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한나절 열어두었던 거실 창문을 닫는다. 서늘한 밤 기운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두 개의 문을 닫고 하나의 얇은 커튼을 치면 완성되는 짧은 루틴. 그 사이로 나는 하나의 행동을 슬며시 추가한다. 건너편 빨간 지붕 집을 향해 잠시 눈길을 두는 것. 한창 이사 갈 집을 고르던 때에 나는 이 집의 창문 너머로 펼쳐진 빨간 지붕과 그 옆에 작은 옥탑 놀이터에 마음을 빼앗겼다. 생활하는 공간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두고 바라볼 풍경도 내겐 같은 무게만큼 중요했으므로. 나는 낯선 집들을 둘러보면서도 집의 안쪽보다는 바깥을 더 면밀히 체크하곤 했고, 그때 내 마음에 들어선 풍경이 저기 건너편에 빨간 지붕과 작은 옥탑 놀이터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얇은 커튼을 양 옆으로 열어 젖히고 아무도 없는 옥탑 놀이터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오직 햇살만이 앉아 있다. 굳게 닫힌 투명한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면 나는 짧은 저녁 루틴을 반복한다. 어느 샌가 열어두었던 두 개의 문을 닫고 하나의 얇은 커튼을 치는. 그 사이로 빨간 지붕 집을 바라본다. 빨간 지붕 집 창문에는 밤마다 검은 유령이 나타난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 걸어둔 옷이 만든 그림자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에 늘 같은 자리에 서서 이쪽을 향해 있는 그 그림자를 나는 검은 유령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쪽을 바라보는 검은 유령과 나는 잠시 눈을 맞춘다. 유령이라는 이름이 주는 스산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향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 그 시선에 나의 시선을 겹칠 수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온기로 다가온다.
언젠가 이 집을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풍경을 맞이하겠지.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검은 유령과 햇살이 내려앉은 옥탑 놀이터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풍경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내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오래도록 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내겐 오래된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잔상이 여럿 있다. 그것을 꺼내어 볼 수 있는 건 머리가 아닌 몸의 감각이다.
몸이 기억하는 감각의 순간들을 꺼내어 보고 싶었다. 오래도록 간직해 온 어떤 풍경들을 내 안에만 보관해두지 않고 밖으로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를 향하는 행위이다. 내가 가진 풍경이 당신의 몸에 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 역시 어떤 몸들이 선사한 감각의 풍경들로 채워진 몸이기에.
서로 알지 못하는 우리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겹쳐지는 온기 같은 순간이 잠깐이라도 생긴다면. 그렇게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면.
어디선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모습이 풍경처럼 다가온다. 풍경에 풍경이 겹쳐지는 순간. 몸과 몸이 만나는 순간. 나는 나의 이 작은 마음을 담아 내 안의 것을 당신께 드리고 싶다. 나의 밤과 놀이터와 덕수궁 돌담길과 작은 창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