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많은 언론사가 이런 헤드라인을 걸었더군요. ‘혐오가 이겼다.’ SNS 비공개 글에서나 끼적일 만한 저열한 주장들이 광장에 울려 퍼지고, 심지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낀 요즘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치 드라마를 소개하는 게 맞나 고민도 됐어요. 짜증 나는 세상, 스크린 안에서만은 편하게 즐거워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잖아요? 그런데요. ‘세상은 망했어’를 읊조리며 절망 속에 푹 담겨 있을 때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조금 위로가 되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함께 나눠보고 싶어요.
이상 성욕 이슈로 공석이 된 문체부 장관 자리.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이자 전 보수 야당 국회의원 이정은이 어쩌다 이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녀에게는 거수기 노릇만 하던 초임 의원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이 있습니다. ‘체수처(문화체육예술계 범죄 전담 수사처)’를 설립해 폭력과 비리로 피해 입은 체육인, 예술인들을 돕는 것이죠. 하지만 어디 정치가 좋은 뜻만으로 되나요. 이목과 지지를 한꺼번에 끌어낼 수 있는 ‘그림’이 필요하죠. 그림을 만들려면 라인도 적당히 타야 하고, 가끔은 적과 손도 잡아야 하며, 듣는 사람의 마음이 웅장해지는 언변도 요구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리스크도 없어야 한 대요. 가능합니까, 휴먼?
무엇보다 정치판과 그 주변엔 자기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 득실댑니다. 극우 유튜브에 출연해 가짜 뉴스를 정성스럽게 퍼다 나르는 기자, 본인의 촌철살인에 자아도취 돼 있는 진보 논객, 음모론을 퍼뜨리며 집회를 주관하는 목사 등등. 지독한 하이퍼 리얼리즘이죠? 이들에게 정치 초짜 이정은은 찜 쪄 먹은 후에 뼈까지 발라 자신의 마이크에 걸어놓기 너무 좋은 제물입니다.
이들이 각자의 욕심과 명분으로 선택한 결과들이 얽히고설켜 난장으로 치닫는 모습은, 인류학자가 울고 갈 정도로 현실적인 동시에 광대뼈가 아플 정도로 웃깁니다. 더불어, 그림의 뒤편에서 나름의 직업윤리로 뛰어 다니는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직업 공무원)’들의 수습-탄식의 무한 루프까지 생생하게 펼쳐지죠.
보다 보면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 쓰리 샷 넣은 블랙 코미디의 결론은 정치 무용론이 아닙니다. 난세를 구할 영웅의 탄생 설화도 아닙니다. 얼떨결에 문체부 장관 자리에 오른 이정은이란 사람이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깨달아가며, 비로소 야망을 구체화한 한 문장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사격 금메달리스트인 그녀가 타깃을 조준하듯 청와대를 쳐다본 순간, 짜릿했던 마음에 이제는 일종의 책임감도 함께 깃듭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정말 청와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어제가 아닌 내일로 가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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