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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인 Oct 19. 2022

달팽이 무늬 속 아이


따가운 태양빛이 장대비처럼 내리는 날에도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찌는 듯한 더위보다 일상의 갑갑함이 그들을 더 숨막히게 했던 탓일까. 사람들은 마음의 그늘을 찾기 위해 공원으로 나와 호숫가 곁을 걸었다. 나와 애인도 그 틈에 섞여있었다. 애써 시원한 척 물가의 풍경을 즐겨보려 했으나 아무래도 날이 너무 더웠다. 나와 애인은 모종의 신호를 주고받은 후 자연스레 공원 초입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자전거가 곁을 지나자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 마음이 시원해졌다. 

   공원 입구에 넓게 펼쳐진 광장을 지나며 우리는 근처 어느 카페에 갈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더 이상 솟아오르지 않는 커다란 분수대가 있었다. 차가운 물길이 솟구치던 그곳에는 수증기 대신 더운 아지랑이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라는 듯 분수대 주변에는 땀에 몸이 반쯤 젖어있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정신 없이 내달리는 자전거와 킥보드, 그 사이를 가로 지르는 깔깔대는 웃음소리.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이곳에 모인 듯 했다. 그 풍경을 지켜보며 씰룩 입꼬리가 올라가던 순간, 왼쪽 뒤통수 너머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찾아주실래요?"


잘못 들었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한 여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바닥에 그려진 달팽이 무늬를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밖에 있었던 모양인지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언뜻 보기에 혼자 잘 놀고 있는 듯 보여 내가 잘못 들었거나 혹은 그냥 해본 말이겠거니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같은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엄마를 찾아주시겠어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뒤를 돌아 보니 이번에는 어떤 젊은 여자를 향해 아이가 직접 말을 건네고 있었다. 오른발로는 킥보드를 구르며 입으로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젊은 여자가 뒷걸음을 치자 아이는 다시 달팽이 무늬 안으로 들어가 계속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젊은 여자처럼 아이를 향해 다가가지도 뒤를 돌아 카페에 가지도 못하고 주춤하는 동안 애인은 아이한테 가보자며 내 손을 이끌었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아이가 달팽이 무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전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높고 상냥한 어조로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네. 엄마를 찾아주세요."

   "엄마가 어디에 가셨을까... 우리 친구, 이름이 뭐예요?"

   차분하고 침착하게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5살. 

     보호자 핸드폰 번호 모름. 

     집 주소 모름.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방치된 듯.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공원에 왔다고 함(매번 대답이 달라져서 확실하지 않음). 

     동생이 사라져서 엄마와 아빠가 동생을 찾으러 갔다고 함. 여기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함(이 얘기도 확실하지 않음).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계속 기다렸는데 엄마가 오질 않는다고 함. 

     유치원 그린반. 


집요한 질문들이 아이를 향했고,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대답을 꺼내놓았다. 아이가 알려준 유치원 정보가 확실하다면 어렵지 않게 보호자와 연락이 닿을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아이의 상황을 상세히 알렸다. 경찰은 가까운 곳에 있는 순찰대를 바로 출동시키겠다며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있어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통화를 마무리하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천천히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햇빛을 피해 근처에 있는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의 몸은 홀로 남겨져 있던 시간을 증명하듯 맨살이 드러난 모든 곳들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애인은 아이의 앞에 서서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두 손으로 그다지 시원하지 않은 손부채를 해주었다. 목이 마르지는 않은지 묻자 아이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덥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곤 땅에 닿지 않는 자신의 발끝만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아이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흔적도 없는 말을 동아줄 삼아 버티고 있던 아이. 푸르던 하늘이 붉어지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를 스치는 낯선 그림자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이는 대책 없는 울음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아는 듯 했다. 자신이 홀로 남겨졌고,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정중하게 부탁을 해야 하고, 거절을 당하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이 힘들지 않도록 울거나 떼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한 가지 더. 엄마가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는 그렇게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던 그 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한순간 사라져버린 엄마를. 


멀리서 제복을 입은 듯한 사람들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의 몸이 살짝 들썩였다. 힘껏 목을 꺼내 들어 경찰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경찰이죠? 경찰이 오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바람과 위로가 섞인 말도 함께 건넸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었다면 왜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아이는 이곳에 혼자 방치되었어야 했을까. 

   다가오는 경찰을 바라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왜 나를 여기에 놔두고 갔을까요."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의미 없는 숫자 증명을 해대며 큰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주 그 질문을 떠올렸다. 어른이 뭘까.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그건 눈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이다. 그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다. 곤란해 하는 입술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속삭이는 두 눈빛의 대화를 해석하고, 떠나간 자리의 의중을 짐작해내는 것이다. 형체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의 기호들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는 더 이상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사무치게 슬프고 아팠다. 아이의 질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게. 왜 그러셨을까. 

   세상의 일부를 일찍 깨달은 아이들을 볼 때면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약간의 근육통처럼 몸의 구석구석이 저려오는 느낌. 더 정확히는, 아린 느낌. 나는 지금 이 감각이 꽤 오랫동안 내 몸에 머물다 갈 것을 직감했다. 빨리 자란 아이는 결국 덜 자란 어른이 된다는 걸 알기에. 덜 자란 어른의 마음 속에는 빨리 자라서 슬픈 아이가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살아있다는 걸 알기에. 슬픈 아이가 덜 자란 어른을 아프게 하고, 화나게 하고, 또 다시 슬퍼지게 할 것을 알기에. 나 역시 그랬기에. 오늘 공원에서 만난 저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그 어른의 마음 속에는 어떤 슬픈 아이가 살아가게 될까. 


아이를 경찰에게 인계하고 나와 애인은 걸음을 옮겼다. 아이로부터 멀어질수록 귓가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자꾸만 맴돌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한 경찰이 앉아 있고, 애인이 서 있던 자리에 또 다른 경찰이 서있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멀리서 잠시 지켜보았다. 

   어른들은 바뀌었지만 아이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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