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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Jan 13. 2019

주름이 필요한 시간


한복 저고리를 입을 때 꼭 잡아줘야 하는 팔자 주름은 목에서부터 겨드랑이까지 사선으로 내려와 여덟 팔 자를 닮았다고 해서 팔자 주름이다. 팔자 주름은 저고리를 입었을 때 몸에 더 잘 맞고 편히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신기하지, 사람들은 옷에 잡힌 주름이란 주름은 죄다 없애버리려 갖은 애를 쓰면서도 없으면 안 되는 주름을 만들어 곱게 잡는다.

주름을 펴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없으면 안 되는 주름이 있고 주름을 잡아줘야 더 예쁜 것들이 있다.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고, 참지 않고 화를 내는 것 만도 능사가 아니다.


성만 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은 건 아니지만, 분노를 삭히고 체념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조금 더 빨리 이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난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 마 짜리 천에 나를 그려서 옷을 만들고 주름진 곳 하나 없이 뻣뻣하게 세워놓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웃옷 가슴께에 팔자 주름을 깊게 잡아 양 팔을 가지런히 내려놓을 것이다. 하고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살 수 없듯이, 생긴대로 마냥 살아갈 수 없듯이 난반사되던 관성을 억지로 끌어안아 멈춘 뒤 길 따라 데구르르 굴러가게 다시 공을 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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