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툐툐 Dec 14. 2020

비로소 과거에서 벗어났어. @02

네 편지는 이제 버릴게

서랍 정리

응어리 삭제


책상 서랍을 정리했어요. 거의 몇 년 만이었습니다. 예전의 내 기준에선 버리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는 버리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꺼내보지 않고 한편에 놔두기만 하는 것들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짐도 같이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책상 서랍은 세 칸입니다. 학창 시절 성적표, 스티커 사진, 연이 끊긴 사람이 보낸 편지, 유효 기간 지난 통장과 여권, 일기장 여러 권, 회사 사람들이 써준 롤링 페이퍼 등이 나왔어요. 물건을 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내가 앞으로도 남기고 싶은 기억인지, 나란 사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지.


연락이 닿지도 않는 사람이 써준 편지는 거의 다 버렸습니다. 그 흔적은 이제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그 편지엔 그 사람이 나에게 되돌려 받고 싶었던 마음을 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없습니다.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은 애정을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책에서 봤던 문구가 떠올라요. 그 편지에 나의 성장, 성향, 추억이 진하게 담겨있다면 버리지 않았습니다.



남길 것들과

버릴 것들


약 두 시간이 걸려 정리를 마쳤습니다. 서랍 외관만 봤을 땐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여도, 분명 가벼워졌고 공간이 여유로워졌어요. 다른 걸로 채우거나, 억지로 채우려 애쓰지 않을 겁니다. 동시에 내 마음도 가뿐해졌어요. 알게 모르게 숨겨 두었던 응어리도 같이 없어진 기분이 들어요.


내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남기기 위함, 그리고 버리기 위함 두 가지입니다. 나를 평온하게 하는 것만 '제대로' 남겨두기 위해, 많은 것을 버립니다.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는 날, 갑자기 서랍을 뒤적이며 정리한 날, 수년간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2021년부터 진짜 버릴 수 있게 되어 기뻐요. 끌어안고 있던 고민이 의외의 계기로 해결되듯이, 이번에도 그런 과정을 겪은 듯합니다. 지독히도 오래 걸렸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잘 아는 사람.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