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가 너무 많은 마케팅 디자인에서 잘 쓸 수 있는 라이브러리로 개편하기
작년 3월, 처음으로 마케팅 디자인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라이브러리를 배포했다. 쿠폰, 상품호출, 정보영역 등등 정말 중요한 큰 것부터 자잘한 것까지 마스터 컴포넌트화를 시키고 디자이너/마케터에게 안내했다. 중간중간에 예외 케이스들을 대응하거나, 새로운 케이스를 추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가 만든 라이브러리가 잘 운영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타 디자인팀 조직장 A님과 쿠폰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쿠폰 가이드가 너무 빡빡해요. 안 되는 것도 너무 많고... 계속해서 새로운 쿠폰방식, 페이지 쿠폰 전개가 달라지는데 이런 기획이랑 쿠폰 컴포넌트를 맞추려다 보니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을 너무 써요. 이런 시간을 줄이게끔 가이드를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중략)"
A님의 말을 요약하자면 [쿠폰 가이드가 현재 너무 빡빡해서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커뮤니케이션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작업시간을 줄여줘야 하는 라이브러리가 오히려 작업 시간을 더 늘리고 있는 꼴이 되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라이브러리에서 어떤 부분이 그들을 일하기 어렵게 했을까.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라이브러리의 목표는 실제로 사용했을 때의 환경과 괴리감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라이브러리의 목표>
- 디자인의 일관성 : 수많은 디자이너가 1주일에 수십 개의 페이지를 생성할 때, 같은 쿠폰 + 같은 상품전시 + 같은 버튼 디자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 마케터가 쓸 수 있는 라이브러리 :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더라도 마케터가 에셋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정교하고 명확한 가이드 : 그동안 "왜 이 내용은 가이드에 없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가이드에 담고, 에셋 프로퍼티(property)에도 적용한다.
이 2가지가 가장 컸는데,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가이드를 꽤 자세하게 적어야 했다. 특히 디자인 경험이 없는 마케터의 요구를 컨트롤하려면 가이드가 더 빡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로 안된다!라고 해야 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라이브러리의 목표... 의 현실판>
- 디자인의 일관성 -> 큰 틀에서의 일관성은 유지되었으나... 가이드에 맞지 않는 디자인이 계속 만들어졌다. 쿠폰 디자인을 단순 혜택 리스트로 사용한다든지, 버튼의 라운드 값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든지 등등.
- 마케터가 쓸 수 있는 라이브러리 -> 마케터가 에셋을 수정하더라도, 잘못 수정하거나 추출하는 것을 우려한 디자이너들이 결국 확인 후 추출해 주는... 어차피 디자이너가 다시 봐줘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 정교하고 명확한 가이드 -> 오히려 가이드가 너무 빡빡해서 디자이너나 마케터에게 "이거 왜 안돼요? 되게 해 줘요 ㅠㅠ"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심지어 그 사유가 너무나도 납득이 돼서 더 눈물 남)
하지만 이것이 족쇄가 될 줄이야. 앞서 여러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라이브러리 배포와 동시에 가이드를 열어달라는 요구도 엄청나게 많았고(참고 글 : 디자인 가이드의 딜레마), 사업 방향이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라이브러리로 고정시켰던 에셋 디자인은 어느새 구버전이 되었다. 라이브러리에 없는 디자인(새로운 케이스 대응한 쿠폰이나 버튼 등)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고, 사실상 라이브러리의 가이드는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디자이너들이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이 라이브러리를 개편하고 있다. 다들 공통적으로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내용을 반영하고, 쓸데없는 내용이나 기능은 과감히 빼고... 에셋들 중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쿠폰]을 개편 중인데, 이 개편을 진행하면서 잡은 목표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이번 개편에서는 [생산성]에 집중한다. 즉, 디자이너가 빠르게 이 쿠폰 에셋으로 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한다. 초반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 쿠폰을 쓰는 데에 이 가이드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얘기가 많이 들렸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생산성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최대한 간소화하거나 삭제하려고 한다.
둘째, 생산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빡빡한 가이드를 많이 오픈한다. 사실 그동안 라이브러리를 운영하면서 "이 가이드 때문에 안됩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능한 부분인데도 디자이너들이 안 되는 줄 알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 디자이너나 마케터들은 이 엄청난 가이드를 보고 [안 되는 게 더 많나 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케이스를 커버할 수 있는 가이드로 열어놓으려 한다. 단,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은 제외하고.
셋째, 디자이너가 해당 에셋을 활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열어 놓는다. 위의 두 번째와 결이 비슷한데. 마케팅 디자인에서는 너무 변수가 많다. 내가 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 바운더리에서 벗어나면 디자이너들이 다 안 되는 줄 알고 나를 찾는다. 그러면 이 대응을 하는 내 업무 시간도...(눈물) 그래서 앞으로 개편할 쿠폰에서는 디자이너가 텍스트 기재나 컬러 변경이라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끔 열어놓으려 한다.
혹자는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하면, 마케팅 디자인에서 [라이브러리]라는 것을 없애고 그냥 더 쉬운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나도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만들고 운영한 라이브러리가 너무 아까워서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더 나은 방안이 있는데 내가 일부러 흐린 눈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아마 지금도 몇몇 회사들은 챗GPT 등을 이용해서 페이지나 배너를 몇 번의 클릭만으로 자동생성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면 너무 좋겠지만! 이런 게 가능하게 하려면 AI에게 학습시킬 코어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라이브러리가 해줄 것이다.
그리고 라이브러리를 없애기에는 이미 많은 곳에서 이 에셋을 잘 쓰고 있다. 물론 절반 이상의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피그마 사용 실력이 초보 단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에셋을 잘 쓰려고 노력하고 피그마를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가능성을 보고 라이브러리를 좀 더 운영해 보려고 한다. 대신 이 라이브러리의 사용성을 더 좋게 만들어야겠지.
라이브러리를 처음 만들고 운영해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생각보다 내 뜻대로 마케팅 디자인이 컨트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다소 엄격하게 에셋 가이드와 정책을 운영해야 잘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 그리고 빠른 사업과 트렌드의 변화로 이제 막 배포한 에셋이나 가이드는 몇 주 후 바로 구버전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생산성, 그리고 유동적인 에셋 버전 관리를 위해서 개편을 진행하고 있는데, 과연 추후에 개편될 쿠폰은 이전보다 사용성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쿠폰 에셋 업데이트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또 글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