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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미진 Mijin Baek Mar 26. 2024

도를 닦고 덕을 쌓는 자기 수양의 길, 육아

매 순간 성장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하지만 두 번 하고 싶은 정돈 아냐


썸머가 20개월에 접어들었다. 어제는 목욕을 하고 나오더니 제가 스스로 옷을 입겠다며 엄마의 손을 거부했다.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난 저녁이었고, 목욕 후에는 잘 준비를 하다가 잠들면 그만이므로 나도 급할 게 없었다. 해서 '그래 썸머가 혼자 해볼까?' 하고는 나는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1차 시도, 2차 시도,.... 다섯 차례쯤 시도했을까? 매번 바지를 거의 입긴 했으나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벗기를 반복했다. 이후 바지에서 관심이 멀어졌고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더니 놀이방에 가서 낱말 카드를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말을 다 알아는 듣지만 아직 제 입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낱말 카드의 그림으로 나와 소통하곤 했던 터라 아마도 내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보다. 결국 바지는 내가 입혀주었다.  

 






아이에게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다. 심지어는 인간의 가장 최소한의 욕구인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그 무엇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정말 어이가 없지만 실제다.


썸머는 이유식 중기가 될 즈음부터 어른 식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맨 밥을 조금씩 떼어주며 식사를 함께 했다. 그래서 지금도 어른 식단을 함께하고 싶어 하며 전혀 다른 메뉴를 제 몫으로 주는걸 안 좋아한다. 


부모가 밥을 먹는데 아이가 제 밥이 아닌 부모의 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결국엔 아이가 그걸 먹어야 끝이 난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부모가 아무리 말로 안된다고 해봤자 아이가 시도해서 괜찮은지 아닌지를 스스로 알아채지 않으면 될 때까지 시도하는 게 아이의 본능이다. 


다행히 나는 평소에도 간을 약하게 해서 먹을 뿐 아니라 절밥같이 자극적이지 않은 식단을 좋아하여 썸머와 같이 먹어도 무방한 밥을 먹는다. 하지만 썸머를 함께 돌보는 다른 사람들(남편, 친정 부모님)의 식단은 그렇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는 종종 전쟁이다(얼마 전에는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그걸 굳이 먹겠다고 해서 아주 조금 숟가락으로 찍어서 먹여주었다. 맵지 않아서 다행이었으나 결국 열 번도 넘게 먹었고 밥상을 치우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렇게 식사 시간에 에너지가 고갈되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지에 이르러 기계적으로 팔이 움직여 입에 밥을 넣으므로 평소에 먹던 밥보다 더 많이 먹을 때도 많다. 그래서 살이 찐다(ㅋㅋ). 혹은 에너지 고갈로 밥이고 뭐고 다 싫어져서 밥상을 그냥 치워버리기도 한다.


3월부터 썸머는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침에 나와 함께 출근 준비를 한다. 어젯밤에는 목욕한 이후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서 나의 마음에도 여유가 있었으나 출근길은 얘기가 다르다. 뒤에 스케줄이 있으므로 현관문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썸머는 요즘 스스로 세수하고 옷을 입으려는 시도는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해서 내가 먼저 준비를 끝내고 썸머를 챙기든, 썸머를 챙기고 내가 준비를 하든 해야 한다. 그게 나의 계획이다. 그런데 아침에 어젯밤 목욕 후에 했던 것처럼 스스로 옷을 입겠다고 씨름을 하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줄줄 새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데 아이가 있으면 돌발 상황 또한 자주 발생하므로 어디로 샜는지 알 수도 없게 새어버린다. 


스스로 시도하려는 아이에게 "그래 알아서 해라~"며 등 돌리고 내 할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작은 성취를 쌓아 정말 혼자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눈 맞추며 응원해 주는 일. 지켜봐 주는 일이라는 게 사실은 메마른 눈으로 쳐다만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아이가 자신의 손으로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엄마의 에너지와 아이의 성장을 맞교환하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 하나만 챙기며 살 때는 일정 기간 동안 혹은 오늘 하루 내가 뭘 할 건지 대략적으로라도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면 되어서 에너지 조절이 가능했다.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언제 힘을 주고 뺄지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에너지가 줄줄 샐뿐더러 계획이랄 게 부질없어지는 순간이 허다하다. 


덕분에 요즘엔 '내 인생이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하는 생각을 한다. 여태껏 내가 계획한 대로 다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마흔 살이 되어서 사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다는 걸 매초마다 느끼고 있다. 그래도 싫지만은 않다. 인생의 쓴맛이라기보다는 참맛? 같은 느낌. 


이걸 못 받아들이면 우울증이 될 텐데, '이 또한 지나가는 시간이고 언젠간 그리워질 때가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지내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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