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 vs 하이에나
by길준Jun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는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1985년 조용필 8집에 수록된 곡이다. 작곡은 김희갑 작사는 양인자(둘은 부부)에 의해서 쓰인 곡이다. 당시엔 노래에 이렇게 긴 내레이션이 들어간 노래가 없었고 또한 가사에 담긴 철학적 이미지?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 신선함을 준 노래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술 취한 꼰대들이 노래방에서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며 똥폼이나 잡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어 많은 젊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노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래방 기계의 템포에 맞추어 그 노래를 제대로 부른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역시나 이 노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가라오케가 아니라 암송하는 서사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사시 즉 이 노래는 멜로디보다는 노랫말에 집중이 가는 노래다. 그 노랫말을 알려면 작사가 인 양인자 시인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녀는 1945년 함경북도 라진에서 출생했고, 평안남도 평양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1948년에 서울로 이주하였다. 가장 귀여움 받을 유치원 시기를 가장 가난하고 비참했던 한국전쟁과 함께 했다. 1967년부터 본격적인 문학가로 활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국한의 ‘타타타’,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작사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 소설을 비롯하여 그녀의 여러 작품이 있지만 단순히 알려진 상기 노랫말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세대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비관적인 세계관 또는 철학적 사색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곡가 김희갑의 인터뷰에 따르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고 이는 부인 양인자의 일기장에 적혀있던 그녀의 인생관에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한 남자의 야망과 고독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표범에 비유했다고 하는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모티브를 얻었지 않을까 싶다. 노랫말을 살펴보면 한 남자가 인생을 살아오며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새로운 인생을 다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살아생전에는 이루지 못했지만 죽은 후에야 명성을 얻었던 고흐를 언급하듯 본인도 아직 이룬 것이 없지만 본인이 보낸 청춘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고흐처럼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하며 지나온 청춘에 건배를 제의한다. 그러면서도 바람처럼 왔다만 갈 수 없지 않냐며 또 다른 인생을 계획한다. 모든 것을 걸었기에 사랑이 아름다운 것처럼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자 한다.
이후 1991년에 발표된 김국한 ‘타타타’의 노랫말을 보면 그 사이 생각이 좀 바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국한의 ‘타타타’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최민수, 하희라 주연의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노래 또한 김희갑이 작곡하고 양인자가 작사한 곡이다. 조용필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지만 노래 뒷부분에 나오는 웃음소리 때문에 조용필이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하튼 타타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의미하며 한자로는 진여(眞如)로 번역된다고 하는데 그 노랫말을 살펴보면 과거 킬리만자로 정상을 향해 오르는 표범의 모습은 없어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고 빈 손으로 와서 옷 한 벌을 건졌으면 수지맞은 장사가 아니냐며 현실을 관조하며 인생을 새롭게 바라본다. 마치 야생성을 충만한 표범에서 인간과 함께 적응하며 살아가는 부뚜막의 고양이로 변한 것 같다. 이 또한 가치 있는 삶이리라.
여하튼 그럼 왜 하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인가? 장소로 치면 백두산의 호랑이도 있고, 높이로 치면 히말라야의 표범도 있지 않은가? 이를 이해하려면 ‘킬리만자로’와 ‘표범’을 알아야 할 것 같다. 1) 먼저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휴화산이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이미지의 아프리카의 이미지와 달리 킬리만자로의 정상에는 365일 눈이 덮여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과 용기의 상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7 대륙의 정상 중 가장 오르기 쉬운 봉오리이며 아주 천천히 걷는 길로 되어 있다고 한다. 즉 뜨거운 바닥에서 시작해서 올라야 하는 높은 봉우리이지만 사시사철 빛나는 은빛 정상(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번적이는 산을 뜻함)을 향해 꾸준히 정진한다면 오르지 못할 정상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와 강수량의 부족으로 기존 빙하의 80%가 사라졌다고 하니 시간이 영원히 우리의 편은 아닌 것 같다. 2) 다음 '표범', 사실 표범은 고양잇과의 동물로 유사한 동물로 재규어, 치타, 표범, 퓨마 등이 있고, 인도차이나, 인도, 북중국, 스리랑카, 자바, 아라비아, 아프리카, 페르시아 등 다양한 곳에서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가사에서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하이에나 입장에선 꾀나 억울한 일이다. 사실 우리에게 하이에나의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것은 이 노랫말보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라이온 킹’의 영향이 크다. 하이에나는 남이 사냥한 고기를 빼앗고 썩은 고기를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사냥을 잘하고 더구나 협동심을 발휘하여 본인 보다 훨씬 더 큰 동물을 사냥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표범은 보통 단독생활을 하며 낮에는 그늘에서 쉬고 밤이 되면 사냥한다. 하지만 표범은 몰래 다가가서 사냥하기보다는 정면 승부로 잽싸게 덮쳐서 사냥한다고 알려져 있다.
(어찌 됐건 2001년 조용필은 킬리만자로를 알린 공로로 탄자니아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정리하면 시인 양인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통하여 킬리만자로와 같은 높은 이상을 설정하고,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뜨거운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꾸준히 정진하면 결코 오르지 못할 정상이 아님을 오히려 쉽게 오를 수 있는 목표임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오름에 있어서는 하이에나보다는 표범처럼 단독으로 정면 승부하며 빠르게 정상을 오르는 방법을 추천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현대 사회는 혼자 목표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거 양인자가 시를 쓸 무렵에는 효율성만이 강조되는 경제 개발 시기여서 표범과 같은 방법을 추천했는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는 다양성의 시대로 함께 가야 하는 시기이다. 오히려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돌아보며 남이 버려둔 썩은 고기도 처리할 줄 알고 무리를 지어 함께 목표를 이루어 가는 모습이 현대 사회의 이상을 이루는 데 조금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덧.
2020년 6월 20일에 <빈센트 반 고흐 서거 130주년> 빈센트를 위하여-킬리만자로의 표범 콘서트
참고문헌
1. 킬리만자로 온난화(기후변화 현장을 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0262379
2. 킬리만자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236&cid=59046&categoryId=59046
3. 나무위키 킬리만자로의 표범
https://namu.wiki/w/%ED%82%AC%EB%A6%AC%EB%A7%8C%EC%9E%90%EB%A1%9C%EC%9D%98%20%ED%91%9C%EB%B2%94
4. 양인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32542&cid=41708&categoryId=41737
5. 표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58780&cid=40942&categoryId=32624
6. 하이에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0690&cid=40942&categoryId=32624
7. 나무위키 타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