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 아직도 매 새학기마다 짝꿍이 누가 될지 두근두근 했던 기억도,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도, 엄마가 새벽에 싸는 김밥이 맛있어서 소풍날 만큼은 일찍 일어나 눈비비면서 엄마 옆에서 김밥을 주워먹던 기억도, 또 친구들이 나를 잠깐 따돌려서 엄마가 다들 친하게 지내라하며 그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던 기억도, 다 또렷하게 남아있다.
근데 벌써 서른이 넘었다니. 벌써 서른이 넘어 결혼도 하고, 이제는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핀잔을 먹는 그런 나이가 되버리다니. 내 마음만큼은 아직도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초등학생 시절과 다른 게 없는데. 여전히 그 시절 학교 앞에서 먹던 매운 쥐포랑, 꾀돌이를 그리워 하는 나이인데.
그런 초등학교를 들어가던 8살 꼬마인 나에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그 시절 구경도 하기 힘들다던 486 컴퓨터를 사주셨다. 그리고 깨끗한 양피지에 '아는 것이 힘' 이라는 한자어를 쓰셔서 내게 주셨다. 그 문구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시기까지 내 책상 유리덮개 아래 고이고이 끼어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그렇게 사회인이 되었고, 이제는 외국에 나와 석사를 하고 박사를 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그 말씀 덕에 여기까지 왔다. 인생이 참 짧다. 그 시절 동안 나를 응원해주시던 작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언제고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시던, 그 어린시절의 나를 당신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나의 든든한 후원자 한 분이 그 사이에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다시는 그 분을 뵐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이 너무 짧다.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 언젠가 어느 순간 어떤 일에 대해 후회하는 때가 있을 것도 같다. 그 짧은 인생을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가도록 내 앞길만 보고 살고 있으니, 나는 언젠가 후회할 지도 모른다.
근데 이 짧은 인생을 다 걸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것도 좋다. 그럼 또 이 짧은 인생을 걸고 뭔가를 해나가고도 싶다. 이런 양가감정이 공존하니 나는 한 편으로는 내 꿈을 쫓고 싶기도, 한 편으로는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그렇게 산다. 그런 양가감정을 품으며 산다.
짧은 인생이라 슬프다. 모든 이들에게 인생이 길면, 그리고 그만큼 젊음이 길면 얼마나 좋을까.
이 짧은 인생이라 우리가 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으며, 알면서도 포기하고 지나가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또 포기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