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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비 Jul 07. 2020

신중함에 대한 이야기

매번 불꽃같은 사랑에 빠져 성급히  판단하고 조급하게 일을 치르고 관계를 맺고, 정립했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느새 또 마음이 가빠진다. 아마도 놓치기 싫어서,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혹은 네 마음이 변하기 전에 내 옆에 묶어두고 싶어서일 것이다. 빠르게 생겨난 마음은 휘발성이 강하다. 마음은 모양새가 없어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성급하고 신중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한 줌 흩어질 마음 자락을 잡아두기 위해 잰 박자로 뛰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느은, 별비씨가아, 그냐앙, 막... 가볍게 만나고 싶고 그러지 않아요오... 천천히 오래오래 알아가고 십허요... 나는 상처받기두 싫구... 별비씨가 좋은데에, 내가 별비씨를 그냐앙, 지나가는 사람, 스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구 있는거, 알아줬으면 좋겠어요오...

나랑 참 다른 사람을 만났다.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나를 제지하고 숨 좀 돌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가자면 가자는 대로 모두 따라왔다. 생각해보면 내가 바랐던 것과 그들이 바랐던 게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멋대로 하는 게 사실은 내 멋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던 대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역시 나는 내 멋대로 했던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다. 질질 끄는게 싫어서, 귀찮아서, 관계가 명확해지는 걸 바랐기 때문에, 숙취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불러내 앞에 앉혀두고 한참 다른 얘기를 하다가 불쑥 연애 하자는 말을 건넸다.

오빠, 그냥 나랑 연애 하죠.
상처받는 거 싫다면서.
상처 안 줄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 땀이 나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면서 말했다. 아마 다 티 났겠지, 하지만 네가 더 부끄러워해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나와 같지만 또 다른 사람이었다. 술에 취해 속내를 내뱉었던 한 시간 반의 전화 통화에서 말했던 것 처럼 너는 참 신중했다. 내가 던진 공을 얼떨결에 받아들고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표정이 조금 가라앉더니, 생각에 빠졌다. 나는 조금 서운했고, 싫음 말구 하고 너를 조금 떠밀었다. 아니, 아니! 싫은 건 아냐 절대 아냐. 그건 아닌데... 나는 이렇게 빨리... 이런 마음이 든 게 처음이라 조금 더 확인해보고 싶어. 조금 더 내 감정을 곱씹고, 살펴보고 싶어. 그냥 좋아하는 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간... 그런 감정인지 확인하고 싶어. 내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면서,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래 네가 시간이 필요하다면 줄 것이다. 이미 내가 던진 공은 네 손에 들어갔고,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네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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