것이고, 봐주길 바란다면 1대 1로 이야기하면 된다. 단체 메신저에서 대답하지 않으면 ‘예의도 없이 대답도 안 하냐’며 핀잔 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메신저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읽어보면 내용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 에서 말했다.

기다리는 답이 오기를 기다리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다리는 답을 기다리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자 오래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1’이 없어질 길 기다리며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급한 일은 전화하면 된다.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자신도 의미 있는 일과 사람에게 신경 쓰면 된다. 나 역시 메신저 창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상대도 그럴 권리가 있다.


프로젝트에서 100명이 포함된 단체 메신저를 한 적 있다. 밤낮으로 오는 메시지가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라고 다들 힘들어했다. 공지를 읽으려면 최소한 2~30명의 대화(의미는 없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글)를 거쳐 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결국 용기를 가진 한 사람의 건의로 단체 공지는 메일로 발송하게 되면서 메신저는 이전보다 조용해졌다. 이후 가장 중요하게 제공된 기능은 ‘메신저에서 나가는 사람 = 프로젝트를 철수하는 사람’의 암묵적인 인사였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일본의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말이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몇 개월만에 연락이 왔다. “다시 사귀고 싶다”는 말에 들떠 덜컥 그러자 해놓고 가까이 사는 친구를 더 자주 만났다. 그날도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와 짜장면을 시켜 놓고 있는데 집 근처라며 남자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가 있으니 잠깐 얼굴만 보고 들어오겠다 말하며 나갔다. 한데 곧 도착할 짜장면이 부를까 걱정이 되어 남자 친구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렘’이 없었던 것이다. 짜장면보다 못한 남자 친구와는 계속 사귈 수 없어 ‘다시 사귀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신 분석학자 칼 융은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 쓰기보다 차라리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위하라”라고 말한다.


미니멀 라이프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 버리기를 실천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할 수는 없다. 의미가 있다면 신경 쓰고 의미가 없다면 단톡 방 메시지처럼 무시하면 된다. 의미 없는 관계 때문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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