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빈둥거릴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전래 동화에서 게으름뱅이 이야기가 나온다. ‘줄줄이 꿴 호랑이’나 ‘보리밥 장군’ 같은 이야기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축내면서 뒹굴 거리는 주인공이 나온다.
줄줄이 꿴 호랑이는 새로 쓴 옛이야기이다. 게으름뱅이에 관한 전래 동화의 화소만 빌려 저자인 권문희가 새로 쓴 것이다. 주인공은 어찌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똥 싸고, 윗목에서 밥 먹고만 종일 반복할 정도다. 줄줄이 꿴 호랑이를 읽은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그림에 나타나는 호랑이의 똥구멍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다.
줄줄이 꿴 호랑이에는 어찌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나온다. 이런 게으름뱅이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다른 집 애들은 땅도 파고 나무도 해 오는데, 너는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만 싸고 있느냐?”라고 다그치자 게으름뱅이의 창의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줄줄이 꿴 호랑이 권문희 글 그림, 사계절
세계적인 혁신 기업 중의 하나인 3M에는 ‘15% 룰’이 있다고 한다. 이는 업무 시간의 15%를 딴 짓을 하며 보내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책을 읽어도 좋고, 쇼핑을 해도 좋고, 심지어는 잠을 자도 된다고 한다.
바로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서 ‘빈둥거림’을 허용하는 것이다. 뛰어난 그림책 작가인 존 버닝햄도 자신의 유년기와 관련해서 ‘많은 시간을 미술실에서 빈둥거리면서 보냈다.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바탕이다.’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세워 놓은 계획표에 따라 시간을 쪼개어 다니다 보면 스스로 행동할 수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러다 보면 뭔가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지 않는다.
중학생인 아들아이가 수학여행을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어떤 친구가 수학여행을 가서 기념품을 뭘 사야 할지 몰라 자기가 사는 걸 모두 따라 샀다고 했다. 미국에선 이런 아동을 'copy cat'이라고 한다. 이런 ‘copy cat'에게서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창의적인 아동으로 키우려면 아동에게 현재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부모와 함께 상의하여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생각하여 보도록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녀 혼자서 빈둥거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공상을 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뭔가를 늘 계획하고, 약속이나 해야 할 일로 꽉 찬 수첩이나 계획표를 선호하는 부모들이 자녀의 빈둥거림을 참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거스르는 일이므로 절대 쉽지 않다. 나는 아들 둘과 엄마 아빠의 시간표가 30분 단위로 계획되어 색색의 형광펜으로 관리되는 표가 냉장고에 붙어 있는 집을 알고 있다. 이렇게 사는 삶의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이런 꽉 짜인 시간표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자녀가 부모와 반대의 성향이라면 부모 자녀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꽉 찬 시간표를 선호하는 부모들은 자녀의 시간표를 관리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계획표를 변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녀에게도 “시간이 없는데 왜 숙제를 안 하고 있니?”라고 말하기보다는 “숙제는 언제 하려고 하니?”라고 물어보는 것이 더 좋다. 자녀가 설사 그 시간에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자녀를 내버려 두는 인내가 필요하다. 설사 자녀가 숙제를 못 해가서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불이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녀의 일이므로 자녀 혼자서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중학생 엄마는 아들이 자는 데 숙제가 있다는 반장의 문자 메시지를 발견했다. 아들이 숙제를 꼭 해 가야 수행 평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엄마는 숙제를 초벌로 미리 해 놓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아들을 깨웠다. 아들은 해야 할 숙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숙제를 엄마가 미리 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 해가도 된다고 짜증을 부렸다. 엄마가 아들을 달래고 달래서 엄마가 미리 써 놓은 것을 다시 옮겨 적어 학교에 가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얻는 것은 몇 점 안 되는 수행 평가 점수이고 잃는 것은 자녀의 독립심과 창의성이다.
자녀가 숙제를 안 해가거나 시험공부를 안 해서 불이익을 받더라도 자녀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자녀가 명백하게 나쁜 길로 간다고 판단될 때에는 강력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에는 자녀 스스로 행동을 계획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빈둥거릴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 글은 김영주의 창의적으로 키우는 전래동화 새롭게 읽기(2010, 대교출판)의 일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