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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피 Aug 27. 2023

읽기보다 쓰기가 어려운 한글 맞춤법

음소적 원리와 형태음소적 원리

  한글 맞춤법이 어려운 이유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제1장 제1항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 한 문장은 한글 맞춤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동시에 한글 맞춤법이 어려운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일단 저게 대체 무슨 말인지 한국어 어문 규범의 해설을 함께 읽어 보자.



  즉 말을 글로 받아 적을 때에는 실제 발음이 나는 대로 적되, 소리 나는 대로만 적으면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있으므로 그럴 때에는 형태소의 본모양을 밝혀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원칙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형태소의 본모양을 밝혀 적는 것은 사실 소리를 곧이곧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만 생각하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훨씬 쉽다. 그 단어의 기본형이라든가 형태소니 뭐니 하는 개념이 무엇인지는 알 필요도 없고 그저 발음대로만 적으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발음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단 제쳐 두자.) 그렇게 썼을 때의 치명적인 단점은 읽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맞춤법 해설에서 언급된 것처럼, '꽃'이라는 단어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기되므로 글만 보고서는 그것이 '꽃'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 예를 들어 '이것은 부리야.'라는 문장을 본다면 '이것'이 '부리'라는 것인지 '불'이라는 것인지 추가적인 정보가 없으면 알 수 없다.


  형태소의 본모양을 밝혀 적는 방법의 장단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법의 장단점과 정확히 정반대이다. 읽을 때에는 어떤 단어인지 그 의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쓸 때에는 맞는 표기법을 알아야 하므로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때로는 실제 발음과 조금 먼 표기법일지라도 그것이 맞춤법으로 약속되었기 때문에 익히고 따라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짜장면'이라고 발음하는 음식을 반드시 '자장면'이라 표기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을 것인가, 형태소를 밝혀 적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유서 깊은(!) 논쟁이다.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은 '음소적 원리'에 따른 표기법, 형태소를 밝혀 적는 것은 '형태음소적 원리'에 따는 표기법이라고 한다.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 세종대왕 본인은 형태음소적 원리를 지지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작 15세기의 문헌들은 음소적 원리에 따른 표기법으로 적힌 것이 많다. 그러나 이 표기법은 세기를 건너오면서 한결같이 유지되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르며 언어도 변화하였고 그에 따라 15세기의 표기 규범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때로는 심지어 한 시기의 문헌에서 여러 표기법이 공존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규범으로 정한 현대 국어 맞춤법은 형태음소적 원리를 따르는 표기법이다. 이러한 표기법은 개화기 이후의 주시경을 비롯한 한글학회 학자들의 영향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결국 현재의 한글 맞춤법도 필연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꽃'을 반드시 '꽃'으로 그 형태를 밝혀 적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여러 학자들이 학문적으로든 실용적으로든 여러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자연법칙처럼 거스를 수 없이 당연한 결정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튼 우리는 형태소를 밝혀 적는 표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도 하고, '꽃'의 예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쉽기 때문에 이것만 봐서는 제1장 제1항이 왜 맞춤법이 어려운 이유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언어는 늘 변한다는 데에 있다. 사람들의 발음도, 사람들이 기본형으로 여기는 형태소도('기저형'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15세기의 표기 규범이 그러하였듯이, 현대 국어 맞춤법 역시 이러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의 예를 살펴보자. '몇 년', '몇 월', '몇 달', '몇 주'는 각각 발음이 [면년], [며둴], [멷딸], [멷쭈]로 나지만 '몇'을 '몇'의 형태 그대로 살려 적는다. 그런데 '며칠'만 '몇 일'이 아닌 '며칠'로 표기한다. 그 이유는 한국어의 음운 현상으로는 '몇 일'이 [며칠]로 발음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다른 여러 단어들을 살펴보았을 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몇 일'의 발음은 [면닐] 또는 [며딜]이 되어야지, [며칠]이 될 수는 없다. (자세한 이유까지 다루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생략한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 '몇 월', '몇 달', '몇 주'와 달리 '몇 일'은 사용되지 못하고 대신 '며칠'이라는 표기가 선택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규칙이 항상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유에서라면 '맛있다', '멋있다'의 규범 표기는 '마싰다', '머싰다'가 되어야 한다. 한국어의 음운 현상을 고려하면 '맛있다', '멋있다'는 각각 [만닏따], [먼닏따] 또는 [마딛따], [머딛따]로 발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마싣따], [머싣따]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며칠'과 마찬가지로 이 말들도 '마싰다', '머싰다'로 표기를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맛있다', '멋있다'가 [마싣따], [머싣따]로 발음되는 것을 예외로 규정하였다.


  이번에는 '닭'을 살펴보자. '닭'을 '닭'이라고 적는 이상 '닭이', '닭을'은 각각 [달기], [달글]로 발음되어야 하고 실제로 아직도 이것이 표준 발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다기], [다글]로 발음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사실 내 체감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렇게 발음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표준 발음대로 [달기], [달글]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찜닭이', '찜닭을'은 [찜따기], [찜따글]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표준 발음을 따른다면 [찜딸기], [찜딸글]이 맞을 텐데도 말이다. 이와 관련해 '닭'은 이제 사실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닥'에 가깝게 재구조화된 것이 아니냐 하는 논의가 있다. 시간이 더 흘러 모든 사람이 '닭'을 [닥]으로만 발음하게 된다면 한글 맞춤법에서도 '닥'을 맞는 표기로 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나조차도 '닭'을 늘 [닥]이라고 발음하지만 이미 '닭'이라는 표기법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누군가 "오늘부터는 '닥'이라고 써!"라고 한다면 어색해하며 '굳이 그래야 하나?' 하고 생각할 것 같다. 15세기와 달리 대부분의 언중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지금, 그 언중들이 '닭'이라는 표기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것을 '닥'으로 바꾸는 일은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단어를 만드는 힘인 '생산성'을 잃었다는 이유 때문에 소리 나는 대로 적게 된 단어들도 있다. '마개', '지붕', '무덤'이 대표적인 예이다. 원래 '마개'는 동사 '막-'과 접사 '-애'가, '지붕'은 명사 '집'과 접사 '-웅'이, '무덤'은 동사 '묻-'과 접사 '-엄'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었다. 접사는 반드시 다른 말에 붙어서만 사용되는 의존적인 단위로, 독립적인 단위인 어근에 붙어 새로운 말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과거 '-애', '-웅', '-엄'이 이런 접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여러 말을 만들어냈을 당시라면 자연히 '막애', '집웅', '묻엄'이 규범 표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이 정해질 당시의 한국어에서는 이들은 이미 접사로서의 생산성을 잃어 극히 일부의 말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었고, 따라서 이들이 사용된 새로운 단어가 탄생할 가능성은 없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원래의 형태소를 밝혀서 '막애', '집웅', '묻엄'으로 적는 대신 소리 나는 대로 '마개', '지붕', '무덤'으로 적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그 자체로 이미 모순되는 면이 있는 원칙인 데다,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소리대로 적는 경우와 어법에 맞도록 적는 경우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혹시나 오해가 생길까 하여 밝히는데, 이 글의 목적은 한글 맞춤법의 제1장 제1항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조사와 접사가 존재하는 교착어인 한국어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최대한 합리적이면서도 편리한 방향으로 원칙이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사와 접사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려고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어 원어민이라 해도 머릿속 직관만으로 그 원칙을 완벽히 따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니 맞춤법을 틀리지 않겠다는 다짐은 곧 평생 공부하겠다는 각오와 다를 바가 없다. 더 나아가 그 공부가 맞춤법과 현실 언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닿는다면(현실 언어를 규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고 교정할지 아니면 맞춤법을 수정할지)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언어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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