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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Mar 06. 2023

연희 씨, 나의 연희 씨

대학교 1학년 딸과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1975년생 연희 씨

  대학교 1학년 딸과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1975년생 연희 씨는 올해 48세입니다. 첫째 딸 민서가 태어난 후로 정신없는 20년을 보내고, 이제야 숨을 돌리는 중입니다. 1남 3녀 중 셋째딸로 태어나 적절한 무관심과 눈칫밥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맞아요. 유일한 1남이 연희 씨의 남동생입니다.



 연희씨가 살면서 기억에 남는 몇몇 순간으로는 대학에 입학하던 때가 있습니다. 가부장제와 남아선호가 남아 있던 당시 사회와 가정 환경으로 인해 진학하기 위해 집안을 발칵 뒤집어야만 했습니다. 울고불고하며 떼를 써서 겨우 입학한 학교는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응답하라 1994’ 라는 드라마가 나왔을 때 연희 씨는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연희 씨가 다녔던 대학가의 풍경은 드라마처럼 마냥 낭만적이지 않았거든요. 그도 그럴 게 불안한 사회 분위기는 잦은 시위로 이어졌고, 거듭되는 부모님의 경제적 압박으로 연희 씨는 결국 2년을 채 못 채우고 휴학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대신 국어국문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아버지 지인을 통해 작은 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책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위로가 됐습니다. 당시 연희 씨의 친구들은 대부분, 공장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했습니다. 이 시기를 회상하면 연희 씨는 풋풋과 성숙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생각나곤 합니다. 진정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뿌듯함과, 앞날을 기대하는 설렘과 당찬 마음이 공존했던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일이 익을 무렵인 1997년,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 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쳤거든요. 자연스럽게 연희 씨가 출근하던 작은 출판사도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그 후 2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신없던 그 시기에 우연한 기회로 학부 선배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26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던 게 모든 기억을 다 덮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실직하셨던 그 난장에서 어떤 결심이었나 싶습니다. 온 나라가 동요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고 자신감 있게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보며 연희 씨는 연인이 참 우직하고 든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신혼 무렵, 연희 씨는 첫 직장이었던 출판사 사장님의 소개로 월간지를 만드는 회사로 재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 이후부터 29살 첫 아이 민서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3년이 연희 씨가 전일제로 일했던 마지막 기간입니다. 요즘 연희 씨는 인근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반일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 민준이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보낼 때 쯤 시작한 일인데,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막내 아이가 슬슬 연희씨 품을 떠나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역으로 아직 연희씨 손이 필요해 보이기도 했거든요. 동시에, 두 아이와 양가 부모님 용돈 부담으로 무리해서 일하는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에 일하던 경력을 살려볼 생각은 언감생심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학교 가 있을 시간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느라 구직 기간이 짧지 않았습니다. 첫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학부모 모임이 연희씨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희씨는 피곤하지만 일을 통해 에너지를 받기도 했는데, 지난 2년간 COVID-19로 급식실이 불안정해지면서 다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게 갱년기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20년 가까이 금쪽같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느라 연희 씨는 정신없이 피곤하고 또 정신없이 행복했습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 연희 씨는 한 사람으로 태어나 해야 할 과업을 잘 마친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고, 막내 민준이 마저 남편과 연희 씨의 품을 떠나가는 것 같아 쓸쓸한 마음도 듭니다. 아이들이 제각기 자기 일상을 보내느라 남편과 단둘이 지내는 날도 부쩍 늘었습니다. 이 여유가 어색해서 괜히 생각이 많아지나 싶기도 합니다. 연희 씨의 인생이 다시 새로운 시기로 접어드나 봐요. 이렇게 생각하니 괜히 설레기도 하는 연희 씨입니다.



 저는 언제부터, 왜 연희씨를 관찰하고 상상하게 된걸까요?




연희 씨의 삶은 통계청의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연희 씨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조사였는데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연희 씨와 연희 씨 친구들이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풍경과 결혼, 첫 아이를 낳던 시기, 연희 씨 자녀의 이름 등 세세한 내용들 모두 정규분포곡선의 가장 볼록한 부분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평범하기도 하고 이상적이기도 합니다. 

연희동 산책은 연희 씨를 비롯한 중년의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연희 씨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변화를 연희동 산책이 만들어 나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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