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는 다양한 트렌드 책이 서가를 하나둘 채우기 시작한다. 기자들은 이러한 책의 내용을 재생산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예측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며 따라가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 할 수 있다. 즉, 모두가 같은 미래를 예상하고 믿기에 그런 미래가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향력이 있는 트렌드 책은 예측의 정확성보다 다수가 읽고 믿는다는 사실로 인해 결과적으로 꽤나 정확하게 미래를 그리는 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측한다기보다 다수를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트렌드 책이 아닌 다른 나라의 트렌드 책을 읽는 것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조금 더 정확하게 현 시점의 대한민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고기는 아무리 애를 써도 물 밖을 알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의 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비교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나라가 우리와 가장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가지만 다르고 나머지가 동일할 때 그 차이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런 면에서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이 우리나라의 비교군으로 제격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10년 후 혹은 20년 후가 일본이라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기민한 사업가들은 일본에서 트렌드를 읽고 이를 한국에 반영해 왔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트렌드 전파 속도가 느렸지만, 요즘은 시차가 급속히 짧아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연말에 ‘현 시점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다가올 한국에서 유행할 것’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하나의 <2024/2025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들>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트렌드와 낯선 트렌드가 섞여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예를 들어, X세대의 문화가 Z세대에게 주목받는 우리나라처럼, 일본에서도 아재 문화라 여겨졌던 ‘센토(공중 목욕탕)’와 ‘킷사(다방)’ 같은 문화가 다시금 주목받고 유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다양해지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남성 간의 사랑을 다룬 BL 드라마가 유행하고 1인칭 남성 대명사로 자신을 호칭하는 아티스트 아노(Ano)가 주목받고 있다. 또한, 경기 불황 속에서 초저가를 표방하는 다이소가 급성장하고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는 러닝 붐이 일어난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편의점처럼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초저가 헬스장 ‘초코잡’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트렌드가 우리나라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연상하게 한다. 과거에는 트렌드의 공간적 차이가 컸다면,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공간의 장벽이 줄어들면서 시간적 차이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한국이라는 공간에 국한해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공간을 초월해 동시간대의 트렌드를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트렌드 발생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