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극복 일기 part 1.
이별을 예술로 승화해보려고 합니다. 거창하게 말해서 승화지, 그저 글로 써서 의미 있는 자양분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예술가에게 가장 최고의 영감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말이요. 그 말이 새삼 공감되는 요즘입니다. 저도 그걸 활용해보려고요.
최근 한 동안 퇴근 후엔 멍 때리며 쉬기 바빠서 도통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달라요. 생각과 감정이 미친 듯이 쏟아져서, 글로 내뱉지 않으면 미칠 것 같습니다. 핸드폰 메모 앱에는 벌써 여러 편의 글이 쌓였어요. 참 감사할 노릇이죠. 꾸준히 글을 게시해서, 연말에 브런치북이나 신청해볼까 합니다. 이 글을 모을 매거진 이름도 정했어요. <이별 극복 일기>. 자, 1탄 시작합니다.
2015년, 제 MBTI는 ISFP였습니다. 지금은 INTJ인데 말이죠. 당시엔 감정에 압도되어 살았던 것 같아요. 이성적, 객관적, 분석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면 덜 괴로울 것 같았어요. 그때 직무를 에디터로 바꾸기도 했었고, 업무 특성상 스케줄 관리력과 기획력, 계획성이 중요했고, 글을 쓰려면 군더기를 없애는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샌가 저는 INTJ로 바뀌어 있었어요. 일상에선 ISFP인 면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감수성과 잡념에 과도하게 빠져서 정신 못 차리진 않아요.
예전엔 이별했을 때도, 막연하게 감정 회오리 속에서 휘청였어요. 아픔, 슬픔, 고통, 괴로움, 혼란, 답답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빠져나오기 힘들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이번 이별 후에는 확연히 달라요. '내가 참 INTJ 답 구나'라고 다시 깨닫게 했을 정도였어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카테고리로 나눠서 기록했거든요.
1.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2.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3. 그 사람 단점
4. 내가 슬프고 힘든 이유
5.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긍정/부정)
6. 어떻게 하고 싶은가 (단기/ 장기)
7. 연애할 때, 아쉬웠던 점
8. 연애할 때, 잘했던 점
9.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점
10. 그 사람한테 하고 싶은 말 (착한 버전/ 하소연 버전)
11. 나 자신한테 하고 싶은 말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웃음이 피식 나네요. 각 카테고리마다 거의 10개씩은 썼으니. 약 100 문장 넘게 썼겠네요. 하얀 새벽이 되기 전, 모든 걸 써놓고 나니 마음이 좀 나아지더라고요.
제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잡념을 끌어다가, 눈에 보이는 글자로 만드는 과정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에요. 이 단계에서만 끝내면 나 혼자만 보는 일기에 그치겠죠. 그다음 단계인 퇴고를 통해서, 요리조리 다듬어서 쓸데없는 건 싹 지워버리면, 정말 내 마음도 머리도 같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요. 문장으로 뱉었다가, 퇴고를 위해 지우는 문장도 곧 내 안에 있던 것과 같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11개 카테고리 장문의 글을 쓴 다음에는 내 방식대로 그 사람한테 하고 싶은 말도 써보기도 해요. 내 인생이고, 내 스타일이니까요. 사랑에 정답이 있나요.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는 거지. 하고 싶은 말을 추리고 추려서, 그 사람에게 보내기도 해요. 네, 찌질하죠. 이러면서 정리하려고 애쓰는 거랍니다.
사실 오늘도 하나 보냈어요. 결심했어요. 이제는 절대 보내지 않을 거예요. 하루 버틸 때마다 칭찬 포인트 1점씩 나한테 주려고요. 그와 더불어서, 브런치 글 1편씩으로 건강하게(?) 승화해보려고요. 다음 편에서는 앞서 소개했던 11개 카테고리 별로 공개 가능한 선에서 정리해서 공유할까 해요. 그러면서 저도 꼼꼼하게 다시 정리해보고, 털어버릴 건 털어버릴래요.
이별을 예술(글)로 승화하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나에게, 한 가지 칭찬을 더 해주려고요. 럽마셆.
이별로 인한 충격에 멘탈이 붕괴되고 일이 손에 안 잡히기도 했지만, 공과 사를 구분해놨던 덕분에 눈에 띄게 티나 진 않았습니다. 공과 사 구분했던 나 자신, 칭찬해요.
회사 사람 중에 제가 연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두 명 밖에 없어요. 그 둘에게도 이별 소식을 굳이 전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말하진 않으려고요. 온전히 괜찮아지기 전까지는. 이점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요. 평소에 사생활을 회사 동료에게 말해놨었다면,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이별을 말할 수밖에 없을 거고, 그게 업무에 영향을 끼쳤을 테니까요. 공과 사 구분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마지막, 노래 추천,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 이별하신 분들, 같이 위안 얻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어려운 이별을 한다는데, 나는 운이 좋았지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던 사랑을 했으니까, 나는 운이 좋았지
서서히 식어간 기억도 내게는 없으니, 나는 운이 좋았지
한없이 사랑한 날도 우리에겐 없던 것 같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이젠 웃어 보일게
긴 터널이 다 지나가고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