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 아는 맛이 좋더라
터키식 커피와 커피 운세
나는 커피에 대해 대단히 고급진 취향이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 평균 입맛이랄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마시고 신맛은 싫어하는 정도이다.
터키에 와서 커피에 관해 의외였던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메뉴에 아이스커피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 점, 두 번 째는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 쌌던 점이다.
물론 터키는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지만 내가 있는 페티예는 1년 중 300일 정도가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한여름인 7-8월에 40도까지 올라간다면 '아아'는 기본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의외로 뜨거운 전통 터키쉬 커피를 주로 마시고 아이스 메뉴가 없는 곳에서는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차라리 안 시키는 게 낫다. 이건 마치 무자비한 여름날, 작열하는 차 안에 30분 간 아이스라떼를 숙성해서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녹은 얼음 반, 무설탕 커피우유 반이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밍밍한 맛!
그러고 보면 커피의 고장인 에티오피아에서도 핫 커피만 팔았었다. 어디선가 에스프레소부심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아이스커피를 찾는 것은 예의 없는 거라 했다 (주워들은 이야기임을 밝힌다). 커피 종주국이라고 자존심을 세우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 속이 탈 것 같은 날은 가을에도 겨울에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면 뇌세포까지 시원함이 전해지면서 잠깐이나마 정신과 마음을 차분하게 식혀준다.
전통 터키쉬 커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쉽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터키쉬 커피를 내가 느낀 대로 표현해보자면 커피 가루가 느껴지는 목 넘김과 순한 한약 맛이었다. 한약만큼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진하다. 그리고 특유의 향이 난다. 이건 설명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양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양고기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건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썩 나쁘지 않은 사람은 괜찮게 먹을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향이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아무튼 커피도 아는 맛이 좋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스타벅스가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이미지 출처: https://www.healthline.com/nutrition/turkish-coffee?epik=dj0yJnU9LWlYWnhCRHFJMTBSQ3JiS0pwM2t터키쉬 커피는 커피잔의 2/3를 비우면 나머지는 가루가 남는다. 가루가 너무 많다 보니 가루까지 먹는 게 관행인지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잔에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톨 사이즈로 가득 담아 나온다면, 정말이지 다 마실 자신이 없다.
맛은 내 취향이 아닐지언정 내가 찾은 터키쉬 커피의 매력은 커피를 마신 이후에 있었다. 터키 사람들은 예전부터 커피잔에 남은 가루의 모양으로 운세를 본다고 한다. 말하자면 타로카드처럼 앞으로 내게 있을 일이나, 내가 만날 인연들, 마주할 에너지 등 커피 한잔을 같아 나누며 운명을 알려주는 것이다.
커피잔에 1/3 정도 가루가 남으면 커피잔 받침을 덮은 후 뒤집어 놓는다. 10분 후, 커피잔에 남은 가루들의 형체를 보고 미래를 보는 식이다. 실제로 전문적인 커피 포춘 텔러가 있는 건지, 장난 삼아하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꽤 흥미로운 커피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점을 보기위해 기다리는 10분 사이에. 두구두구 내 운명은?며칠 전 아이를 봐주는 베이비시터 집에 놀러 갔다가 베이비시터 어머니께서 왕년에(!) 커피운세 좀 보셨다며 내 커피잔을 봐주겠다고 했다. 재미 삼아 한 번 봐주시라 했는데 좋은 말만 해주겠지 싶었던 나의 순진한 예상과 달리 그다지 밝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해주시는 거다. 이럴 거면 안 들을 걸 그랬어!
역시 커피는 아는 맛이 좋고, 운세는 좋은 게 아니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10분 후 뒤집어본 나의 운명,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았습니다 :)[덧붙임]
터키 페티예 이민 & 정착 과정을 브이로그로 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방문해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oVEe8eHKqxNPPR34_2i_Uw/featu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