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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인 Oct 19. 2022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한 명의 배우가 무대 위로 오른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하나의 몸이 빛을 받는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한 명을 응시하는 수백 명이 있다. 수백 명의 수백 개의 눈이 오로지 한 곳을 바라본다. 무대 중앙에 선 배우는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뗀다.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배우는 수천 수만 번 되뇌었을 이름을 무대 위에서 하나씩 호명한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힘주어 말한다. 2014년 4월 16일 우리가 떠나 보낸 304명의 이름이다. 

   너무도 익숙하고 귀에 익은 이름들.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이를 붙잡고 이름을 물으면, 제 이름은… 하고 들려줄 것만 같은 그런 이름들. 수많은 이름들 사이로 나와 같은 이름이 불렸을 때에는 잠시 숨이 쉬어지지 않아 두 손으로 가슴께를 쓸어 내렸다. 숫자 안에 갇혀 있던 이름들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순간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얼굴들을 떠올렸다. 본 적 없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나는 분명 그 밤, 그 극장에서, 그 얼굴들을 보았노라 말할 수 있다. 

   그날의 극장은 (여러 이해관계들로 인해 문을 닫아) 연극인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잊지 말자 함께 다짐했던 우리의 약속은 매일 찾아오는 평범한 하루에 밀려 서서히 희미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기억한다. 가라 앉은 죽음과 그것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려는 생의 몸짓을. 극장 밖을 나오면서 느꼈던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의 촉감을. 나는 그 밤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 밤을 잊지 못한다. 우리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던 밤을. 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깊은 바다가 당신 안에 있음을 목격했던 그 밤을. 


외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은 평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모두 등을 내보인 채 각자 업무에 열중하는 듯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약간 상기된 듯한 기운이 사무실을 감돌고 있었다.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그곳은 당신의 자리였다. 늘 그랬듯 책상 위는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의자는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당신의 의자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고 내 자리에 앉았다. 미팅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했고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저녁이 되어 모두가 퇴근을 한 후에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무색한 하루들이 여러 번 지나가는 동안 내 옆자리는 계속 비어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부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당신의 소식을 들은 건 그보다 며칠이 더 지난 후였다. 사람들은 조의금을 걷으며 누가 장례식에 갈지 논의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동생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매끈한 땅 위에 돌부리 같았던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여느 때처럼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고 당신도 그 틈에 함께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신에게 전화가 왔고 당신은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동료들은 놀란 눈으로 당신을 쳐다보았고 당신은 그 눈들을 지나쳐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볼 때면 자꾸만 그 장면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흔들리는 뒷모습이 빛의 잔상처럼 몇 번이고 눈앞에 나타났다. 환영이 반복되는 순간마다 나는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이 아니므로. 당신은 이곳에 없으므로. 

   얼마가 흘렀을까. 당신은 내 옆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당신을 보곤 나도 모르게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움이라니.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 말없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이내 내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너무 큰 슬픔 앞에서 슬픔 밖에 있는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언젠가 당신의 슬픔에 틈이 생긴다면. 내가 잠시 손을 뻗을 수 있는 한 뼘어치의 공간이 허락된다면. 그때까지 나는 그저 당신 옆에 서서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슬픔에 빈자리란 없었다. 그저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이 쌓이고 덧입혀질 뿐, 아래에 묻힐지언정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이 묻어 두었던 슬픔을 내게 꺼내 보인 날을 기억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초록색 술병들이 놓여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잔이 비지 않도록 계속 채워주었다. 당신은 조만간 동생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OO이 보러 갈 거야. 그 앞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캠핑하기로 했어. 당신은 동생을 보러 갔던 수많은 날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마치 어느 소도시에서 홀로 자취를 하고 있는 동생을 만나고 왔던 날들에 대해 말해주듯이. 

   나는 당신의 동생 이름을 안다. 당신이 숱하게 불렀던 그 이름을. 사무실에서도, 차 안에서도, 그날 밤 술자리에서도 당신은 동생을 ‘동생’이라는 표현 대신 그의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나조차도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익은 이름. 그리운 그 이름을 부르다 당신은 울었다. 나는 우는 당신의 손을 잡아 주었다. 차갑고 야윈 손을 감싸며 나는 당신의 동생의 얼굴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았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의 얼굴. 그 얼굴을 향해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OO씨, 나 여기서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끝끝내 마지막까지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면, 이름이 아닐까. 이름은 본래 불리는 자의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부르는 사람도 함께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의 이름이 살아있는 한, 기억되는 한, 어쩌면 우리는 그를 영원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애인과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죽음은 어떻게 완성되는 걸까?" 나는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인은 내가 던진 질문에 오래 전 읽었던 어느 만화책 속에 등장한 이름 모를 세계에 대해 들려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을 영원히 잊어버리면,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지면 그때 비로소 죽음이 완성되는 세계도 있대."


내 곁을 떠나간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씩 꺼내어본다. 만날 수 없지만,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기억할 수는 있으니까. 

   나의 기억이, 당신이 이 세상에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준다면 나는 내 몫의 기억을 보태고 싶다. 나의 기억이, 남겨진 이들의 세상을 조금이라도 외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 곁에 함께 서있고 싶다. 설령 이 세상이 오래된 만화책 속 세상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떠나간 이들과 함께 하면 되기에. 설령 그 과정이 아플지라도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두 손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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