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써야지 하며 제목만 적어뒀던 글이 몇 개 있다. 근데 벌써 2월 중순이라니...
올해의 키워드 세 개, 자기 인식, 다양성, 학습능력
내가 저 세 단어를 떠 올린 건 2023년 중반을 지날 때 즈음이었다. 그리고 연말을 지내며 친구들을 만나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어김없이 나온 단어들이다. 2023년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일과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한 해였고 그로 인해 깨달은 바도 많았던 해였다. 이때 만들어진 고민 중 일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또 몇 가지에 대해서는 다시 내 일로 녹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육아 핑계를 계속 대는 것 같아 싫었지만 워킹맘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계속 아이를 돌봐주시던 엄마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그로 인해 수술을 받으시느라 내가 12/1일부터 1월 중순까지 휴가를 내고 독박 육아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 시간 동안 깨달은 건 뜻밖에도 내가 식사 메뉴 짜는 일을 정말 어려워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적부터 입이 짧은 탓에 조금 먹더라도 맛있는 걸 먹는 게 좋지만, 엄마의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늘 알아서 챙겨주신 덕분에 내가 먹을 걸 찾아다닌 적이 없었고 그래서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는 급식을 먹고, 대학생 때부터 회사를 다니면서는 구내식당이 있었으니 내가 먹을 걸 고르는 일이라고는 정해진 메뉴 중에서였다. 문득 먹고 싶은 게 생기기도 했으나 많아봤자 3개월에 한 번? 그마저도 지금 당장 못 먹어도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식당에 찾아갈 시간이 없어 일주일이 지나서 먹어도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식사 메뉴를 고르는 일을 어려워한다는 사실도 카카오로 이직하면서 알았다. 여긴 구내식당이 없었으니까.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모든 활동을 좋아했다. 그건 요리라는 영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떠올려보니 내가 만드는 음식은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례로, 엊그제 베리 콩포트를 만들었는데, 이건 빵에도 얹어 먹고, 요거트에도 넣을 수 있지만 이런 메뉴를 삼시세끼 다 먹지는 않잖는가? 게다가 배가 막 고프거나 먹고 싶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아 스스로 뭘 잘 챙겨 먹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이라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뭘 먹어야 할지를 모르니 두 시간마다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아이의 메뉴를 짜는 일이 가장 고된 일이었고, 부부의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 또한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이렇게 한 달 반 동안 독박 육아를 하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희미하게 알고 있던 사실을 또렷하게 알게 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아기는 엄마와 24시간 붙어 지낼 수 있었고,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아기의 기질과 재능을 밀착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의 목표는 그저 아이를 무사히 잘 돌보는 것이었지만, 그것 외에도 배우고 얻은 게 많으니 성공이지, 암.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되셔서 나는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하기 전 부모님, 남편과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다가 독박 육아의 소회를 밝히며 '그런데 이걸 꼭 내가 잘해야 하나 싶기도 해'라고 말했더니, 뭐든 척척해낸 슈퍼맘 엄마는 "그래 직접 할 필요 없어. 사 먹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일과 살림, 양육, 시부모와 시동생들 부양까지 다 해낸 엄마는 환갑이 지난 지금도 마음 편히 쉬지를 못하시고 항상 부지런하게 움직이시는 분이라 저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예상은 못했는데, 손녀보다 자신의 딸이 더 소중한 엄마였다.
자기 인식을 잘하면 좋은 점이 내가 더 노력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살까지 살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내 삶을 가꾸고 내 주변을 잘 관리하며 살자는 주의라 나의 가치관에 따라 취사 선택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다.
자기 인식, 자기 이해가 정말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건, 이게 바탕이 되지 않으면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여러 방면에 걸쳐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점을 부각하고 그것에 집중하여 평타로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가진 강점을 더 단련시켜 더 잘 쓰는 쪽으로 어프로치 하는 편이다. 스스로 강점과 단점을 명확히 알아야 어디에 집중할지를 알 수 있으니 관찰하고 찾아내어 단련시켜 내재화하는 루틴 같은 걸 가지고 있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러한 어프로치를 내 주변인들에게도 했었다. (5년 전 갤럽의 강점 검사를 해봤을 때도 딱 그렇게 나오길래 정말 신기했다.)
나는 그저 타고나길 예민해서 잘 보이는 거였고, 구조화하는 것에도 재능이 있고, 안 해본 것을 시도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서 습관을 만드는 일도 쉬웠던 건데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해서 간혹 오해를 사기도 했다. 상대방의 단점을 굳이 파고든다고 말이다. 헌데 단점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지난 강점과 단점을 그저 빠르게 잘 파악할 뿐이다. 기본적으로는 컨설턴트로 일을 오래 해서인지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굳이 분석적인 말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만 두 가지 모두 이야기를 해주는데, 듣는 이는 단점이 까발려졌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다가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실 강점을 먼저, 자주 이야기해 주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보통은 듣고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에 대한 시선이 과하게 필터가 끼워져 있을 수도, 인정이나 칭찬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강점보다는 단점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게다.
하지만 뭐가 됐든 나 또한 이것들을 적절한 화법으로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모인 집단의 사람들 각자가 지닌 강점은 제각각 일 테니 그것이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관계이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단점도 있기에 나의 단점이 다른 이의 강점이라면 그걸로 상쇄할 수 있을 테니 같은 팀 안에서 보완해 줄 수 있으면 그만이란 생각이다. 물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준 이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과 이를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언제나 그렇듯 당연한 건 없으니까.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어떤 집단 안에 모인 사람들이 다 똑같은 사람이면 그 조직은 결국 망한다. 다른 시각과 다른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도 하지 않고 그런 걸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테니까. 그 집단 안에서는 자신들의 말과 생각, 행동이 다 옳은 것일 텐데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이는 사회나 회사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다.
구정 지나기 전에는 써야지 했는데 그것도 실패했다. 헌데 실패했을 때는 실패라는 걸 인정해야 그 안에서 배우는 게 있고, 그 덕분에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를 더 잘하게 될수록 잘할 수 있게 된 것이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자기 인식이 안되면 자신의 강점과 단점을 파악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눈에 과한 필터를 쓴 채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다음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현실 부정만 하다가 시간이 흐른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함께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위대한 수업에서 하워드 가드너 교수님의 <다중 지능 이론> 강의를 듣다 보니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발달시키기 어려운 지능을 자기 성찰 지능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다른 지능은 비교 대상이 있거나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나의 자기 성찰 지능은 나의 상담사밖에 알 수 없다고 말이다.
컨설턴트로, 코치로 일을 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 또한 자기 인식이다. 이는 이 영역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잘 살 수 있으려면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완벽히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스스로에 대해 과대 평가한 삶은 그만큼 스스로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이라 상대방을 항상 낮춰 보고 자신을 높이려 애를 쓰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자기 이해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작업치료학과 최유임 교수님의 강의 자료를 찾았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서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와 강의 자료를 모두 다운로드하였는데, 그중 한 페이지를 붙이며 마무리한다. 그동안 내가 사회성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정확히는 사회 인지 능력이란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