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툐툐 Aug 12. 2023

의문하는 습관에 관한 성찰

물음표와 친한 덕분에 얻은 선물


감수성이 풍부했던 소녀는 원인과 이유를 탐구할 때만큼은 과학자로 변신했다.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파고들었다. 어떤 성격을 갖고 있으니까, 어떤 행동이 나오는지, 스스로 묻고 성격을 바꿨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성적이고 능동적인 성인이 되었고, ‘물음표 전문가’라는 특성을 업무할 때 강점으로도 발휘했다.


책 <마케터의 일>에 따르면, “잘하고 싶은 사람은 ‘왜’를 자꾸 물어본다.” 왜냐하면,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즐겁게 하고 싶어서,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서”이다.


또 다른 책 <그놈의 마케팅>에서는 “마케터는 끊임없이 화두를 제시하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게 일”이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먼저 할 일은 타깃 오디언스(목표 수용자 집단)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이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지 등 자신의 타깃 오디언스를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를 향한 집착은 마케터라는 직무에 필수 역량이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마케팅 전략을 설계할 때, ‘왜’는 빠지지 않는 단계다. 핵심 유저가 ‘왜’ 우리 서비스나 상품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지를 살피는 것도 마케터의 주요 업무이다.


책에서 이 부분을 발견했을 때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가 나한테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성향과 딱 맞는 천직을 잘 찾아서 하고 있다는 근거를 발견한 셈이기도 했다.


아무리 파헤쳐도 소용없는 것


앞서 언급한 마케팅 분야 책에서는 왜를 묻는 성향의 장점을 서술했고, 이에 반대 되는 내용을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허지웅 작가는 책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과정에서 명확한 건 오직 시작과 끝뿐이다. 나머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다. 거기서 선명한 원인 한 가지를 찾아내겠다고 애쓰는 건 이미 먹고 있던 국수 그릇에서 처음 삼킨 면과 마지막에 삼킬 면의 시작과 끝을 찾아 이어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창조”해서,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낸다. 내가 가해자일 가능성은 철저하게 제거”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맞다. 세상에는 원인과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니, 아예 상관없다. 그러자,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했던 또 다른 내용이 생각났다.


조던 피터슨 심리학 교수에 따르면, “기억은 조작된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정확한 기억을 기록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의 정보를 사용해서 미래를 위해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치열하게 찾은 원인과 이유가 현재와 미래에 쓸모 있는가? 후회와 자책만 남는 고민은 아닌가?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무작정 모든 원인과 이유에 매달리는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적재적소에 물음표를 던지는 지혜, 

무엇을 물어볼지 아는 총명함


어떤 사건이 안 좋은 영향을 끼쳤어도, 그 경험의 긍정적 가치를 확대 해석할 때가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이다. 진정 좋은 경험이었다면, 그때껏 나를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2019년 10월, 선생님은 과거 복기에 집착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현재 상태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해요.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내용은 정신 질환이 악마같이 모호한 것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명확한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밝힌 점에서 의미가 있었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악마 때문에 정신 질환이 생긴 게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으므로, 현시대에 오로지 프로이트 방식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바꿀 수 없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어요. 기분, 피로 정도, 수면 상태 세 가지 기준으로 자신을 잘 살피세요. 그리고 하루하루 쌓아가요.“


처음엔 나를 알기 위해 의문하기 시작했고, 의문하는 습관을 직업에 활용했으며, 지난 과거 상처의 원인을 찾으려 애썼었다. 이제는 의문의 장점과 한계를 되새길 시점이다. 적재적소에 물음표를 던지는 지혜, 무엇을 물어볼지 아는 총명함이 필요하다.


————


*참고 : 원인과 이유는 모두 순차적으로 앞서 일어나는 것이고, 원인은 어떤 결과가 일어난 까닭, 이유는 어떤 주장과 행동의 근거이다.


*조던 피터슨 심리학 교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PvpkRlR3pY

매거진의 이전글 방어기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