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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greens Jan 28. 2017

1. 살아있는 글

허균



무엇이 좋은 글이고, 좋은 문장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던 요즘이었다. 

음식에 따라 그릇도 다를테니 글의 모양새 자체를 고민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나에겐 어떤 글이 인상적이었던가, 나는 어떤 글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던가,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민하며 여러 글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허균의 글을 보면 모든 문장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모든 거짓을 들춰내는 혁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모두가 당연하다 생각하고 으레 그러려니 넘기는 것을 꼭 들춰내고야만다. 비록 설정은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상상을 배경으로한 글 '비방꾼의 대화') 그의 비판의식만은 거리낌이 없다. 문장은 간결하고 표현도 담백하지만 허균의 날 것을 담아내는 데에는 이만한 그릇도 없으리라.


물론 직설적인 표현이 언제나 모두에게 좋은 글은 아닐테다. 오늘날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 댓글도 날카롭긴 그지없고, 예리한 통찰력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감탄하기도 하니 누군가에게는 허균의 단순명료한 글이 평범하게 여겨질지도, 혹 누군가에게는 예의 없거나 재수없는 글이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허균이 누구인가.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다. 시대의 고통을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서얼 출신들과 어울렸으며, 문과에 장원급제한 수제였으나 파직을 거듭했다.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다한 그의 삶이 있기에 간결하고 날 선 문장에 힘이 있다. 그가 살아낸 무게가 모든 표현과 글에 서려있다. 단어와 문장, 글 모두가 살아소리치는 듯하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은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여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오직 비천함과 가난, 곤궁함과 궁핍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살고 싶고, 하는 일마다 반드시 이 세상과 배치되고자 합니다. 

허균 - 통곡의집


권세나 이익을 위해 사귄 벗은 때가 되면 반드시 우정이 변질되지만, 제 우정은 변치 않아 바위인 듯 쇠인 듯 단단하지요 ...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미워하고, 많은 사람이 존중하는 것은 더럽게 여깁니다. 남들은 그런 저를 두고 나쁜 풍조에 물들었다고 비난하지만, 저는 좋아서 껄껄 웃지요. 

허균 - 비방꾼의 대화



참조
허균의 글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 안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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