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여행은 언제나 충동으로 시작한다. 반딧불이를 보러 가자는 말에 덜컥 결정된 제주행. 부랴부랴 항공권과 숙소를 정하고 어디 갈 지 무얼 먹을 지 전부 나열해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숙소에 도착해 배를 채우고 반딧불이를 보러 나섰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천지연으로 들어가 폭포 앞 까지 걸어갔다.
어두운 밤길은 유난히 보이지 않았고, 조그만 움직임에도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어차피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때로는 의미 없는 행동만으로도 심적인 안정을 얻는다.
원래는 이 쪽 길로 가면 양 옆으로 가득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없는건지 벌써 없어진건지 모르겠다. 아쉬워하던 네 손을 꼭 잡고 가다가 나서는 길에 수풀 사이에 숨어있는 반딧불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저거, 저거 아냐? 내가 처음 본 반딧불이는 너무 작고, 하찮고,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신비로웠다. 손톱보다 작은 불빛이 반짝, 반 짝, 반 짝 하다가 또 깜 빡, 깜 빡, 깜빡 하고 있었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 산책로를 쭉 걸었다. 여기에도 있을까? 하고 무작정 온 곳이었는데 천지연보다 새섬에서 더 많은 반딧불이를 봤다.
소리에 민감한 녀석들은 조그만 발 소리가 들려도 꽁무니를 밝히지 않았다. 이정도로 예민한 녀석들일 줄은 몰랐는데, 귀청을 시끄럽게 하는 풀벌레들도 가까이 다가가면 울음을 멈추고 잔뜩 경계하기 마련이다. 하나는 알면서 둘은 몰랐다.
제주에 오기 전 네가 부탁한 것이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까지 탄산온천에 두 번 다녀올 것이라고. 한 번은 제주에 내려온 날 바로 다녀왔고 이제 한 번이 남았는데 어젯밤 늦게까지 돌아다닌 탓인지 너는 영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깨울까, 말까 하다가 열 시가 넘어서야 너를 슬쩍 어루만졌고 항상 그랬듯 화들짝 놀라며 눈을 뜬 네게 잘 잤냐고 물었다. 놀라지 말라고 따스히 안아주고, 얼굴을 쓰다듬고, 팔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메이비에서 한 잔,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고양이를 만나서 따라가다 너무 더운 날씨에 지쳐 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우도에 가자고 약속했다.
뜨겁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우도는 황홀할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가르고 도착했다.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의 햇볕은 카페리가 가르는 바다를 따라 출렁이며 부서졌다. 저 먼 바다에서도 태양은 똑같이 부서졌다. 잘게 부서진 태양을 한 줌 쥐어다 바다 위에 뿌리면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는구나. 우도로 가는 뱃길에서 그토록 보고싶었던 바다를 만났다.
OOO, 나는 너와 함께 레이크 루이스에서 혹은 모레인 레이크에서 투명 카약을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유유히 떠다니고 싶었다. 빙하수로 가득차 에메랄드빛을 띈 호수 한 가운데서 그리 뜨겁지 않은 태양을 머리 위에 얹고 짧은 입맞춤과 깊은 키스를 하고 싶었다. 네가 좋아하는 맑은 공기로 가득한 곳에서, 호수 가까이에 너를 세워두고 나는 저 멀리서 카메라로 수 십 장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해 불안해하는 너를 보고 낄낄대며 겨우 찾은 흡연구역으로 너를 데려가는 상상을 했다.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자연 앞에서 네 손을 꼭 잡고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싶었다. 기억을 되짚어 예쁜 산책로를 찾아 오래도록 걷고 싶었다. 강변을 따라 걷다 쉬다 또 걷다 쉬다 하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풀과 꽃을 가리키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스치는 바람을 온 몸으로 즐기며 고운 시간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제주를 자꾸 찾는지도 모른다. 깨끗하고, 덜 오염된, 오를 수 없는 오름과 산이 있는 곳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