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SNS에서 글을 접하게 되었다. 글쓴이의 관심사가 나와 비슷하길래 꽤 흥미롭게 읽고는 어떤 글을 쓰는 블로거인가 싶어 목록을 훑어보았다. 블로거는 익명이었다. 하지만 정황상 같은 (전)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왠지 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다녔던 90년대 초반에는 일기를 써서 담임선생님께 제출을 하면 한 마디씩 코멘트를 써서 돌려주곤 했었다. 3학년 때였나. 담임선생님은 내 일기장을 돌려주면서 친구 윤지수의 일기장도 같이 건네며 지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왠지 남의 일기장은 읽으면 안 되는 거라 생각이 되었지만 9살의 나는 집에 오는 길 내내 열어볼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은 엄마 몰래 과자를 훔쳐먹듯 친구의 일기장을 펼쳤다.
별 내용은 없었다. 내가 모르던 친구의 엄청난 비밀이 적혀있던 것도 아니고 나나 다른 친구들에 대한 욕이 쓰여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괜히 신경이 쓰였다. 지수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수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만의 일기일지라도 누군가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데 지나치게 계산하는 경향이 생겼다. 누가 이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볼까.
그리고 언젠가 내 일기를 누가 훔쳐볼지도 몰라하는 생각은 항상 염두에 두고 글을 써왔다.
그래서인지 나의 글에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솔직함보다는 미묘한 낯가림이 있다.
SNS에서 우연히 발견한 (전) 직장 동료의 블로그 소개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여행하고 글 쓰는 게 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꿈을 살고 있습니다. I love my life."
사실 나는 그 사람을 이름과 소속팀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직장 생활에 만족하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알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한마디 '그 꿈을 살고 있다'는 말에 왠지 모를 질투와 함께 패배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내 인생에 만족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더구나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그토록 애착을 갖다니. 나도 아주 가끔 그런 만족함이 왔다 가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특히 직장 생활에 있어서는 세상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를 지켜보는 시어머니의 심정인 게 사실이다.
그 직장 동료의 글을 의도치 않게 마주한 이후 굳이 다시 찾아보지는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부러운 마음이라니, 괜히 지는 기분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저 블로그 소개글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사실은 허세가 잔뜩 든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문자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괜히 뒤틀린 심보를 부렸나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남사스럽게도 나의 블로그에는 이런 소개글이 적혀있다.
'노쁘라블럼의 나라에서 잠시 유년시절을 지내고 하쿠나 마타타의 대륙을 오가며 청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도 꽤나 있어 보이고 싶었나 보다. 허세 병자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참에 소소한 다짐을 해본다. 힘 빼고 담백해지자. 있어 보이는 거 말고 있는 그대로면 어때? 누가 보든 말든.