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생에서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언제였더라. 작년 여름에서 가을 넘어가던 때였나? 아침부터 먹구름으로 시커먼 날이었다. 그런 날은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싶을 만큼 나가기 싫다. 빗속에서 즐거울 일이 뭐가 있겠나. 마침 약속도 없겠다 당연히 종일 집에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왜 그리 마음이 가볍게 동했을까. 오전 10시쯤, ”오늘 서촌에 박노수 미술관 갈 건데 같이 갈래요?”하고 J가 보낸 문자에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나갈 준비하는 내가 신기할 정도. 나는 “그럼 같이 점심 먹고 청운도서관도 가요-” 라며 계획을 더했다.
우린 만나자마자 점심으로 뇨끼와 와인을 먹었는데, 아- 그 살굿빛 와인 이름도 기억난다. 블랑드누아. 와인이 반 이상 줄었을 즈음 비가 내려 창밖 풍경이 소란해졌다. “비 오니까 분위기 좋네요.” 그녀가 말했고 “우리가 안에서 비를 보고만 있어서 좋은 거죠.”라고 내가 말했다. 비는 나의 평온을 방해하지 않을 때 좋은 것. 하늘은 어둡고 취기는 살짝 올랐는데 시간은 여전히 오후 2시. 한낮에도 우중충해서 아쉽다고 생각하던 찰나, J는 저녁의 기분을 한낮에 느낄 수 있어 시간을 벌었다며 좋아했다.
식당을 나서자마자 우리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물 폭탄’ 같은 비가 쏟아졌다. 태풍을 동반한 폭우. 비가 오는 것을 예상하고 나왔거늘 이건 너무 심하잖아! 사방에서 부는 비바람에 우산을 꽉 붙든 손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우산을 방패 삼아 웅크리며 한 발짝씩 나아갔다. 신발이 젖을까 까치발로 걸었다가, 웅덩이를 피해 게다리로 걷다가. 만나는 골목골목마다 콸콸 흐르는 물줄기 공격에 묘기를 부리듯 겅중겅중 피하는 꼴이란. 조금 전까지 포근한 실내에서 와인을 즐겼는데 그 사이 폭우 속이라니. 그렇게 미술관까지 간신히 도착했는데, 세상에! 내부 수리로 일주일간 휴관. 허탈한 마음으로 정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다 미처 보지 못한 웅덩이에 풍덩, 발까지 빠뜨리고 말았다. 순간 터진 건 놀랍게도 웃음.
“아예 젖어버리니까 더 편한데요?” 우리는 웅덩이에 발을 첨벙첨벙 담그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었다. 발이 젖기 전까진 우스꽝스럽고 어정쩡하게 걸어야 했는데 발이 완전히 젖고 나니까 오히려 힘차게 걸을 수 있었다. 그때 콰쾅!!!! 천둥 소리가 울리자 그녀는 “어머! 심쿵이야!”하고 감탄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놀랄 새도 없이 또 깔깔 웃었다. 물벼락 맞으며 힘들게 온 미술관은 문을 닫고 신발도 옷도 젖은 데다 비는 그칠 기미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을까? 배를 움켜쥐도록 신나게 웃어본 건 얼마 만인가. 비에 흠뻑 젖었던 적은 또 언제였나.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스무 살, 대학 체육대회 날이다. 운동이 싫어서 대충 만만해 보이는 치어리더를 선택했던 게 화근이었다. 모든 학과생이 둥글게 자리 잡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춤을 춰야 했다. 뽑기 실수로 우린 마지막 순서였고 이미 앞서서 방송연예과와 무용과에서 예술에 가까운 춤을 보여줬으므로 디자인과인 우리의 춤은 몸부림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게다가 관중처럼 떠 있던 먹구름은 우리 순서가 되자 비웃듯 폭우를 쏟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주눅이 든 우리는 망했다고 한탄했다. 꿈이라고 말해 제발.
야속하게도 음악은 시작되고, 창피함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움직였다. 발목까지 덮는 우비로 인해 몸동작이 둔한 데다 진흙탕 위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느라 낙지마냥 흐느적흐느적 우스운 꼴이었다. 아.. 사라지고 싶다. 그러다 옆에 함께 흐느적대고 있는 낙지.. 아니,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비에 젖어 흘러내리는 눈화장, 젖은 비닐봉지가 진흙탕 위를 허우적대고 있더라. 친구가 본 나도 마찬가지겠지. 동시에 둘이서 웃음이 빵 터졌다. 빵 터진 웃음은 함께 춤추던 친구들에게도 전염되어 다 같이 깔깔대면서 춤을 췄다. (정신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움츠리던 어깨와 허리가 펴지고, 푹 숙였던 고개를 들며 시선은 정면을 향하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정확히 인지되며 피할 수 없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한 춤은 오늘이 아니면 다시 출 일이 없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빗속에서 함께 춤을 출 수 있을까? 이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생의 직감이 스치자 두려움이 씻겨 내려갔다. 소심하게 움직이던 다리를 쭉쭉 뻗고, 웅덩이 안에서 점프를 하며 여기저기 진흙을 튀겨냈다. 바닥에 엎드려 굴렀다가 높이 튀어 오르는 과정에서 우비는 벗겨지거나 찢어지며 동작을 더 돋보이게 했다. 춤을 추다 마주치는 친구들의 눈은 반짝거렸다. 눈빛만으로 같은 마음이 수신되었다.
‘너무 좋다! 지금!’
차오르는 충만함이 입꼬리를 올리는 동시에 마음 어딘가를 뜨겁게 만들었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우릴 춤추게 하는 것 같았다. 춤을 잘 추고 못 추고, 남의 시선은 어떤지 중요하지 않았다. 꼴은 마구 더럽혀지는데 어떤 응어리가 해소되며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이 되어 기억 속 영상으로 남았다.
골목을 따라 J와 들어간 찻집은 고요하고 정적인 공간이었다. 원피스 자락의 물을 좀 짜내고 양해를 구한 뒤 양말을 벗고 슬리퍼를 신었다. ‘평온’ 이란 단어를 공간으로 빚은 듯한 이곳은 바깥의 소란과 상관없어 보였다. 향기와 음악이 같은 결로 부드럽게 흐르고 흙으로 빚어진 단아한 찻잔이 전시되어 있었다. 차를 내어주시던 주인분의 나긋한 목소리에 우리도 소곤소곤 말하게 되었다. 방금까지 천둥소리에 호탕하게 웃던 우리는 또 어디로 가고, 물에 젖은 머리가 마치 샤워 후의 촉촉함처럼 차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신 차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차의 온기가 몸의 마디마디를 훑어 느슨하게 풀리던 기분이 여전히 떠오른다. “여기 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비 맞고 와서 더 좋은 것 같아요.”라고 J가 말하니 마치 이 아늑함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 비를 맞았던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 해도 좋았다. 그녀에겐 그럴만하다고 느껴지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그때 우리가 펼친 책은 60년대 초판본으로 구운 향이 짙게 났다. 아무 데나 펼친 페이지의 문장마저 이 순간의 우리에게 도착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보였다.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전혜린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내가 가는 대로 생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운명을 바꾸는 도전, 끊임없이 밀고 나가는 열정을 인생의 가치에 높은 순위에 두었다. 분명히 내 힘으로 형성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계획이나 열정으로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생의 흐름이 느껴진다. 작정하고 내리는 폭우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나. 기껏 준비해봤자 연약한 우산일 뿐. 계획은 세우는 순간에만 가장 힘이 세다. 생이 형성한 우연 앞에 일회용 우산처럼 쉽게 폐기되고 만다.
지금도 ‘코로나’라는 폭우에 부러지는 '계획'이란 우산. 그 뒤에 웅크려 생각한다. 어차피 그 안에 있어야 한다면 우선으로 둬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폭우 속에서 우릴 웃게 했던 건 무엇일까.
예기치 못하게 던져지는 비운을 재미로 바꾸는 재주,
우연이 끌고 가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그런 것들이 아닌가.
혼자서는 어렵다. 문 닫은 미술관 앞에서 흠뻑 젖은 채로 천둥소리를 들을 때, 진흙탕 위에서 춤을 춰야 하는 순간에 '혼자'였다면 결코 웃을 수 없었을 거다. 어려운 마음가짐을 쉽게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이 가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겠다. 생이 형성하는 우연 속에서 함께 재미를 찾아갈, 사람.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_ 비비언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