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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인 Oct 19. 2022

구급차 소리가 들리는 밤


자정을 목전에 둔 고요한 밤. 창밖으로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는 귀뚜라미 소리,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가 실려있고 그 사이로 오토바이 경적이 드문드문 묻어있다. 모두가 잠든 척하는 밤. 그 틈을 비집고 멀리서 요란한 굉음이 들려온다. 촌각을 다투며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는 소리. 언제 들어도 매번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 한입에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맹렬히 달려오던 소리가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며 저 멀리 희미해져 간다.

   나는 이불 위에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잠은 이미 달아나 사라지고 없다. 잠이 있을 자리에는 괜한 상념들만 들어차고, 그 중 어떤 상념은 내 언젠가 보았던 혹은 결코 본 적 없었던 어떤 장면을 이곳으로 불러온다.

   이를 테면 이런 장면.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있다. 가끔 핸드폰 상단에 깜빡깜빡 파란 빛이 번쩍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카드 결제 내역 문자이거나 수신인을 알 수 없는 그저 그런 광고 문자들뿐이다.

   조용한 핸드폰은 자신의 주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가 그에게 독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숱하게 걸었던 전화들,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던 문자들은 그에게 신중함과 냉정함을 가르쳐 주었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의 번호를 함부로 저장하지 않는 신중함과 끊어내야 할 사람의 번호를 미련 없이 삭제해버리는 냉정함을 말이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핸드폰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혼자인 사람에게 시간은 자연스레 흐르는 무형의 존재가 아니다. 고요해질수록 투명해질수록 시간은 더욱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제 품 안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인간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시간이라는 감옥 안에 갇힌 무력한 인간은 매일 가혹한 과제를 부여 받는다. 오늘 하루도 살아보라는 것. 이유도 방향도 목표도 알지 못한 채, 집채만 한 돌덩이를 이고 지고 늘 같은 산을 오르는 매일을 견뎌보라는 것. 혼자인 사람에게 시간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독한 형벌이 되기도 한다.


혼자임을 선택한 그에게도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가 있었다. 막걸리와 담배. 그들은 말이 없는 친구였다.

   그는 왜 말이 없는 친구가 필요했을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주종은 막걸리였다. 도수가 낮아 금방 취하지 않았고, 곡주이기 때문에 왠지 소화도 잘 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막걸리는 본격적인 술처럼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넘치는 시간을 안주 삼아 한잔씩 홀짝홀짝 하기에 가장 부담이 덜 했다. 죄책감이 덜 느껴졌다.

   그렇게 한잔씩 마시던 막걸리는 곧 반 병이 되었고, 반 병은 한 병이, 한 병은 두 병이 되었다. 빈 초록색 페트병이 집안 곳곳에 세워질 때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시간은 뜨거워진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도 하고 딱딱한 엿처럼 뚝뚝 끊어지기도 했다. 막걸리는 그에게 타임머신이 되어주었다. 시간의 마법을 부리는 친구는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었다. 깊은 밤을 홀로 견디기 힘든 이에게 잠시라도 그것의 일부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느 누가 그 손을 잡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령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는 일일지라도.

   기울어지는 술잔에 노을빛이 담기고 달빛이 담겼다. 8평 남짓의 짙은 어둠 속에서 한잔 빛을 마시며 그는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지워갔다. 살아있음을 잊으려 했다.


막걸리가 살아있음을 외면하게 했다면 담배는 살아있음을 깨닫게 했다. 커다란 운동장 한 가운데 홀로 있음을. 홀로 있는 자신을 마주하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생의 시간 속에서 한 숨 돌리고 싶을 때마다 그는 담배를 찾았다. 아침에 눈을 떠 이부자리를 털고 나왔을 때, 하루 두 번 숙제 같은 식사를 마쳤을 때, 일터에 들어가기 직전 근처 거리를 배회할 때, 생의 무게에 허리가 짓눌려올 때, 누군가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 때,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때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몸 안으로 들였다.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통과한 하얀 연기가 자신의 숨이 되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아직 여기, 살아 숨 쉬고 있구나. 그것은 자신의 생을 목격하는 일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한 생명이 아직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는 담배와 함께 깊은 숨을 쉬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어찌 그리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느냐고. 적당히 줄여볼 생각은 없는 거냐고.

   그리고 돌아오는 말.


   "그거 말고 재미있는 게 생기면 자연스레 줄 거야.

   나는 나를 기다리는 중이야."


그에게 다른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

   새로운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그는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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