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입학을 앞두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분께 콜드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분이 소개시켜준 책이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이었는데, 사실 그 때는 입학도 전이라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박사 3년차가 되어 움베르토 에코의 사설들을 살펴보니, 그가 얼마나 탁월한 학자이자 작가인지 새롭게 보인다. 사회과학은 첫째도 글쓰기, 둘째도 글쓰기, 셋째도 글쓰기이다. 좋은 연구 아이디어와 데이터조차도 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넘어설 수 없다. 사회과학 뿐만이 아니다. 한 물리학 박사가 쓴 논문의 글 수준이 기존 물리학 논문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유려하여 유명해진 케이스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물리학 이전에 문학박사를 지낸 학자였다는 소문도 있다.
글보다는 말로써 자기PR을 잘하는 사람들이 더 각광을 받는 시대이다. 글쓰기 역량보다는 말하기 역량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한지라 글쓰기 역량에 노력을 쏟는 이들도,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탓할 것은 없다. 논문을 찾아 읽는 것보단 유명 유튜버가 그 논문을 요약해 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더 편한 게 사실이고, 더 편한 것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니까.
가치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하더라도 글을 잘 쓰는 건 여전히 탐나는 역량이다. 한번이라도 글을 써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 글쓰기라는 것이 실은 수많은 트레이닝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움베르토 에코의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소개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진짜 웃기다.
1. 두운(allitterazione)을 피하라. 비록 올빼미(allocco)들이 유혹(allettare)할지라도.
2. 접속사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필요할 때는 쓰도록 한다.
3. 기성품 문장들을 피하라. 그건 <다시 데운 수프>와 같다.
4.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자신을 살찌우게 하니까.
5. 상업적 기호 & 약자 etc. 를 사용하지 마라.
6. 괄호는 (꼭 필요해 보일 때도)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7. 말없음표들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가능한 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9. 절대로 일반화하지 마라.
10. 외국어는 절대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11. 인용을 줄여라. 에머슨이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나는 인용을 증오한다. 단지 네가 아는 것만 말해라>.
12. 비유는 기성품 문장과 같다.
13. 과잉 설명을 하지 마라.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마라. 반복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 (과잉이라는 말은 독자가 이미 이해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다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단지 똥 같은 놈들이나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
15.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16. 단 하나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마라. 없애라.
17.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뱀의 비늘 위에 돋은 깃털과 같다.
18.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19. 콜론과 세미콜론을 구별하라: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20. 만약 적절한 이탈리아어 표현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사투리 표현에 의존하지 마라. <페소 엘 타콘 델부소. (베네치아 사투리)>
21. 어울리지 않는 은유를 사용하지 마라. 비록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마치 탈선한 백조 같다.
22. 정말로 수사학적 질문이 필요한가?
23. 간략하게 하라. 긴 문장을 피하고, 가능한 한 적은 숫자의 단어 안에다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도록 노력하고 - 또는 삽입구를 넣지 마라. 그것은 불가피하게 산만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니까 - 그리하여 담론이 분명히 매스 미디어의 권력에 지배되는 우리 시대의 비극들 중 하나를 이루는 (특히 불필요하거나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 자세한 정보들로 쓸모없게 채워졌을 경우) 정보의 오염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라.
24. 과장하지 마라! 감탄 부호를 적게 써라!
25. 야만적 표현을 좋아하는 최악의 <팬들>이라도 외국어를 복수로 만들지 않는다.
26. 외국어 이름을 정확하게 써라. 가령 보둘레르, 루즈웰트, 니채 등처럼.
27. 언급하는 저자나 등장인물들을 완곡하게 표현하지 말고 직접 지명하도록 하라. 19세기 롬바르디아 출신의 최고 작가이자, <5월 5일>의 작가도 그렇게 했다.
28. 글의 첫머리에서 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너무나도 멍청해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29. 철자를 자새하게 학인하라.
30. 반어법은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말할 필요가 있는가.
31. 너무 자주 문단을 바꾸지마라.
최소한 불필요할 때에는.
32. <위엄 있는> 1인칭 복수를 절대 쓰지 마라. 우리는 그것이 나쁜 인상을 준다고 확신한다.
33.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라.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실수할 것이다.
34. 논리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도출되지 않는 글을 쓰지 마라.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전제가 결론에도 도출될 것이다.
35. 옛날 표현이나 <아팍스 레고메나>처럼 이례적인 어휘들, 리좀 같은 <심층 구조>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은 아무리 그라마톨로지적 <차연>의 현현이나 해체론적 표류에의 권유처럼 보일지라도 - 만약 그것이 극도로 세심한 문헌 비평 의식과 함께 읽는 사람의 세밀한 검토에 의해 논박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더 나쁠 것이다 - 어쨌든 수신자의 인지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36. 너무 장황하지 않도록 하라. 그렇다고 그보다 덜 말하지 않도록 하라.
37. 완성된 문장이 되어야 하는데
출처: <글을 잘 쓰는 방법 (1997)>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법 (1999)> 움베르토 에코, 김운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