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라는 말은 다소 거창하다. 무에서 유(creatio ex nihilo)를 만들어낸 천지창조가 떠오르기도 하고, 조금 가볍게 생각하더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가 연상된다. 나를 포함한 일반 대중은 창조와 다소 거리가 있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릭 루빈의 책에 따르면 누구나 창조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분주히 창조하고 있다.
현존하는 인물 중 창조라는 주제로 책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 중 하나가 릭 루빈이다. 그가 지금까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 안에 올린 앨범만 40장 이상이고 플래티넘 앨범(1백만 장 이상)은 물론이고 아델의 21을 통해 2010년대 앨범으로는 최초로 다이아몬드 인증(1천만 장 이상)까지 받았다. 전세계 문화를 좌지우지 하는 미국 대중음악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그는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에서 직접적인 방법론에서부터 철학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로 창조를 관찰하고 음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독자를 초대한다.
그가 말하는 창조는 마치 우주적 창조 행위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원재료가 들어오고,” “필터가 거르고,” “그릇이 받아낸다”라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우주와 분리된 인간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인 인간이 때때로 창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나는 이에 깊이 공감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있다. 현재 몽골 상공을 지나는 중이다. 와이파이가 끊긴 하늘 위에서 5시간 넘게 나만의 생각을 글로써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나만의 생각이 정말 '나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잠시 빌려 쓰는 '우주의 생각'인지 헷갈린다. 아니 확신할 수 없다. 둘 중 무엇인지. 이처럼 몰입을 하다보면 전에 없던 생각이 쏟아져 나오고, 몰입이 끝난 후에 마주하는 수많은 글자는 다소 낯설게 나에게 인사를 한다. 나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질적인 생각을 접하기도 한다. 창조란, 이처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적인 행위처럼 느껴진다. 나라는 그릇이 우주의 창조를 잠시 받아내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말한 ‘다이몬,’ 래퍼 빈지노가 말한 ‘내 안의 또 다른 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 이 책이 이를 명확히 밝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