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한달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ik Aug 17. 2020

미역국을 드시고 눈물을 흘렸다.

59번째 어머니의 생일상을 대접하며

주말까지 새벽 출근을 완료했다. 다행히 대체 휴일이 생겨 17일은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 날은 어머니의 59번째 생신으로 가족끼리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에 기상을 했다. 부모님은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을 주셨다. 오늘 밥을 먹을 곳은 등촌역 근처에 있는 '백제원'이라는 곳이었다.


미리 예약했던 탓에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사실 예전에 친구와 한번 왔던 기억으로 부모님이 좋아할 음식으로 생각하고 어머니의 생신을 백제원에서 대접하기로 했다. 분위기는 매우 고급졌다. 방에는 깔끔히 차려진 음식상이 있었다. 우리는 양념갈비 정식을 시켰고 음식은 상을 가득 채울 만큼 다양하게 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들 중에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음식을 해서 드린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곳에서 의미 있는 식사를 부모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말 그대로 먹지 않고 배부른 느낌이다. 음식을 서빙해주시는 분에게 나는 특별히 오늘의 주인공은 저희 어머니라서 더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생일이라고 말씀드렸고 더 맛있게 해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음식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이제는 식사만 남은 시점이었다. 그때 서빙하시는 아주머님께서 어머니를 주시기 위한 생일상을 갖고 오셨다. 음식점 이름에 걸맞게 임금님 밥상에 올라가는 수라상의 형식으로 미역국과 흰쌀밥 그리고 각 종 반찬을 대접해주셨다. 부모님은 감동했고 우리는 예상에 없던 메뉴 앞에서 음식점 서비스에 감사했다.


미역국을 드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잠긴 듯했다. 옛날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던 어머니는 갑자기 아들이 예전에 고1 때 일요일 아침에 끓여줬던 미역국이 생각났다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힘든 시절에 자기편이 없다고 느꼈을 때 생일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 편의점에서 팔던 미역국 1,500원짜리 1인분을 끊이고 밥을 주던 아들이 생각났다고 말해주었다. 지금 먹고 있는 미역국을 보니까 그때가 떠오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평소 과식을 하지 않던 어머니는 미역국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드셨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오늘 부모님은 아마 고1 때 끓여줬던 어린 아들의 미역국을 생각하며 드셨을지도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며 추억이라는 것을 담아서 말이다. 예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주진 못했지만 다행히 음식점의 고급 서비스로 인해 추억까지 선물할 수 있었다. 


살다 보니 값 비싼 선물보다 추억과 진심을 담은 선물이 더 비싸 보이는 경험을 많이 한다(물론 비싼 선물도 해야 되는 경우도 많지만). 물론 이런 추억과 진심을 담은 선물을 주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추억을 오랫동안 쌓아야 하고 진심을 담기 위해선 더 많은 추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가족들에게 값 비싼 것보다 손수 쓴 편지 한 장이 디지털 시대인 지금에서도 상대방에게 감동을 전하는 것은 이를 반증하는 게 아닐까. 


살고 있는 모든 것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기억에서 추억으로 바뀌는 건 본인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시간이 지나 떠올렸을 때 모든 것이 다행이고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 부모님은 미역국을 드시면서 옛날 힘들었을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렸을 텐데, 드실 때만큼은 행복했고 이걸로 충분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나도 오늘만큼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서 충분한 하루 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날 동물이 하는 말이 들린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